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이 ‘빛의 시적 표현’이라 극찬한 케레의 건축 미학은

김종목 기자

첫 작품 부르키나 파소 고향 초등학교, 주민들 동참해 지역 점토로 건축

“공동체가 건축에 동참하면 건물 이상의 것을 얻는다”

프란시스 케레의 첫 작품인 부르키나 파소의 간도 초등학교(2001).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프란시스 케레의 첫 작품인 부르키나 파소의 간도 초등학교(2001).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겨우 그러려고 밭에서 일하는 대신 그렇게 오래 유럽에서 공부했던 거야?” 프란시스 케레(57)가 고향 부르키나 파소의 간도로 돌아가 지으려는 학교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콘크리트, 유리, 철로 지은 근사한 현대식 학교가 아니라 점토로 지은 학교? “점토집은 장마철에 온전할 수가 없는데….” 마을 사람들은 걱정했다. 독일 베를린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2004년 건축학과 졸업)하던 2001년 일이다.

프란시스 케레의 첫 작품인 부르키나 파소의 간도 초등학교.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프란시스 케레의 첫 작품인 부르키나 파소의 간도 초등학교.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케레는 2013년 9월 테드(TED) 강연에서 간도 초등학교 건축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당시 자신은 고향의 점토에 혁신이 담겼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 확신을 전하려 모두 만났고, 모두를 설득했다. 케레는 프리츠커상 수상 이후인 지난 20일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과 인터뷰하면서 “점토 가치를 잘 모르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내가 하려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게 뭐지? 우리가 가진 자원을 써야지’라고 얘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케레의 설득으로 사람들이 간도 초등학교 짓기에 동참했다. 진흙 바닥을 다지고, 광을 냈다. 점토에 현지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 벽돌을 만들었다. 현대 건축 기반이 없는 곳에서 토착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 시도는 계속 이어지며 ‘케레 건축 이념’의 상징이 됐다. 2020년 부르키나 공과대학 건물을 지을 때도 현장에서 주조된 점토로 냉각 효과를 내는 벽을 만들었다.

프란시스 케레의 고향인 부르키나 파소의 간도. 출처: 테드 홈페이지(ted.com)

프란시스 케레의 고향인 부르키나 파소의 간도. 출처: 테드 홈페이지(ted.com)

케레는 간도 도서관(2010)을 지을 때 마을에 널린 진흙 항아리를 이용했다. 콘크리트를 붓기 전 지붕에 항아리를 얹어 환기구를 낸 것이다. 이 환기구는 실내 더운 공기를 배출하면서 빛을 공간에 드리운다. 케레는 2018년 모잠비크 테테의 벤가 리버사이드 학교를 건축할 때도 작고 반복적인 틈새 패턴 벽에 빛이 들어오게 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케레 작품을 일관하는 이러한 요소를 ‘빛의 시적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프란시스 케레는 간도 도서관(2010)을 지을 때 점토 항아리를 활용해 환기구를 만들었다. 실내 열을 배출하면서도 빛이 들어오게 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빛의 시적 표현’이라고 표현했다.  출처 : 테드(ted.com)

프란시스 케레는 간도 도서관(2010)을 지을 때 점토 항아리를 활용해 환기구를 만들었다. 실내 열을 배출하면서도 빛이 들어오게 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빛의 시적 표현’이라고 표현했다. 출처 : 테드(ted.com)

케레의 건축을 특징 짓는 또 다른 요소는 나무다. 부르키나 파소 도시 쿠두구 쇼게 중고등학교 건물 정면 외벽은 현지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들었다. 이 나무 벽이 천처럼 교실을 둘러싼다. 학생들은 나무 그늘로 이동하거나 쉰다. 냉방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건축 기법과 기존 재료를 활용해 최대한 온도를 낮추려 했다

케레는 테드 강연에서 간도 초등학교를 두고 “마을 공동체가 지은 학교”라고 했다. 이 강연에서 강조한 또 하나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의 수행이다. 케레는 간도에 학교가 없어 텐코도고 학교로 갔다. 케레는 간도에서 처음으로 학교를 다닌 아이다. 휴일마다 간도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로 되돌아갈 때면 마을 전통에 따라 집집마다 인사를 다녔다. 간도의 모든 여성이 7살짜리 케레에게 자신의 옷깃을 열어 애정의 표시로 마지막 한 푼까지 내어 주곤 했다.

