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책 10

사유의 빈자리 채워줄 ‘시대정신’…책장을 넘기며, 한 해를 넘기다

김유진 기자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선정한 2018년 ‘올해의 책’ 10권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8년 한 해 경향신문 ‘책과 삶’ 1면과 머리기사를 장식한 책들 가운데 시대의 고민을 읽어내고,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한 책들을 선정했다. 김영민 기자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선정한 2018년 ‘올해의 책’ 10권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8년 한 해 경향신문 ‘책과 삶’ 1면과 머리기사를 장식한 책들 가운데 시대의 고민을 읽어내고,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한 책들을 선정했다. 김영민 기자

책은 다소 느립니다. 변화를 발빠르게 좇아가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서 주위를 응시합니다. 책이 가진 그 얼마간의 ‘거리’로 인해, 어쩌면 사회를, 결국은 나 자신을 더욱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2018년 경향신문 ‘책과 삶’ 1면과 머리기사를 장식한 책들을 모아놓고 보니, 시대의 고민이 고스란히 읽힙니다. 소수자 혐오와 차별, 사회 부조리, 재난 등 우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게끔 하는 책들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영혼을 풍요롭게 할 책들과 올해 가장 빛났던 저자들을 소개합니다.

■백래시(수전 팔루디 | 아르테) - 80년대 미국 ‘반페미니즘’한국 현실 보는 듯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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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이나 지나서 국내에 번역된 ‘여성주의 고전’을 둘러싼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책은 1980년대 미국에서 전개된 전방위적인 ‘반페미니즘’ 선전전을 다루고 있지만, 마치 한국 현실을 묘사하는 듯한 기시감을 자아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분출된 여성들의 분노는 미투 운동, 불법촬영이나 낙태죄 폐지 공론화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격렬한 여성 혐오가 불거졌다. 여러모로 ‘백래시’로 부를 만한 현실과 공명하면서 800쪽에 이르는 ‘벽돌책’은 출판사의 예상을 넘겨 7000부가 팔렸다. 백래시는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 일각의 반동적 움직임을 통칭하는 용어로도 널리 쓰였다. 출간 1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책은 2030 여성들이 꾸리는 자발적인 독서모임 등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한풀 꺾인 듯한 페미니즘 도서 열풍의 불씨가 그래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책 때문은 아닐지.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 어크로스) - “혐오 표현이 혐오를 키워” 차이 포용하는 교양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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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도 인터넷에도 소수자에 대한 무차별적 혐오가 난무했다. 모두가 우려를 표했지만, 누구도 혐오표현이 정확히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고맙게도 법사회학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가 ‘혐오표현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는 담담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맘충’ ‘동성애 반대’ 따위의 말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발화인지 얘기했고, 언제라도 실제 차별이나 증오범죄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제도적 규제 방안들,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등 민감한 주제들도 피해가지 않았다. 인권 전문가로 소수자를 대변하는 현장에 설 때마다 “혐오표현에 얻어맞으면서” 느낀 고민들도 솔직하게 담았다.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차이를 포용하는 사회를 꿈꾼다면, 한 번쯤 읽고 또 여러 번 곱씹어야 할 책이다.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 | 시대의창) - 이주 노동자 밑바닥 인생 공장형 축산의 폭력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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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가 기피하는 육체노동, 알면서도 외면하는 공장식 축산에 관해 이토록 매끈하고 매력적인 르포가 가능하다니. 저자 한승태는 4년간 식용 닭·돼지·개를 기르는 농장 10곳에서 일했고, 틈틈이 그때의 경험을 일기로 기록했다. 하지만 책은 ‘체험 르포’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다. 축산업에 내재된 폭력성을 고발하는 가운데, 동물을 ‘도태’시켜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성찰하고, 나아가 인간과 동물이라는 종을 나누는 ‘선’ 자체를 의문시한다. 현장에서 함께 부대끼는 노동자들과 농장주, 이주자들의 ‘밑바닥 인생’에 대해서도 남다른 이해를 보여준다. 저자는 첫 책 <인간의 조건>(2013)에서 이미 다양한 일터로 내려가 ‘워킹푸어 잔혹사’를 그려 보인 바 있다. 한층 무르익은 스토리텔링 솜씨, 자기만의 단련된 시선, 적재적소에 배치한 익살과 유머를 두루 겸비한 저자의 다음 책을 어서 보고 싶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 사계절) - ‘1급 지체장애’ 변호사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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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서울대를 나온 변호사가 쓴 책이라면, 역경 극복 스토리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김원영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장애인이라는 정체성과 씨름해 온 자기 삶의 궤적을 되밟으며 장애 경험에 대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또 장애학·사회학·법학 이론을 물 흐르듯이 엮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휠체어 운전부터 공공장소에서 용변을 보는 일까지, 장애인에게는 ‘노련함’이 요구된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에 투명하게 반응하다가는 오히려 비난만 날아올 수도 있다. 그는 “내 존재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선언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이것이 ‘정체성을 수용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실천적 태도”라고 말한다. ‘잘못된 삶’이란 결코 없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가 앞으로도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펼쳐나가기를.

■폭염 사회(에릭 클라이넨버그 | 글항아리) - 약자들에게 더 치명적인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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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염에 지쳐 있던 올여름, 때마침 이 책이 찾아왔다. 일주일간 7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4년 시카고 대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 보고서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는 살인적 무더위가 결코 고르게 사람들을 덮치지 않았음을 성실하게 증명해 보인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의 절대다수는 혼자 사는 가난한 노인들이었고, 특히 흑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폭염 사망자의 지형도는 인종차별 및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했다”는 저자의 결론은 20여년 후 한국에서도 여전히 강한 설명력을 지닌다. 더는 기상이변의 위험에 눈감을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폭염은 여타 자연재해와 달리 스펙터클을 연출하지는 않지만, 소리 없이 삶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과연 한국 사회가 올해의 폭염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을까. 내년에는 한국판 ‘폭염 사회’를 만날 수 있을까.

