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삼킨 ‘반유대주의’ 논란…사라진 건 작품일까, 저항일까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글: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16시간을 꼬박 날아 ‘코로나19’로 1년 늦게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베네치아 비엔날레: La Biennale di Venezia)를 관람했다. 그러곤 다시 ‘제15회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15)를 보기 위해 독일 헤센의 작은 도시 카셀로 향했다. 무더위 속 여정은 녹록치 않았다. 특히 카셀에서 마주한 방대한 공간과 작품들, 전시장 사이의 거리를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현장은 그 자체로 물리적‧시각적 노동이었다.

제15회 카셀 도쿠멘타 전시장 겸 안내소 역할을 하는 루루하우스. 홍경한 제공

제15회 카셀 도쿠멘타 전시장 겸 안내소 역할을 하는 루루하우스. 홍경한 제공

하지만 인류 앞에 놓인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자는 슬로건은 가장 동시대적이었으며 작품과 관람자가 분리되지 않은 전시방법은 신선했다. 당대 이슈를 모든 참여자들과 논의하고 담론화 하는 관계의 미학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단함은 이내 증발했다. 예술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5년 만에 열린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행사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현대미술에 있어 가장 권위 있는 전시 플랫폼으로 간주되는 ‘카셀 도쿠멘타’는 나치 정권의 만행에 대한 성찰 차원에서 시작됐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1955년 카셀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놀드 보데(Arnold Bode)에 의해 설립됐다. 5년마다 개최되는 국제미술행사로, 전위적·도발적·비판적이라는 게 특징이다.

미술인들에겐 동시대미술의 현주소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나침반으로 통하고, 미술애호가들에겐 꼭 봐야할 ‘예술의 성지’로 꼽히는 도쿠멘타는 올해 또한 뜨겁다. 개별 작품들이 내뿜는 일방통행식 메시지와 ‘경연장’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여타 메가 이벤트와는 달리 문화적 토론을 축으로 지구촌 공동체의 삶과 밀접한 속성은 관심의 온도를 높이는 촉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개막과 동시에 불거진 ‘반유대주의’ 논란은 카셀을 거대한 ‘열돔’으로 만드는 기폭제이다.

‘문화적 쟁의 장치’라는 본연의 존재감에다 예술이라는 대기권에 발달한 정치적 고기압까지 가세하며 발생한 열돔은 이이러니하게도 관람객들을 카셀로 끌어 모으는 배경이다. 주최 측에 의하면 6월 18일 개막일 기준 이미 7만장의 티켓이 판매됐다. 이는 바로 직전인 2017년 동시간대 보다 높다. 당시엔 약2만장이 팔렸다. 7월 들어 재확산 중인 ‘코로나19’가 복병이지만 이런 추세라면 ‘도쿠멘타15’는 과거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매회 평균 20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늘었다는 사실도 흥행을 담보하는 데이터다. 2017년엔 90만 명이 ‘도쿠멘타14’를 찾았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처럼 카셀 도쿠멘타에도 총감독 제도가 있다. 2022년의 경우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 예술가그룹 ‘루앙루파’(Ruangrupa)가 맡았다. 2002년 나이지리아 출신 기획자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를 제외하곤 그동안 백인 남성이 거의 독식해 왔다는 점에서 이변으로 평가된다. 그룹으로선 사상 최초다.

참여와 협업, 연대를 추구한 올해 도쿠멘타에선 관객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홍경한 제공

참여와 협업, 연대를 추구한 올해 도쿠멘타에선 관객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홍경한 제공

9명(구성원은 유동적이다)으로 구성된 감독팀이 내세운 전시 개념은 ‘룸붕(lumbung)’이다. 인도네시아어로 수확물을 저장한 뒤 나중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 쌀 ‘헛간’을 의미한다. 본래는 잉여 자원의 집합체이자 작물 저장소를 뜻하지만, 루앙루파는 이를 공동체 및 집단에 의한 합작 생산과 균등한 분배, 공존을 위한 참여와 논의의 장소 등의 다채로운 개념으로 확장했다. 그리고 다시 예술 및 경제 모델 구축, 참여자들 간의 수평 및 상호 작용, 공통의 구조 건설이라는 전시방법으로 구체화했다.

