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뒤늦게 웬 일베냐고? ‘일베 밖 일베’가 너무 많잖아!

김지혜 기자

보통 일베들의 시대

김학준 지음 | 오월의 봄 | 384쪽 | 1만9000원

[책과 삶]뒤늦게 웬 일베냐고? ‘일베 밖 일베’가 너무 많잖아!

“이제 와서 연구 대상으로서의 일베의 가치는 ‘ㅎㅌㅊ’(‘하타치’의 자음만 쓰는 온라인상 표현으로 ‘평균보다 못함’을 의미)다.”

‘뒤늦게 웬 일베?’ 고개를 갸웃거릴 가상의 독자에게 맞장구치듯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저자인 사회학 연구자 김학준은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의 줄임말인 일베는 2012년 즈음부터 온갖 혐오 표현을 폭발적으로 뿜어내며 사회적 충격을 안겼으나, 2017년 탄핵 정국 이후 서서히 대중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는 ‘몰락’을 맞이했음이 자명해보인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저자의 서울대 석사 졸업 논문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 동학’이 쓰인 것이 2014년이다. 8년 사이, 일베가 역할을 하던 ‘온라인 우파’의 구심점은 이미 유튜브로 옮겨갔다. 그런데 이 명백한 몰락 앞에서, 저자는 과거 논문을 개고하면서까지 다시 일베의 탄생과 그 혐오의 논리에 주목했다. 무슨 까닭일까. 일베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길래?

일베적 혐오는 더 이상 일베만의 것도, 사이버 공간만의 하위문화도 아니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2020년 의료계 파업 논쟁에서 ‘전교 1등’ 출신만이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아집을 드러낸 ‘젊은 의사들’에게서도 일베의 그림자를 본다. 연합뉴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2020년 의료계 파업 논쟁에서 ‘전교 1등’ 출신만이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아집을 드러낸 ‘젊은 의사들’에게서도 일베의 그림자를 본다. 연합뉴스

저자는 “일베의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되었다”고 단언한다. 일베적 혐오는 더 이상 일베만의 것도, 사이버 공간만의 하위문화도 아니다. ‘정의’와 ‘공정’ 운운하며 혐오와 차별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페미니즘의 백래시에서, 비정규직 정규화 과정에서 ‘역차별’과 ‘공정’을 부르짖는 ‘20대 남자들’에게서, 또는 2020년 의료계 파업 논쟁에서 ‘전교 1등’ ‘좋은 수능 성적’ 출신만이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민망한 아집을 드러낸 ‘젊은 의사들’에게서 저자는 일베의 그림자를 본다. 무엇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며 일베식 혐오의 내용과 표현 방식을 주류의 정치 담론으로 만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은 상징적이다.

일베는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이 아니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일베의 출현에서 한국의 근대화와 현대 자본주의 체제라는 맥락을 살피는 책이다. 변함없이 굳건한 이 거대한 맥락 속에서 탄생한 일베적 혐오는 이제 일베라는 커뮤니티의 흥망과는 별개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저자는 이미 앞선 논문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체제가 작동했을 때 산출되는 주체”가 바로 일베라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다. 그는 ‘이대남’이란 호명과 이준석의 등장 등을 통해 과거 자신이 통찰한 일베식 혐오의 구조가 사회의 주류로 떠오르는 현상을 목도하며 논문의 확장을 결심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일베라는 개별 커뮤니티의 혐오 구조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일베 이후 우리 사회를 채운 혐오의 동력과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

일베 게시물의 양을 2011년 10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일별로 세분화한 그래프로 일일 게시물 수가 600건 이상인 사례들은 따로 설명을 붙였다.  오월의봄 제공

일베 게시물의 양을 2011년 10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일별로 세분화한 그래프로 일일 게시물 수가 600건 이상인 사례들은 따로 설명을 붙였다. 오월의봄 제공

석사 졸업 이후 데이터 분석계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저자는 2011년 5월28일부터 2020년 12월31일까지 총 81만1327건의 일베 게시물 전수를 분석해 일베의 혐오 구조를 다시금 헤집었다. 논문 작성 당시 만난 일베 이용자 10명과의 심층 인터뷰도 다시 들여다봤다.

