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과학 발전은 몇몇 선각자의 업적일까… 그들은 민중의 작업을 체계화한 것뿐

김종목 기자

▲ 과학의 민중사…클리퍼드 코너 지음·김명진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664쪽 | 3만원

과학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은 주로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위인이다. 사람들은 전통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이들을 기억한다. 예컨대,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며 중력의 법칙을 알아냈다는 식이다. 과학 전부를 그들에게 빚진 듯이 여기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지배 엘리트의 관점에서 쓰인 과학 영웅의 서사 대신 민중사를 제시한다. 과학 위인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업적이 장인, 상인, 산파, 토지경작자들의 공헌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과학은 빛나는 이론가들의 선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창조적인 수작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책과 삶]과학 발전은 몇몇 선각자의 업적일까… 그들은 민중의 작업을 체계화한 것뿐

저자는 과학의 민중사를 제시하며 널리 퍼진 기존 시각을 뒤집는다. 과학의 정의부터 그렇다. 저자는 과학을 자연에 관한 지식과 여기에 연관된 지식 생산 활동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과학이 수렵채집인, 농부, 선원, 광부처럼 자연과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민중의 활약은 과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문자나 수의 개념, 숫자 계산의 발명은 경작자, 장인, 상인들의 노동 절약 혁신에서 나왔다. 미국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쌀을 재배하려 할 때 벼의 생태에 관한 지식을 갖춘 아프리카 노예를 사오는 수밖에 없었다. 근대의 지리적 발견을 이끈 지도 작성은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에서 유래했다. 항해술의 발전은 대양의 조수, 해류, 탁월풍, 지구 자기장의 특성, 천문 현상에 대한 자연 지식의 성장에 의존했다. 뱃사람들의 살아 있는 지식 말이다. 선원과 어부들은 달의 위치와 조석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정교한 표를 만들기도 했다. 프랭클린의 멕시코 만류를 그린 해도는 고래잡이 배들에서 배운 내용이다. 광부와 대장장이, 옹기장이, 금속 노동자는 화학과 재료 과학의 진보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여성들은 지역의 치료사나 산파 역할을 하며 의료 과학에 기여했다. 에너지 보존과 변환 법칙들은 증기기관의 효율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던 엔지니어들의 치열한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저자는 과학을 자연지식, 기술을 포함한 넓은 의미로 보면서 기존 과학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꼬집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자폭탄 개발과정에 참여했던 몇몇 물리학의 귀족들은 ‘물리학의 제국주의’를 구축했다. 그들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을 연성과학이라며 무시하며 화학, 수학, 생물학 등 경성과학 가운데서도 특히 물리학에 특권직 지위를 부여했다. “가치가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는 등 객관성과 중립성을 동일시하는 이들 귀족의 이상은 종종 기존 사회 질서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과학의 역사와 기술의 역사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은 과학이 평범한 인간 세계를 초월해 구름 위를 떠다니는 순수한 사고의 영역에서 생겨났다는 그릇된 관념을 강화시키는 데 한몫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4~17세기를 중심으로 진정한 과학의 혁명가들을 가려낸 저자는 시장경제 논리에 종속된 현대과학의 문제를 지적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과학, 기술 그리고 산업을 전 세계 계획경제의 맥락 속에서 진정한 민주적 통제 아래 놓이게 할 수 있느냐이다.”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