고로 ‘카셀 도쿠멘타15’에는 크고 화려한 모뉴먼트를 특정 공간에 들여놓는 식의 방법론은 부각되지 않는다. ‘아테네에서 배우기’를 주제로 한 2017년만 해도 아르헨티나 출신 예술가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in)의 대형 설치작품 ‘책의 파르테논(Parthenon of Books)’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이전엔 폭우로 무너져 더욱 유명해진 아이웨이웨이(Ai Weiwei)의 ‘템플릿(Template, 2007)’, 클래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의 거대 ‘곡괭이(The pickaxe, 1982)’ 등이 선보여 화제가 됐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작업은 드물다. 대신 창작의 ‘경로’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많다. 세계에 관한 다른 관점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 동반 관계 기반의 참여와 협업, 워크숍이나 토론 등 어떤 문제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내어 토의하고 교감하며 실행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참여와 협업, 연대를 추구한 올해 도쿠멘타에선 관객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벽면 대형 회화는 터머시 펠리의 ‘탄생’이다. 홍경한 제공

참여와 협업, 연대를 추구한 올해 도쿠멘타에선 관객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벽면 대형 회화는 터머시 펠리의 ‘탄생’이다. 홍경한 제공

그렇다고 현실을 비판하면서 대안을 촉구해온 도쿠멘타 특유의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 건 아니다. 전쟁, 난민, 차별, 여성, 소수자, 장애, 환경오염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사회·정치적 의제가 전시장 구석구석 포진되어 있다.

예술의 탈식민지화와 수평적 ‘논의’의 장

동시대 예술의 혁신과 도전을 다각적‧다층적으로 펼쳐내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함과 더불어 작금의 인류 과제를 예술적 실천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이번 도쿠멘타의 지향점이라면, 현대미술의 메시아처럼 군림하는 스타 작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하나의 특이점이다.

실제 ‘룸붕’의 14개 구성원 110여 팀 1500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직간접적으로 함께하고 있지만 독일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과 같은 소수를 제외하곤 대체로 생소하다. 엄청난 정보량을 갖춘 구글 검색에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한마디로 무명의 단체나 개인이 많다. 미국 및 유럽 보단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작가들의 참여 비율이 높다.(2019년 루앙루파가 감독으로 선정되었을 무렵 다들 예상했던 현상이다.)

이는 비중앙집권화라는 ‘룸붕’의 개념을 원만하게 승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예술 및 경제 모델로서의 집단성, 공동 자원의 공유, 균등한 배분, 참여자들 간의 수평 및 상호 작용, 공통의 구조 구축은 공동체일 때 보다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 작가의 배제는 자본주의와 예술의 문제를 연결시킨다. 작금 미술생태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술 시장에 대한 반발과도 상관있다. 다시 말해 예술의 물화에 부응한 채 시장에서 몸값 높은 작가들의 알리바이나 만들어주는 미술관 및 비엔날레들에 대한 나름의 ‘이견’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유명 작가를 중심으로 주변화 되거나 종속되는 예술 식민주의와 가부장적 구조, 그들에게만 부여되는 권력과 특권, 위계를 제거하기 위한 장치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전시의 틀은 ‘공동체’다. 결과 보단 ‘과정’에 방점을 둔다. 따라서 많은 수의 작품은 우러러봐야할 대상이 아니라 ‘논의’의 매개다. 이 작업들은 공동 작업(관람객 포함)으로 완성되며, 작가들 또한 기획자의 설계에 따라 전시공간을 지정받는 통상적인 절차에서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공간을 다른 참여 작가들과 합의하면서 설치됐다.