“왜 모든 여인이 저를 사랑하는 거죠?”라는 케레 질문에 어머니가 답했다.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건, 네가 성공해서 돌아와 공동체 삶의 질을 높여주기를 바라는 거란다.”

모잠비크 테테의 벤가 리버사이드 학교(2014).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모잠비크 테테의 벤가 리버사이드 학교(2014).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케레는 NPR 인터뷰에서 여성들의 지원을 두고 마을 사람들이 주입한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 사회 생존이 각 구성원의 지원에 의지하는 공동체에서 자랐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며 공동체, 친구, 가족, 형제, 자매와 함께 지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케레는 공동체 정신을 자기 건축에 담으며 그 호의를 갚으려 했다. 건축으로 공동체 삶을 바꾸고, 희망의 기회를 열려고 각오했다.

프란시스 케레의 고향 간도의 마을 사람들이 간도 초등학교 건축에 참여했다. 출처: 테드 홈페이지(ted.com)

프란시스 케레의 고향 간도의 마을 사람들이 간도 초등학교 건축에 참여했다. 출처: 테드 홈페이지(ted.com)

아프리카 마을의 전통을 상기했다. 마을이 아이들을 돌봤다. 마을 전체가 놀이터였다. 사람들은 함께 지내고, 함께 이야기하며, 함께 집을 지었다. 케레는 그 마을에서 작은 빛에 의지해 할머니, 가족과 함께 껴안고 지내던 그 작은 공간을 항상 떠올렸다. 건축에 대한 첫 감각이었다.

케레는 프리츠커상 측과 진행한 수상 인터뷰에서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각별하다. 이곳은 마을 미래를 토론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쓰일 수 있다. (이런 의미를 지닌) 장소를 제도적인 건축물로 만들 때,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도발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케레는 항상 장소와 전통의 의미를 건축에 녹여내려 했다.

쿠두구 쇼게 중고등학교(2014~2016).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쿠두구 쇼게 중고등학교(2014~2016).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나무는 아프리카 전통을 상징하는 디자인 역할도 한다.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트 페스티벌이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코첼라의 케레 작품 ‘사발레 케’는 바오밥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다. 바오밥은 케레의 고향인 간도에서 약효 덕에 영험한 나무로 여겨졌다. 공사 중인 베냉 포르토-노보의 국회의사당 건물도 팔라버 나무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민들은 건물 밑 넓은 나무 그늘에 모일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코첼라의 바오밥 나무 모양의 쉼터 타워 ‘사발레 케’(2019). 부르키나 파소의 언어 중 하나인 비사 말로 ‘축하의 집’이라는 뜻이다.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미국 캘리포니아 코첼라의 바오밥 나무 모양의 쉼터 타워 ‘사발레 케’(2019). 부르키나 파소의 언어 중 하나인 비사 말로 ‘축하의 집’이라는 뜻이다.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스타트업 라이언스 캠퍼스(2019~2021).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스타트업 라이언스 캠퍼스(2019~2021).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케레는 베를린공과대학에 다닐 때 국제적인 기금 운동에 들어갔다. 대학 친구들에게는 커피와 담뱃값으로 프로젝트를 지원하라고 요청했다. 2년 뒤 미화 5만 달러를 모아 간도 초등학교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저 학교를 지어준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구상부터 완성까지 참여했다. 건축현장에서 함께 일하며 노하우도 함께 익혔다. 간도 초등학교 건축으로 케레는 유명해졌다. 2004년 아가칸 건축상을 수상했다. 2005년 독일 베를린에 케레 건축을 설립하는 기폭제가 됐다. 케냐, 모잠비크, 우간다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의료 시설을 지었다. 케레는 간도 초등학교를 지을 때처럼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 건물을 지을 때도 지역민들에게 일자리와 기술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해 봉사하는 이념도 함께 전파하려 했다. 그는 15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며 “(건축 참여와 연계로) 공동체 사람들은 하나의 건물 이상을 얻는다. 그것은 바로 영감”이라고 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케레는 건축이 쓸모가 아니라 목적이라는 것, 제품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내적으로 잘 인식하고 있다”고 평했다. “건축 과정에서 공동체를 강화·변화시켰다”고도 했다. 그를 건축가이면서 사회 운동가로 부르는 건 이런 이유도 있다. 미국 잡지 패스트 컴퍼니는 “케레는 점토에 마음을 섞어 큰 성과를 올렸다”고 평했다.