■한국역사연구회 시대사 총서 (전 10권 |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한국사 전체 시대별 조망…학자 협업 결실 ‘최초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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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전체를 시대별로 조망하는 대장정이 올해 <한국현대사> 출간과 함께 결실을 맺었다. 2015년 <조선시대사>를 펴낸 지 3년 만이다. 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등 5개 시기마다 2권씩 할애했다. 모든 분야를 다루려는 욕심을 버리고, 시대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틀을 제시해 역사 서술의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학자 개인이 아닌, 학회 차원의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펴낸 최초의 한국 통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총서의 기획부터 집필, 완성까지 ‘집단지성의 힘’이 여지없이 발휘됐다. 2002년부터 편찬위원회를 꾸렸고, 시대별로 팀을 만들어 가장 적합한 필자를 수배했다. 60명에 이르는 필자들이 초고를 작성하면, 수차례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원고를 확정했다. 학회 설립 30주년에 걸맞은 묵직한 기획은 긴 시간 동안 연구자들을 믿어준 역사전문 출판사의 뚝심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뉴로트라이브(스티븐 실버만 | 알마) - “인류 진보에 독특한 기여” 자폐에 대한 편견 허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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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실리콘밸리를 주름잡는 엔지니어들의 자녀 중에는 자폐증을 앓는 경우가 많을까.’ 저널리스트 스티븐 실버만은 취재 도중 맞닥뜨린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끈질긴 탐구를 시작했다. 자폐증의 역사를 되짚는 그의 여정은 자폐를 처음 발견하고 명명한 의학자들부터, 자폐인 당사자와 부모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저자는 “보기 드문 공감능력과 감수성”(올리버 색스)을 잃지 않으면서, 자폐에 관한 오랜 무지와 편견의 벽을 허물어버린다. 특히 자폐증이나 난독증, 주의력결핍과다활동장애(ADHD) 등을 “독특한 장점을 지니고 인류의 기술과 문화 진보에 이바지해온 자연발생적 인지적 변이”로 설명하는 대목은 귀 기울일 만하다.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는 자폐증 역시 존중받아 마땅한 ‘다름’이고, 우리에게는 그 다름을 더 이해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세계 인구의 약 1%인 자폐 인구를 이해하는 길잡이로 손색없는 책이다.

■골든아워(이국종 | 흐름출판) - 허망한 죽음을 막기 위한 의사 이국종의 사투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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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그런 영웅담으로 넘어가기엔 그가 발 딛고 선 땅이 너무도 위태롭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거의 매일같이 낮밤으로 마주하는 중증외상 환자들은 1시간 내에 생사가 판가름 난다. 환자들은 신체가 산산이 부서진 채로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이지만, 제때 개입하면 허망한 죽음을 막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불행히도 한국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은 사실상 부재했다. 2002년부터 올해까지 저자가 써내려간 기록에는 현장에서 분투하는 의사·간호사·소방관 등의 고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매달린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 조직원으로서 느끼는 밥벌이의 고달픔까지 오롯이 담겼다. 본인 스스로 밝히듯이, 김훈의 <칼의 노래>를 모사한 듯한 비감에 젖은 문장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책이 어느 지독한 직업인이 남긴 ‘수술실의 난중일기’이자, 척박한 의료 현장을 증언하는 귀중한 보고서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반도 화교사(이정희 | 동아시아) - 이주 외국인 문제의 원조 화교의 삶 세밀하게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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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화교 경제사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역작이다. 기자 시절부터 20년 넘게 화교 문제에 천착해 온 이정희 인천대 교수가 개항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화교들의 생활상을 촘촘하게 복원한다. 방대한 문헌조사와 구술조사에 힘입어, 중화요리점을 비롯한 삼도업(三刀業), 제조업, 농업, 건축업에 이르기까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했던 화교들의 삶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근대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진 화교들의 경제활동도 함께 다룸으로써 노동과 자본의 이동, 국민국가와 제국주의의 작동 등 묵직한 질문들을 던진다. 나란히 출간된 200여쪽 분량의 <화교가 없는 나라>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화교 역사 137년을 풀어 쓴 교양서다. 우리 안의 배타주의를 돌아보게 하는 1930년대 두 차례의 화교배척사건, 항일운동과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화교들, 북한 화교의 실상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통해 ‘외국인 문제의 원조’인 화교들의 존재를 조명한다.

■법률가들(김두식 | 창비) - 최고 엘리트 집단의 뿌리, 해방공간 법조계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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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를 도려내야 할 기관이 되레 적폐의 온상이었음이 드러난 한 해였다. 검찰 내 성폭력, 재판 거래, 법관 사찰 등으로 사법부의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지금, 법조계 병폐의 기원을 묻는 책은 더없이 시의적절했다. <불멸의 신성가족>(2009)에서 동시대 법조계의 민낯을 겨눴던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이번에는 해방공간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4년에 걸친 치밀한 자료 고증을 통해 복원해낸 한국 ‘최고’ 엘리트 집단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빈약했다. 일제 강점기 재판 서기나 통역 경력만으로 법관 자리를 얻거나, 시험 도중 해방이 되어 감독관이 사라지자 단체를 결성해 합격증을 받아내기도 했다.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보았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는 결론은 법조인 개개인의 윤리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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