프리드리히광장에 설치된 리차드 벨의 ‘텐트 대사관’. 호주 토착민들의 땅을 강탈하는 것에 관한 정치적?문화적 담론생성과 연대투쟁을 촉구하는 취지의 작품이다. 홍경한 제공

프리드리히광장에 설치된 리차드 벨의 ‘텐트 대사관’. 호주 토착민들의 땅을 강탈하는 것에 관한 정치적?문화적 담론생성과 연대투쟁을 촉구하는 취지의 작품이다. 홍경한 제공

작품들은 ‘독백’을 제거한 채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중남미, 호주 원주민 등의 아이디어와 스타일을 반영해 교육하고 관람객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동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시내인 미테(Mitte)를 중심으로 풀다(Fulda), 베텐하우젠(Bettenhausen), 노트슈타트(Nordstadt) 등 카셀 내 지역 4곳에 분포되어 있다(각 지역은 색깔별로 구분된다). 박물관‧미술관, 교회, 군수품 생산 시설, 야외, 카페, 공원, 호텔, 역사(驛舍) 등 장소만 32개에 달한다. 워낙 많은데다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작업들이 축을 이루기에 전체가 몇 점인지를 헤아리는 건 무의미하다.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주 전시장 격인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상단에 장착된 디지털 디스플레이다. 이 붉은 색 전광판의 주인공은 주객이 전도된 채 살아가는 호주 원주민들이다. 갈수록 줄어 호주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한 원주민의 현실과 달리 120여 년 전부터 호주 정부가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들에게 진 유무형의 빚은 시시각각 축적된다. 호주 토착민들의 땅을 강탈하는 것에 관한 정치적‧문화적 담론생성과 연대투쟁을 촉구하는 프리드리히광장(Friedrichsplatz)의 설치 <텐트 대사관>(Tent Embassy)과 같은 맥락이다. 이 작품들은 호주 원주민의 권리를 옹호한다.

단 페르조브스키는 카셀 중앙역 광장 바닥에 자본주의와 예술, 코로나와 팬더믹, 비엔날레나 도쿠멘타와 같은 거대 행사에 관한 시니컬한 문장 등을 새긴 삽화 등을 그렸다.  홍경한 제공

단 페르조브스키는 카셀 중앙역 광장 바닥에 자본주의와 예술, 코로나와 팬더믹, 비엔날레나 도쿠멘타와 같은 거대 행사에 관한 시니컬한 문장 등을 새긴 삽화 등을 그렸다. 홍경한 제공

카셀 중앙역 광장 바닥에 그려진 단 페르조브스키(Dan Perjovschi)의 그림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에 속한다. 이곳에선 자본주의와 예술, 코로나와 팬데믹, 비엔날레나 도쿠멘타와 같은 거대 행사에 관한 시니컬한 문장 등이 새겨진 삽화를 만날 수 있다. 풍자적이라 유쾌하지만 마냥 웃고 넘기기 어려운 주제들이다.

케냐 출신의 그룹 네스트 콜렉티브의 설치작업 ‘ 보낸 사람에게 돌려주기 ’는 전자 폐기물과 쓰레기로 전락한 의류 때문에 생긴 아프리카의 환경파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제작됐다 . 재료는 압착된 헌옷이다 . 한국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헌옷 수출국 세계 5 위이다 . 홍경한 제공

케냐 출신의 그룹 네스트 콜렉티브의 설치작업 ‘ 보낸 사람에게 돌려주기 ’는 전자 폐기물과 쓰레기로 전락한 의류 때문에 생긴 아프리카의 환경파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제작됐다 . 재료는 압착된 헌옷이다 . 한국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헌옷 수출국 세계 5 위이다 . 홍경한 제공

케냐 출신의 그룹 네스트 콜렉티브(Nest Collective)의 칼 사우에 공원 설치작업 ‘보낸 사람에게 돌려주기(Return to Sender)’는 소비사회의 어두운 면에 집중한 리사이클 작업이다. 쓰레기, 전자 폐기물과 의류 운송으로 인한 아프리카의 환경파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제작됐다. 재료는 압착된 헌 옷이다. 한국은 불태워지거나 쓰레기로 버려져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헌옷 수출국 세계 5위이다.