건축 비평가 박정현씨는 케레의 프리츠커상 수상을 두고 “백인 남자 중심인 건축계에서 흑인이 프리츠커상을 받는다면, 스타 건축가인 데이비드 아자예가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케레가 먼저 받은 것은 서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들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자예의 프로젝트 건축은 대부분 유럽에 있다.

건강과 복지를 위한 센터(2012~2014).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건강과 복지를 위한 센터(2012~2014).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박씨는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지만 케레는 주목받는 건축가였다. 2004년 아가칸 수상자이고, 2017년 서펀타인 파빌리온(영국 서펀타인 갤러리에서 여름에 임시로 만드는 파빌리온 프로젝트) 초청 건축가”라고 했다. 박씨는 그의 작업을 두고 “물, 전기, 인프라 등 모든 것이 부족한 부르키나 파소의 현실에 기반한 로우 테크놀로지와 지역성(손으로 눌러 만든 벽돌), 경량철골을 이용한 현대 건축 지식의 보편성을 탁월하게 융합하면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갔다”며 “남반구 저개발 국가의 도시·경제 개발이 글로벌 차원의 이슈(환경, 인구증가 등)로 떠오르는 점도 케레의 작업에 주목하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회와 공동체에 건축이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높이 평가하는 최근 프리츠커상 선정 기조”(박정현)가 유지됐다.

프란시스 케레의 설계 하에 공사 중인 베냉 포르토-노보의 국회의사당 건물 조감도.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프란시스 케레의 설계 하에 공사 중인 베냉 포르토-노보의 국회의사당 건물 조감도.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프란시스 케레의 설계 하에 공사중인 독일 뮌헨의 TUM 타워 조감도. 출처 : 케레 아키텍처(kerearchitecture.com)

프란시스 케레의 설계 하에 공사중인 독일 뮌헨의 TUM 타워 조감도. 출처 : 케레 아키텍처(kerearchitecture.com)

프리츠커상은 그간 약자, 빈자를 위한 공공건축을 하는 건축가에게 여러 차례 상을 줬다. 2021년 수상자 안느 라카톤과 장 필리프 바살도 ‘기존 건물을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작업했다. 낡은 공공건축물이나 주택 등 기존 건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넓히고 기능을 확대한 것이다. 2016년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빈민들을 위해 대지 절반에 먼저 집을 지어준 뒤 나머지 절반에서 주민들이 자신의 집을 증축하도록 했다. 2014년 수상자 반 시게루는 종이를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 전쟁 난민과 이재민에게 값싼 건축물을 빨리 짓게 하기 위해서였다.

케레는 지금도 아프리카의 여러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NPR과 인터뷰하며 “마음에 둔 프로젝트는 우리 마을(고향 간도)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를 짓는 것이다. 재단과 지원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의료 시설도 필요하다. 건강관리센터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란시스 케레.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프란시스 케레.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pritzkerpriz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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