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여당 108석(36%), 야당 192석(64%)이다. 선거 전 ‘기후정치바람’을 비롯한 16개 시민단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후공약을 두 가지 이상 제시한 후보는 696명 중 168명(24.1%)에 불과했다. 이 중 당선된 후보는 총 64명으로, 여당이 10명(15.6%), 야당이 54명(84.4%)인 것으로 분석됐다.
기후정치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정책과 행동을 다루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탄소 배출 감축, 재생에너지 촉진, 환경보호 정책, 기후협상 및 국제협력 등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 범위를 좁혀서 보자면 탄소배출 감축, 그중에서도 압도적 비중(86.9%)을 차지하는 에너지 부문의 혁신이 기후정치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후정치 위기가 심각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기후공약을 제시한 후보가 24.1%에 불과하고 당선인들의 정당 분포 또한 특정 정당에 쏠리는 현상이 심각한 것이 첫 번째 위기다.
두 번째 위기는 각 정당의 기후정책 공약에 있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가 분석한 정당별 탈탄소 관련 정책공약을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규제 강화(목표치 상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시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장의 힘’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선순환 구조는 어느 정당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공약 제시한 후보 24%뿐
우리나라 정부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때는 이미 20여년 전이다. 2003년 8월, 정부는 대통령 주재 ‘차세대 성장동력 보고회’를 통해 수소연료전지를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했다. 당시 정부는 2012년까지 2차전지 확보 세계 1위, 수소연료전지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5% 달성을 목표로 정하고 전체 전력생산량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8.4%까지 늘리기로 했다.
2010년엔 5년 안에 세계 5대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의 도약을 선포하고, 2030년까지 국가 단위의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거창한 선포의 현주소는 초라하기만 하다. 전력 생산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2022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스마트그리드도 아직 한 도시도 아닌 1만1000가구의 시범사업에 그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정권 교체가 수차례 이루어졌음에도 모든 정권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늘 ‘용두사미 정책’으로 끝났다. 여기에는 뿌리 깊은 오해가 있었고 또 ‘시장 활용’이라는 해법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방치한 면이 크다.
첫 번째 오해는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여건이 안 된다는 믿음이다. 우리나라 여건이 세계 최고의 수준은 아니지만 산업경쟁력을 다투는 나라와는 비슷하거나 우수하다. 태양광 평균 일사량은 1㎡당 1459kWh(킬로와트시)로 중국(1457), 일본(1355), 독일(1056)에 비해 우수하다. 육상풍력발전 평균이용률은 약 23%로 일본(20)·호주(27)·중국(26)과 비슷하며, 해상풍력발전은 약 30%로 일본(30)·중국(35) 미국(30~50, 일부지역은 30~31)과 비슷한 수준이다. 풍속 범위는 초당 5.39~8.12m(중위값 6.2m)로 경제성 확보 기준인 6m를 넘는 지역이 다수 존재한다.(한국에너지공단)
두 번째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필수적인 한국전력의 독점 체제 개편을 민영화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환경적·경제적으로 재생에너지가 중요해지기 전까지는 한전 독점 체제가 나름대로 장점이 많았다. 정부와 한전도 나름대로 잘 운영했고 덕분에 기업과 국민들도 품질 좋은 전기를 싼값에 마음껏 사용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중요해지면서 이러한 독점 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재생에너지는 기후와 날씨의 영향으로 전기 생산의 지역적 편재성과 간헐성·변동성이 심하다. 이러한 전기를 잘 저장했다가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전력 시스템보다 4.9배의 설비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과 AI, 에너지 신기술을 이용하여 효율 향상을 이루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오해 불식시켜야
그러나 모든 비용을 보상해주는 총괄원가주의하에서 송전·배전·판매 부문의 독점을 영위하는 한전으로서는 이런 대규모 전환을 위한 장기적 비용투자를 감행할 인센티브가 희박하다. 대안은 한전은 기존대로 역할을 수행하면서 배전·판매 부문을 개방하여 신규 기술로 무장한 사업자들과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RE100도 가능하다. 민영화가 아니다. 우체국 택배와 민간 택배가 경쟁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세 번째는 주택용 전기를 비싸게 해서 산업용 전기를 지원한다는 오해다. 2010년 이전까지는 산업용을 싸게 공급한 게 맞다.
그런데 2003년부터 2013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은 총 12회 80.6%(누계)를 인상하고 주택용은 5회 인상 및 4회 인하하여 총 4.2%(누계) 인하를 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2022년 2분기부터 현재까지 kWh당 주택용은 총 5회 40.4원을 인상했다. 반면에 대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을·고압B)은 2023년 3분기에는 평균보다 4배 이상 차등 인상하고 4분기에는 산업용만 13.5원 올리는 등 총 63.1원을 인상했다. 2023년 판매단가(원/kWh)는 평균 152.8, 산업용 153.7, 일반용 169.5, 주택용 149.8, 기타 100.9였다(한전IR).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3.9원 더 높다. 그런데 전기요금은 이러한 표면단가보다 원가회수율로 판단해야 한다. 산업용은 고압으로 송전하므로 주택용보다 송전 손실률이 적고 전봇대도 적게 든다. 반면에 주택용은 저압을 사용하므로 가가호호 배전 비용과 검침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러한 요인을 감안하면 산업용은 주택용보다 원가가 20원 이상 낮다. 따라서 이제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을 보조해주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후정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오해를 불식시켜 시장 친화적 정책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