도쿠멘타 설립자인 아놀드 보데의 형제인 폴 보데(Paul Bode)가 1951년 설계한 호텔 헤센란드(Hotel Hessenland)에도 묵직한 작품이 놓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메이드 유 룩(Made you look)의 등고선 모양의 설치와 사운드아트다. 이미지와 텍스트는 부유한 나라에 의한 무역 불균형과 현지 생산 노동력 착취, 토지의 탈식민화를 관통한다.

아프리카공화국 작가 메이드 유 룩은 호텔 헤센란드에  등고선 모양의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무역 불균형과 현지 생산 노동력 착취, 토지의 탈식민화에 관한 작품이다. 홍경한 제공

아프리카공화국 작가 메이드 유 룩은 호텔 헤센란드에 등고선 모양의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무역 불균형과 현지 생산 노동력 착취, 토지의 탈식민화에 관한 작품이다. 홍경한 제공

한국의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의 작품도 출품됐다. 단채널 사운드 영상작업 ‘해초 이야기(Seaweed Story)’와 2채널 비디오와 사진으로 구성된 ‘열대이야기(Tropics Story)’이다. ‘해초 이야기’에는 사라져 가는 20여 명의 제주 해녀들의 합창 ‘제주 아리랑’이 담겼고, ‘열대 이야기’는 태평양전쟁 당시 점령 장소인 활주로와 버려진 동굴 요새, 묘지 등을 통해 전쟁이 남긴 흔적들이 녹아 있다. 역사와 인간, 문명과 자연, 식민주의라는 명사를 관통한다. 17세기 초 지어진 독일 최초의 극장 건물이었던 자연사박물관(Museum of Natural History Ottoneum)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팀 이끼바위쿠르르는 제주 해녀 ‘제주 아리랑’을 담은 ‘해초 이야기’,   태평양 전쟁 당시 점령 장소인 활주로와  동굴 요새, 묘지 등을 다룬 ‘열대이야기’를 출품했다. 홍경한 제공

한국팀 이끼바위쿠르르는 제주 해녀 ‘제주 아리랑’을 담은 ‘해초 이야기’, 태평양 전쟁 당시 점령 장소인 활주로와 동굴 요새, 묘지 등을 다룬 ‘열대이야기’를 출품했다. 홍경한 제공

이밖에도 멕시코 예술가 에릭 벨트란(Erick Beltrán)은 권력 체제를 탐구하는 작업을 무덤 박물관에 세웠다. 베를린의 ZK/U 예술 및 도시주의센터(ZK/U_Center for Art and Urbanism)는 꿀벌의 실종과 관련한 사운드 프로젝트를 안내소와 전시장, 아트샵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루루하우스(Ruruhouse)’에 앉혀 놨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프다르 아흐메드(Safdar Ahmed)는 시드니 근처 수용소 난민들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비디오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기타 남아시아의 생태적 문제와 정치적 억압을 비롯해, 쿠바의 정치적 박해, 아프리카의 퀴어 문제, 알제리 여성들의 투쟁기를 담은 작업들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난민, 환경, 자본주의에 관한 관점을 나타낸 작업들도 찾을 수 있다. 하나 같이 저항을 뿌리로 성장해온 도쿠멘타의 색깔을 명징하게 하는 사례들이다.

