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라틴어 등 15개 언어 자유자재 구사… 괴물번역가 신견식씨 문학작품 번역 데뷔

정원식 기자

그동안 기업 비즈니스 문서 ‘실용 번역’ 해 와

추리소설 ‘불안한 남자’ 스웨덴 원어번역 출간

“시공 넘어 거의 모든 언어 통달한 천재” 평가

한 인간이 습득할 수 있는 외국어의 최대치는 어느 정도일까.

번역가 신견식씨(41·사진)는 여러 외국어를 해독할 수 있는 ‘언어 괴물’이다. 그가 해독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 핀란드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그리스어, 일본어, 중국어, 라틴어 등 대강 헤아려도 15개가 넘는다. 프랑스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조동신 북21 해외문학팀장은 “실제로는 아마 20개쯤 될 것”이라며 “더 놀라운 것은 현대 프랑스어나 현대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중세 프랑스어나 중세 스페인어처럼 해당 언어의 옛 형태까지 해독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신씨는 “사전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수준은 당연히 아니다. 사전 없이 사회나 문화, 언어에 대한 글들을 대략 이해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대 아이슬란드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팀 세버린의 장편역사소설 <바이킹>(뿔)을 번역한 이원경씨는 역자 후기에서 “(신견식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에 등장한 온갖 인명과 지명은 제 영혼을 잃어버렸을 것”이라며 “장소와 시대를 넘어 거의 모든 언어에 통달한 진정한 천재”라고 표현했다. 신씨는 <바이킹>의 감수를 맡았다. 이씨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번역하는 사람들’ 카페에서 신씨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았다”며 “<바이킹>에 고대 노르드어 인명과 지명이 등장하는데 내 힘으로는 정확히 옮기기 어려워 감수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리스어·라틴어 등 15개 언어 자유자재 구사… 괴물번역가 신견식씨 문학작품 번역 데뷔

신씨는 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 4학년 때 번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달린 번역서는 지난해 11월 출간된 스웨덴 추리소설 작가 헨닝 망켈의 <불안한 남자>(곰)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글로벌 기업의 비즈니스 관련 문서를 번역하는 실용번역을 해왔다. 그를 문학번역가로 끌어낸 건 스칸디나비아 스릴러 열풍이다. 2008년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이 출간된 이후 국내 시장에 북유럽 스릴러 출간 붐이 일었고, 원어 번역자를 찾던 출판 편집자들의 시선에 포착됐다. 많은 스웨덴 추리소설이 번역됐지만 독일어판이나 영어판 중역이 아닌 스웨덴어판 번역은 <불안한 남자>가 처음이다. 한국에서 스웨덴어 번역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는 현재 스웨덴 추리소설 작가 오사 라르손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앞으로는 문학작품 번역의 비중을 높일 생각이다.

언어에 대한 신씨의 열정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의 아버지가 은행에서 가져온 포스터에서 시작됐다. “포스터에 유럽 국가들의 화폐가 찍혀 있었어요. 지폐에 여러 나라 언어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걸 들여다보면서 여러 언어의 상이한 형태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중·고교 시절에 벌써 본격적인 언어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제목에 ‘인도유럽어학’이라는 말이 들어간 학술서적을 구입해 무작정 읽었다. 여러 언어로 된 설명이 나온다는 이유로 전자제품 설명서를 모으기도 했다.

언어천재의 사전 욕심은 유별났다. “고등학교 때는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사전을 제 돈으로 다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갖고 있던 사전들을 출판사별로 하나씩 빌렸어요. 사전마다 표제어들의 정의나 설명이 조금씩 달랐죠. 사전을 책 읽듯이 봤습니다. 영어 사전에서 흥미로운 단어가 나오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사전을 뒤져서 같은 뜻을 지닌 단어들을 찾아봤죠.” 현재 대전에서 살고 있는 그의 서재에는 45종의 외국어를 망라한 수많은 사전이 꽂혀 있다.

대학에서는 공부의 폭이 크게 확장됐다. 한국외국어대에 입학한 덕을 톡톡히 봤다. 여러 언어 관련 학과의 강의를 들으며 언어에 빠져들었다. 어느 학기에는 하루 한 끼만 먹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는 신씨는 2000년 서울대 대학원 언어학과에 진학해 역사비교언어학을 전공했다. 이 시기에는 번역을 하느라 정작 대학원 공부에는 소홀했다.

그의 목표는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들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다. “잘 따져보면 모든 언어에는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어요. 그 사실이 제게 커다란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언어에 대한 그의 욕망은 지금도 무한증식하고 있다. 신씨는 지난해에 아랍어와 폴란드어를 공부했다. 올해는 페르시아어와 루마니아어를 익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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