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개발·공공미술…호젓이 곱씹어 볼까

김종목 기자

서울 주요 사립미술관 기획전

토탈미술관 ‘현실비경’, 금호미술관 ‘정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디시전 포레스트’

개성있는 작품들 전시

어머니 이야기를 줄기로 냉전 역사를 짚은 장츠언츠의 ‘결코, 없었던 전쟁’(2017). 토탈미술관 제공

어머니 이야기를 줄기로 냉전 역사를 짚은 장츠언츠의 ‘결코, 없었던 전쟁’(2017). 토탈미술관 제공

주요 사립미술관의 4·5월 기획전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토탈미술관의 ‘현실비경(現實秘境)’이다. 남북한 화해, 북·미 간 대화 분위기에서 냉전과 분단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의 냉전을 전후해 벌어진 여러 정치·사회 사건을 되짚는다.

타이베이 더큐브 프로젝트 스페이스와의 공동 기획전엔 대만 작가 작품이 많이 나왔다. 쉬 쟈웨이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 ‘후아이 모 마을’(2012)이 그중 하나다. 미얀마 접경 지역의 태국 마을 ‘후아이 모’를 아는 이는 드물다. 냉전 비극이 악순환한 곳이다. 이 마을은 중국의 제2차 국공 내전 말인 1949년 국민당 패배로 후퇴한 부대원들이 잔류한 곳이다. 이들은 중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한 용병으로 일했다. 양귀비를 재배하거나 미얀마로부터의 마약 밀매를 도왔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공산주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이 마을을 첩보 기지로 활용했다. 미 중앙정보부(CIA) 정보원으로 일한 사제가 만든 보육원은 마을의 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70명의 보육원 아이들은 마약 거래로 살해되거나 투옥된 이들의 자녀들이다. 쉬 쟈웨이는 이 아이들을 등장시켜 이 마을 냉전의 역사를 관찰한다.

“대만에 가는 걸 결심!! 주더와 마오쩌둥의 목숨을 끝까지 빼앗겠다!!” 천막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두 병사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군 포로다. 남북이 극렬하게 대치한 한반도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이 사진은 친 정더가 문헌과 인터넷에서 찾은 냉전 관련 자료를 모은 ‘아메리칸 파이’(2016) 중 하나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장츠언츠는 싱글채널 비디오 ‘결코, 없었던 전쟁’(2017)에서 냉전 시기 격변의 현대사와는 무관하게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농부로, 가사 도우미로 한평생 일만 한 자신의 어머니를 인터뷰한다. 어머니의 인생 고비와 그 시대 역사적 사건을 병치시키며 냉전을 환기한다.

미술관은 옥인 콜렉티브의 ‘프랙티스 02-막간극’(2017·싱글채널 비디오), 조동환·조해준의 ‘미군과 아버지’(2002~2009·드로잉과 텍스트) 같은 한국 작가 작품을 내놓았다. ‘미군과 아버지’는 조해준의 아버지 조동환이 경험한 식민-전쟁-병역(카투사)의 풍경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카투사로 복무하며 겪은 일들은 지금 여기의 인종 문제,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임흥순의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인 ‘위로공단’도 볼 수 있다. 6월24일까지.

한옥 폐자재를 활용한 조각가 정현의 신작 ‘무제’(2018). 금호미술관 제공

한옥 폐자재를 활용한 조각가 정현의 신작 ‘무제’(2018). 금호미술관 제공

금호미술관의 기획초대전 ‘정현’은 조각가 정현(홍익대 교수)의 신작을 소개한다. 정현은 철길 침목, 아스팔트, 콘크리트 같은 폐기물을 재료로 활용한다. 금호미술관 초대전에 내놓은 2018년 신작 ‘무제’ 연작은 재료와 물질에 내재된 미술적 가치를 발견해 끌어내는 작가의 안목과 깊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제’ 연작의 재료는 폐한옥의 목재 잔해다. 고양시 덕은동 주택개발예정지구에 포함된 작가의 옛집에서 나온 것이다. 정현은 철거되면서 부서지고 찢긴 나무에 먹물을 칠했다. 사방을 항하거나, 위로 치솟은 날선 나무에서 ‘날카로운 에너지’와 함께 소멸과 생성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7m30㎝ 길이의 육중한 대들보에 세 개의 나무를 접합한 작품(‘무제’·2017)도 낡고 좀먹은 날것 그대로의 힘을 드러낸다. 2015년 작인 침목 작품은 지난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궁 인근 팔레 루아얄에서 ‘서 있는 사람’으로 전시돼 화제를 모았다. 5월22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최근 개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영국박물관과 파트너십으로 한국 미술작품 보존을 위한 프로젝트 지원에 들어간 회사다.

공공성과 소통을 중시하는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샌드 박스’(2010). 연합뉴스

공공성과 소통을 중시하는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샌드 박스’(2010). 연합뉴스

개관 기념전은 멕시코 태생 캐나다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디시전 포레스트(Decision Forest)’다. 그는 3D, LED, RSS 뉴스피드 같은 기술과 카메라와 프로젝트 같은 기계를 기반으로 26년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작가다. 공공성과 소통을 강조하는 로자노헤머의 작품 중 눈여겨볼 것은 ‘샌드 박스(Sand Box)’다. 미국 샌타모니카 해변에서 진행한 공공프로젝트를 미술관 실내로 옮겨왔다. 관람객이 작품에 개입할 수 있다. 전시장 내 재현한 모래 해변을 다시 축소한 모래 박스에 신체를 갖다 대면 카메라가 이를 포착해 바로 해변에 투사한다.

미술관은 “로자노헤머의 작품은 관람객이 만들어가는 창의적 소통의 플랫폼”이라고 했다. 한국 최초 개인전인 이번 전시엔 초기작부터 2018년 작품까지 전시한다. 8월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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