쿠바의 정치적 박해, 아프리카의 퀴어 문제, 알제리 여성들의 투쟁기를 담은 작업들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난민, 환경, 자본주의에 관한 관점을 나타낸 작업들도 찾을 수 있다. 저항을 뿌리로 성장해온 도쿠멘타의 색깔을 명징하게 하는 사례들이다. 사진은 프리데리치아눔에 전시된 알제리 여성들의 투쟁 기록. 홍경한 제공

쿠바의 정치적 박해, 아프리카의 퀴어 문제, 알제리 여성들의 투쟁기를 담은 작업들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난민, 환경, 자본주의에 관한 관점을 나타낸 작업들도 찾을 수 있다. 저항을 뿌리로 성장해온 도쿠멘타의 색깔을 명징하게 하는 사례들이다. 사진은 프리데리치아눔에 전시된 알제리 여성들의 투쟁 기록. 홍경한 제공

예술은 우리네 삶 가운데 있다

‘룸붕’의 소실점은 함께 나누고 같이 한다면 인류 앞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에 있다. 그 기대감을 각자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예술의 언어로 발화시키려는 것이 올해 도쿠멘타의 방향이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의 다수는 예술의 엄중함을 거둬냈다. 대중 친화적으로 다가서려 했음이 역력하다.

단 페르조브스키의 그라피티가 카셀 도쿠멘타 주 전시장으로 사용 중인 프리데리치아눔 기둥에 그려졌다 . 인간애 , 독립 , 힘 등의 단어와 문장이 다양한 그림들과 섞여 있다 . 홍경한 제공

단 페르조브스키의 그라피티가 카셀 도쿠멘타 주 전시장으로 사용 중인 프리데리치아눔 기둥에 그려졌다 . 인간애 , 독립 , 힘 등의 단어와 문장이 다양한 그림들과 섞여 있다 . 홍경한 제공

대표적인 작업은 프리데리치아눔 내·외부에 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놀이터’다. 1779년에 문을 연 박물관이면서 제1회 카셀 도쿠멘타가 개최된 역사적 장소를 떠받치고 있는 6개의 검은 기둥은 카셀 중앙역 바닥 그림을 그린 단 페르조브스키의 그라피티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인간애, 독립, 힘 등의 단어와 문장이 꽃과 같은 그림들과 뒤섞여 있다. 우리에게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들이다.

베를린 아트 그룹 ‘foundation Class’가 전시장 내 만든 휴식 공간.  홍경한 제공

베를린 아트 그룹 ‘foundation Class’가 전시장 내 만든 휴식 공간. 홍경한 제공

베를린의 ‘foundation Class’는 전시장 내에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어린이 전용 구역인 루루키즈(Rurukids)에는 미끄럼틀까지 준비됐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아예 관객 참여형 작업이 숱하다. 관람객 누구나 각자 바라는 바를 바닥에 자유롭게 적거나 작은 천에 적어 벽에 붙일 수 있다. 개중 우리가 하나 될 방법으로 ‘진정성’과 ‘배려’, ‘우정’을 제안한 한글도 눈에 띈다. 2017년 기준 카셀 도쿠멘타를 찾은 외국인 방문객 4위가 한국인이라는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특히 베트남 출신 작가그룹인 냐산 콜렉티브(Nhasan Collective)는 카셀 주민들과 협업해 오래전 기능을 상실한 ‘WH22’ 빈터에 작은 농장을 일궈 생산된 작품을 방문객들과 숙박하며 나누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어진 모더니즘 양식의 종교 건축물인 ‘새로운 형제들의 교회’를 방문하면 잡지 만들기 등의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다.

도쿠멘타 홀에선 태국 그룹 반 누르그 콜렉티브 아트 앤 컬쳐의 작품을 보며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다. 홍경한 제공

도쿠멘타 홀에선 태국 그룹 반 누르그 콜렉티브 아트 앤 컬쳐의 작품을 보며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다. 홍경한 제공

이외에도 전시장을 찾은 이들은 의자나 간단한 조형물을 직접 만들고 전시장 뒷마당에 식당을 차려 작가들의 고향에서 즐겨 먹는 간단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 참여도 가능하다. 도쿠멘타 홀에선 태국 그룹 반 누르그 콜렉티브 아트 앤 컬쳐(Baan Noorg Collaborative Arts and Culture)의 작품을 보며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다. 루루하우스에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이 제공된다.

