사건에서 풍경으로, 구보타 히로지 전

김종목 기자

‘구보타 히로지, 아시아를 사랑한 매그넘 작가’ 전(서울 삼청동 학고재)에 다녀왔다. ‘아시아’ ‘매그넘’은 구보타 히로지를 수식하는 주요 키워드인데, 이 말로는 작가를 모두 담아내기엔 부족함이 있다. 지역으로는 미국을 추가해야 한다. 매그넘? 구보타는 아시아 최초의 매그넘 멤버다. 부회장도 지냈다. ‘포토저널리즘’을 대표하는 매그넘에서 그는 ‘사건’에서 ‘풍경’으로 전환한 작가라는 점도 눈에 띤다.

작가에 관한 기본 정보는 매그넘포토 홈페이지 구보타 히로지(79) 프로파일과 포트폴리오(▶바로가기)에서 볼 수 있다. (대표작들 대부분을 볼 수 있다) 프로파일 첫 문장은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사람들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사진을 찍고 싶다”이다. 전시장에서 본 작품은 그의 말대로 아름다웠다.

금강산, 북한, 1986. 학고재 제공

금강산, 북한, 1986. 학고재 제공

내장산 국립공원, 전라북도 정읍시, 한국, 2006. 학고재 제공

내장산 국립공원, 전라북도 정읍시, 한국, 2006. 학고재 제공

설악산 국립공원, 한국, 2007. 학고재 제공

설악산 국립공원, 한국, 2007. 학고재 제공

압록강 상류, 백두산 인근, 북한, 1987. 학고재 제공

압록강 상류, 백두산 인근, 북한, 1987. 학고재 제공

구보타 히로지는 남북한을 두루 오간 사람이다. 남한의 설악산, 내장산, 북한의 금강산, 압록강을 두툼한 질감으로 촬영한 작품들은 수준 높은 풍경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엔 서울과 뉴욕을 항공촬영한 작품도 나왔다.

뉴욕, 미국, 1992. 학고재 제공

뉴욕, 미국, 1992. 학고재 제공

서울 항공사진, 한국 2007. 학고재 제공

서울 항공사진, 한국 2007. 학고재 제공

북한 아이들의 무용 모습이나 매스게임, 김일성 주석 생일 축하공연 같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 북한 체제와 사람들을 찍은 작품도 여럿 출품했다. 그는 중국을 1000일 동안 여행하며 20만장 이상을 촬영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결과물도 볼 수 있다.

평양, 북한,1978. 학고재 제공

평양, 북한,1978. 학고재 제공

카드놀이, 광저우, 광둥, 중국, 1983. 학고재 제공

카드놀이, 광저우, 광둥, 중국, 1983. 학고재 제공

한국 첫 대규모(109점) 회고전이 대표 작품으로 뽑은 것은 1978년 미얀마 동남부의 유명 관광지이자 불교 성지인 짜익티요의 ‘황금바위’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한 장씩 붙인 금박으로 뒤덮인 거대한 바위 아래 승려들이 황금바위 아래서 기도하는 모습을 먼 거리에서 촬영한 이 작품을 두고 그는 “마치 색채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고 말한다. 흑백에서 컬러로, 사건에서 풍경으로 전환하는 분수령이 된 작품이다.

불교성지 황금바위, 짜익티요, 미얀마 , 1978, 학고재 제공

불교성지 황금바위, 짜익티요, 미얀마 , 1978, 학고재 제공

그는 “천천히 욕심없이 사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 좋아서 인생 말년에는 미얀마로가 수도승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미얀마도 자주 가 사람들과 풍경을 찍었다. 석양 무렵,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카메라를 쳐다보는 아이들을 촬영한 작품이 좋았다.

카렌족, 미얀마 인근 매홍손 지방, 태국, 1977. 학고재 제공

카렌족, 미얀마 인근 매홍손 지방, 태국, 1977. 학고재 제공

만달레이 언덕 앞 소년과 소녀, 미얀마, 1978. 학고재 제공

만달레이 언덕 앞 소년과 소녀, 미얀마, 1978. 학고재 제공

1975년은 구보타 작품 세계에서 분수령이 되는 해다. 베트남 전쟁 말기 사이공 함락 때다. 그는 전쟁의 처참한 혼란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이후론 갈등·분쟁 현장을 다시는 찍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 앞에서 그는 어린 시절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나날을 떠올렸다. 많은 돈을 받고 작품을 찍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베트남전 체험은 나중 ‘풍경’으로 옮겨간 계기가 된다.

그럼에도 구보타의 작품 세계에서 ‘흑백 사진’과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60년대 초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을 처음 들쳐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 사진집을 보면서 사진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매그넘 작가인 르네 뷔리가 찍은 가우초(남아메리카 초원 지대의 목동) 작품을 보며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시가를 입에 문 혁명가 체 게베라의 사진으로 유명한 르네 뷔리는 구보타 히로지를 매그넘으로 이끈 작가다.

히피, 캘리포니아 남부,1971. 학고재 제공

히피, 캘리포니아 남부,1971. 학고재 제공

1963년 흑인 민권운동과 운동가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미국 인디언 보호구역내 ‘운디드 니’에서 벌어진 미국 제7기병대의 인디언 학살 100년인 1990년 말을 탄 추모 행렬을 찍은 사진은 역사와 사건, 인물과 풍경 등 구보타 히로지의 사진 철학과 태도를 집약해 보여주는 명작 중 하나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여기에 올리진 못했다.

구보타는 2016년 카메라회사 캐논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스로를 포토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나는 그저 사진가일 뿐이다.” 그는 “사진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도 했다. 그는 방한 기간에도 항상 카메라를 지니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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