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독자·서적상, 마을 광장서 독회·투표…시상식이 축제 같았다”

심혜리 기자

소설가 이정명, 이탈리아 대표 문학상 수상 뒷이야기

이탈리아의 문학상 프레미오 셀레지오네 반카렐라상을 수상한 이정명 작가.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이탈리아의 문학상 프레미오 셀레지오네 반카렐라상을 수상한 이정명 작가.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등 대중적 역사소설을 써온 베스트셀러 작가 이정명은 지난 3월21일 이탈리아의 출판사로부터 e메일을 한통 받았다.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 ‘프레미오 셀레지오네 반카렐라’의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것이었다. 한국 소설가로는 처음이었다. 지난 9일 이정명 작가를 직접 만나 문학상 수상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점도 기뻤지만 일찍이 접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수상작 선정 방법과 수상 방식을 경험했다는 사실도 즐거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주요 출판사 관계자와 작가, 평론가,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반카렐라 위원회’가 매년 3월 이탈리아에서 앞서 1년간 출간된 소설을 검토해 가장 뛰어난 여섯 작품을 선정합니다. 선정된 작가들은 3개월에 걸쳐 수차례 이탈리아 전국 순회 독회를 가지고요, 7월 시상식 날엔 폰트레몰리라는 작은 마을에 모여 200여명의 서적상들이 투표를 합니다. 독자들과 작가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축제처럼 진행이 되더라고요. 투표 결과, 최다 득표 작품에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을, 나머지 다섯 작품엔 ‘프레미오 셀레지오네 반카렐라’ 문학상을 주는 거예요.”

그에게 상을 안긴 작품은 윤동주 시인의 생애 마지막 1년과 일본 검열관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그린 작품 <별을 스치는 바람>(은행나무·2012)이다. 수상 소식을 알리는 e메일을 받았을 때 작가는 “놀랐고 얼떨떨하다 못해 의아하게 생각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독자·서적상, 마을 광장서 독회·투표…시상식이 축제 같았다”

이탈리아어판은 베네데타 메를리니의 번역을 통해 <간수, 시인, 그리고 조사관>(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출간됐다.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고 작가는 전했다. 반카렐라 위원회는 “참혹한 전쟁 가운데 있는 인간성과 예술에 대한 위대함을 긴박한 추리의 구조로 잘 녹여냈다”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상이 이탈리아 출판 문학의 유서 깊은 전통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19세기에 이탈리아엔 독특한 문화가 있었어요. 마치 조선의 보부상처럼 서적상이 각 도시를 돌면서 사람들에게 생필품도 팔고 책도 팔았던 겁니다. 작은 수레에 책을 싣고 다니면서요. ‘반카렐라’가 우리말로 작은 수레라는 뜻이에요. 자기가 맡은 도시에 가서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했죠. 조선 후기의 직업적인 낭독가인 전기수와 보부상을 합쳐놓은 것처럼 말이에요. 서적상들이 이동하다 자연스럽게 모여 올해는 어떤 책이 잘 팔릴 것 같다고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고, 또 책을 서로 추천하기도 한 거죠. 이런 식으로 모여 회의를 하던 전통이 근대까지 유지되면서 1952년에 상이 제정된 거예요.”

그는 투표와 시상식이 왜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 폰트레몰리에서 열리는지도 부연했다.

“폰트레몰리는 이탈리아 북부 교통의 요지였어요. 그곳을 통해 밀라노든, 토리노든, 로마든, 베네치아든 다 갈 수 있어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서적상들도 자연스레 그곳에 모여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 거죠. 시상식 날 가봤더니 생각보다 작은 마을이었어요. 중앙 광장이 작가, 독자, 서적상들 1000여명으로 꽉 들어차더라고요.”

투표로 시작해 시상식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날 밤은 “모두가 즐기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그는 기억했다.

“책을 정말 좋아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 이 마을을 가득 채워 즐겁게 놀더라고요. 한쪽에서 독회를 하는 동안 한쪽에선 개표를 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표가 많이 나오면 환호도 하고, 서로 응원을 해요. 어떤 작가의 경우엔 팬클럽이 왔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이렇게 책을 즐길 수 있는 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 특별한 현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수상보다 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작가는 이번 수상으로 자신의 소설 속에 있는 20편 이상 되는 윤동주의 시가 조금이라도 더 해외 독자에게 많이 읽혀 기쁘다고 말했다.


Today`s HOT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폭격 맞은 라파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