이들 작업은 미술작품의 흔한 ‘혼잣말’과는 거리가 멀다. 함께 하고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놀고 먹고 대화하는 것 모든 게 예술이다. 이렇듯 ‘룸붕’은 예술 및 경제 모델 구축과 참여자들 간의 수평 및 상호 작용, 그리고 공통의 구조 건설이라는 전시 방법으로 예술인 세계를 창조했다. 관람객들은 그 세계 내에서 유영했으며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재점검했다.

예술이라는 대기권에 발달한 정치적 고기압

도쿠멘타의 성격도 그러려니와 세계인의 눈길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개막에 맞춰 카셀 곳곳에선 다양한 시위가 벌어졌다. 필리핀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집회가 한 필리핀 아티스트 집단의 주도 아래 프리데리치아눔 인근에서 열렸고, 인도네시아 작가 그룹 타링 파디(Taring Padi)의 그림이 벽면에 걸린 모 의류 회사 지점 앞에선 반유대주의 및 기타 단체에 반대하는 동맹 시위가 펼쳐졌다.

이외 이스라엘의 압제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거리 퍼포먼스 등, 정치적·사회적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는 전시장 안팎에서 강하게 부유했다.

하지만 핵폭탄급 이슈는 따로 있었다. 바로 ‘반유대주의(anti Semitism)’ 의혹 논란이다. 6월 18일 개막과 동시에 터진 잡음은 현재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정치, 종교, 인종, 역사, 국가, 예술 관련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논쟁의 장’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팔레스타인 예술가그룹 ‘TQoF’ 의 작품이 카셀 중앙역 맞은편에 위치한 전시 공간 ‘WH22’ 에 내걸렸다 . 왼쪽 두 작품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 낮잠 ’ 과 ‘ 추수 중 휴식 ’ 을 모티브로 했다 .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상황을 담았다. 반유대주의적 증오 발언의 무대라는 비난이 일었다 . 홍경한 제공

팔레스타인 예술가그룹 ‘TQoF’ 의 작품이 카셀 중앙역 맞은편에 위치한 전시 공간 ‘WH22’ 에 내걸렸다 . 왼쪽 두 작품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 낮잠 ’ 과 ‘ 추수 중 휴식 ’ 을 모티브로 했다 .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상황을 담았다. 반유대주의적 증오 발언의 무대라는 비난이 일었다 . 홍경한 제공

사건은 카셀 중앙역 맞은편에 있는 ‘WH22’라는 전시공간에 팔레스타인 예술가 집단인 ‘TQoF’(The Question of Funding)의 작품이 내걸리면서 시작됐다. 퀴어와 트랜스 문화,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입장에서 기술된 작업들이 결합된 공간 내 몇몇 작품이 선전·선동적(agitprop)이거나 반유대주의적 증오 발언의 무대라는 비난이 일었고, 전시 개막을 한 달여 앞둔 어느 날 익명의 괴한이 ‘WH22’에 난입해 ‘페랄타(Peralta)’, ‘187’ 등의 위협적인 낙서를 남기는 반달리즘(Vandalism)이 벌어졌다.

‘페랄타’는 스페인 우익 극단주의 청년 단체 수장으로 알려진 ‘이사벨 페랄타’(Isabel Peralta)의 이름을 암시한다. 숫자 ‘187’은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를 담은 미국 캘리포니아 법령안을 뜻하는 숫자로 추측되고 있다. 이중 이사벨 페랄타는 우익 극단주의자로서, 네오나치(Neo-Nazis)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프리카 작가 그룹인 ‘와주쿠 아트 프로젝트’의 ‘Killing Fear of the Unknown,’. 홍경한 제공

아프리카 작가 그룹인 ‘와주쿠 아트 프로젝트’의 ‘Killing Fear of the Unknown,’. 홍경한 제공

문제의 작품은 모하메드 알 하와리(Mohammed Al Hawajri) 작가의 ‘게르니카 가자’(Guernica Gaza)이다. 형식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빌려왔다. 농민들을 배경으로 가자지구의 건물들이 불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1937년 독일이 스페인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한 것과 동일시했다는 게 반달리즘의 이유다.

또 하나의 작품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낮잠’과 ‘추수 중 휴식’을 모티브로 한 그림이다.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상황으로 등장한다. 대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복잡한 갈등이 내재하여 있다.

생각해보면 지난 1월 ‘TQoF’와 도쿠멘타 큐레이터들이 반유대주의 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한 블로거의 주장이 제기된 상태였기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없진 않을 수도 있었다. 일부에선 작가들과 큐레이터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 즉 친팔레스타인 운동인 BDS(Boycott, Divestment, Sanctions)에 동조한다는 혐의까지 부여한 상태였다. 독일은 BDS와 관련될 경우 지원을 금지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쿠멘타 측과 예술감독의 대응은 부실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파문이 불거졌다.

‘작품 철거’에 카셀 권위 타격 불가피

개막 3일 뒤인 6월 21일, 1998년 족자카르타에서 설립된 인도네시아 예술가 그룹 타링 파디의 2002년 작품 ‘민중의 정의(People‘s Justice)’가 반유대주의라는 이유로 주최 측에 의해 전면 해체됐다. 6월 18일 개막식에 참석한 필자는 프리드리히광장에 설치된 작품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얇은 골판지와 합판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삽화 조각 작품들도 함께 철거됐다. .

반유대주의 논란을 낳은 채 6월 21일자로 철거된 인도네시아 아티스트 그룹 타링 파디의 작품 ‘민중의 정의’. 홍경한 제공

반유대주의 논란을 낳은 채 6월 21일자로 철거된 인도네시아 아티스트 그룹 타링 파디의 작품 ‘민중의 정의’. 홍경한 제공

‘민중의 정의’에는 다윗의 별이 있는 스카프와 1951년 설립된 이스라엘 해외 정보국인 모사드(Mossad)라는 글자가 새겨진 헬멧을 착용한 돼지 얼굴의 군인이 등장한다. 다른 군인의 헬멧엔 옛 소련 시절의 첩보조직인 KGB가 각인됐다. 이들은 인간의 두개골과 뼈를 짓밟고 있다. 특히 그림 속 뾰족한 이빨의 한 남성은 나치 친위대 SS(Schutzstaffel) 로고가 각인된 모자를 쓰고 있다. 모두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동물과 동일화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루앙루파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 그룹이라는 사실에 기인한 듯 전시장 겸 안내센터인 루루하우스에서도 반(反)무슬림 스티커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유대주의 논란은 종교와 인종차별 문제로 번졌다.

이와 같은 사건들의 연속은 전시감독인 루앙루파의 입장을 딱하게 만들었다. 이미 지난 5월 세 번에 걸쳐 반유대주의 및 이슬람 혐오, 인종차별 등을 포함한 예술적 자유에 대해 논의하는 전문가 포럼을 준비했다가 불발 된 직후였기에 곤란함은 증폭됐다. 포럼은 반유대주의 요소가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이었다.

대신 루앙루파는 반유대주의를 부정하는 성명서를 한 독일 일간지와 예술가 안톤 비도클(Anton Vidokle)이 창립한 출판 플랫폼 및 아카이브 ‘e-flux’에 발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효과는 희미했다. 그리곤 6월 23일 반유대주의 의혹을 받고 있는 예술 작품을 둘러싼 부정적 평판과 소문에 대해 사과했다.

그들은 “반유대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며 “도쿠멘타를 찾은 많은 관람객 및 작가들에게 실망과 수치심, 좌절과 충격을 가한 것에 대해 사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실수였다”고 덧붙였다. 논란의 중심에 선 작가 그룹 타링 파디 역시 고개를 숙였다. “반유대주의와는 상관없다”면서도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오해를 불러왔고 그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을 자신들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타링 파디는 “‘민중의 정의’는 2002년 인도네시아의 32년 군사독재 기간 동안 우리가 목격한 군국주의와 폭력에 대한 캠페인의 일부”라면서 “그 유산은 오늘날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적었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이러한 경험의 표현이다”라며 “결코 반유대주의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상황에서 시작되었지만 유럽과 독일의 선상에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론은 갈리고 있다. ‘선동’일 뿐 변명하지 말라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라는 목소리가 대립하고 있다. 나치의 만행에 대한 성찰 차원에서 시작된 도쿠멘타가 경영진과 큐레이터들에게 배신당했다는 견해와 함께,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적 적대감, 동시대 자행되고 있는 역사적 논쟁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작품 철거를 결정한 도쿠멘타에 실망했다는 시선도 없지 않다.

존재에 대한 의문과 공존의 의미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가 당위성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에 대한 토의가 실종된 과도한 여성주의라는 평가에 더해, ‘만국박람회’ 같은 국가관 체제를 고수하는 진부함의 예로 거론되고 있다면, 카셀 도쿠멘타는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와 박해, 인종차별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모양새다. 중요한 건 루앙루파의 실험은 베니스 비엔날레나 광주비엔날레 등 익히 알려진 국제행사들과 미술관들이 엘리트 기득권주의에 구속된 채 공허한 광경을 연출하는데 막대한 혈세를 사용하는 현재를 비판하고 제도적 위계질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 반면, 반달리즘과 작품 철거, 독일 문화부 장관의 사퇴까지 거론되는 등의 정치적 압박에선 무기력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지역적 맥락을 고려한 기획이었다면 좋았겠으나 아쉽게도 루앙루파의 ‘기획 민감도’는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 참여 작가 중 한명인 독일의 히토 슈타이얼은 도쿠멘타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과 반유대주의 논란을 통제하지 못한 예술감독과 주최 측의 능력에 회의를 느낀다며 지난 7월 8일 도쿠멘타에서 하차했다.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던 그의 작품도 철수됐다.

‘민중의 정의’를 해체한 것은 그 자체로 67년 간 저항으로 쌓은 권위에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히토 슈타이얼의 도쿠멘타 하차 또한 비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미 늦었지만 도쿠멘타 측은 문제의 발단이 된 ’민중의 정의‘를 계속 걸어놓고 열띤 토론의 장으로 승화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이를 감독의 역량부족만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한껏 기울어진 정치적 영향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탓이다. 일례로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 독일 유대인 중앙회의, 주독 이스라엘대사관 등은 작품이 공개되자 거세게 반발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예술을 빙자한 적대감을 표한 것이라며 논란이 된 작품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건 놀랄 만큼 빠르고 강력했다. 물론 작가들의 작품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유무형의 압력에 저항해온 도쿠멘타의 이념과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6 월 18 일 개막을 전후해 카셀 시내 곳곳에선 동시대 현안과 관련된 여러 시위가 벌어졌다 . 사진은 ‘ 이스라엘 = 아파르트헤이트 ’ 라는 현수막을 들고 나온 시민들의 집회 모습 . 홍경한 제공

6 월 18 일 개막을 전후해 카셀 시내 곳곳에선 동시대 현안과 관련된 여러 시위가 벌어졌다 . 사진은 ‘ 이스라엘 = 아파르트헤이트 ’ 라는 현수막을 들고 나온 시민들의 집회 모습 . 홍경한 제공

인종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과 혐오는 당연히 없어져야 하고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그 그림들이 곧바로 반유대주의로 평가되는 것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다. 비록 보기에 따라 일부 작품은 ‘룸붕’이 가리키는 공존과 화합, 배려, 동행 등의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고, 비판이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바뀐다면 공존의 의미 역시 퇴색하지만 한편으로 예술은 공격적일 수 있으며 다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정치에 대한 비판도 허용해야 한다.

사회에 대한 관점이란 저마다 다르고 존중되어야 옳다. 그리고 예술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선 다른 견해와 비판적 담론도 견뎌야 한다. 도쿠멘타나 비엔날레는 바로 그런 다름을 건강한 논의로 만들어가는 무대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100일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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