8년 전과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확인된 것은 ‘능력주의’와 ‘평범 내러티브’라는 일베식 혐오구조가 일베 없이도, 일베 바깥에서도 충분히 반복·강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과거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일베의 반대급부로 호명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루리웹의 게시물을 분석해 일베의 울타리 밖에서도 강력한 온라인 여성혐오의 물결을 확인한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떼쓰지 마” 고통 모른 체 하는 평범 내러티브

<보통 일베들의 시대>의 저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일베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돈된 형태의 인물”이라고 분석한다. 연합뉴스

<보통 일베들의 시대>의 저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일베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돈된 형태의 인물”이라고 분석한다. 연합뉴스

“우리 사회 보면 어차피 아픔이란 건 상대적(인 것이고 따라서) 비교하는 게 옳지 않다. 이분들 못지않게 굉장한 아픔을 가진 분들이 있다.”

이준석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투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책은 그를 “일베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돈된 형태의 인물”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까닭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 선동 때문은 아니라고 못 박는다. 그가 ‘일베의 현신’이라면 그것은 일베의 내용(평범 내러티브)과 형식(냉소), 비전(능력주의)을 모두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베의 내용을 채우는 ‘평범 내러티브’의 의미가 중요하다. 이는 시스템에 지나치게 순응한 나머지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자신 혹은 타인의 고통을 ‘너만 그런 것이 아닌’ 평범한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저자는 평범 내러티브를 “고통은 그게 무엇이든 그저 내면으로 침잠하며 스스로 삭이면 그만인 개인적 경험”으로 여기고 “고통을 들어달라고 ‘징징’대는 것은 스스로가 약자임을 자임하는 꼴에 불과하며, 이는 곧 자기경영에 실패한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로 보는 삶의 태도 혹은 멘털리티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준석에게서 장애인을 누구나 겪는 삶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패배자’로 규정하는 시선을 들여다본 것이다.

일베 이용자를 포함한 다수의 사회구성원은 ‘평범한 시민’의 꿈을 꾼다. 하지만 날로 심해지는 사회경제적 위기 앞에서 풍족하고 단란한 4인 정상가족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근대적 의미의 ‘평범한 시민’의 삶은 대다수의 청년들에게 도달 불가능한 ‘꿈의 영역’에 남았다. 대신 눈앞에 놓인 것은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고립이라는 차가운 현실뿐이다. 그리고 그 좌절과 고통의 책임은 엉뚱하게도 구조가 아닌 소수자를 향했다.

직접 만나본 일베는…“적극적인 순응과 노력의 이름으로 자기계발에 몰두”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모텔 투숙객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죄인이자 일베의 ‘네임드’ 이용자였던 장대호를 일베의 이념형으로 보고 분석을 시도한다. 연합뉴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모텔 투숙객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죄인이자 일베의 ‘네임드’ 이용자였던 장대호를 일베의 이념형으로 보고 분석을 시도한다. 연합뉴스

저자가 만나본 일베 이용자들은 미처 터뜨리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인 순응과 노력의 이름으로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것으로 내면화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누구나 겪는’ 평범함의 범주로 끌어내리고 능력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종사한다.

물론 자신의 고통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고통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흙수저라는 태생적 환경은 물론이고 왕따, 심지어 세월호 사건과 같은 사회적 참사에 이르는 고통까지도 모두 개인이 감당해내야 하는 것으로 만든다.

일례로 2019년 모텔 투숙객을 잔인하게 살인한 범죄자이자 일베의 ‘네임드(유명한)’ 이용자였던 장대호가 공개한 ‘옥중 회고록’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나’에 대한 도취와 함께 “나의 불운을 떠벌리며 동정과 이해를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발견된다.

분노를 억누르며 만들어진 평범 내러티브는 내부의 타자들을 향한 혐오의 동력이 된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일베 게시물의 혐오 표현의 비중과 빈도, 혐오 대상, 반응 양상 등을 확인한 저자는 일베가 ‘적’으로 여기는 대상이 누구인지 식별해낸다. 쉽게 예상되듯 ‘적’은 호남, 여성 그리고 진보좌파로 드러나는데 일베는 이들을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존재로서의 내부의 타자”라고 규정하고 혐오를 자행한다.

일베가 호남, 여성, 진보좌파를 혐오하는 이유

호남, 여성, 진보좌파가 사회적 ‘분열’의 주체가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일베의 시선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분노와 고통을 억누르고 애써 순응한 자본주의·능력주의 룰을 어지럽힌 장본인이다. 순응을 거부한 채 폭동을 벌이거나 공짜로 ‘혜택’을 보고, 떼를 쓰며 ‘징징’대는 “무임승차자”에 불과하다.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 없이 집회와 시위만 벌이는 진보좌파나,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순응’ 대신 ‘폭동’을 일으킨 호남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은 당연하다. 여성 역시 ‘여성가족부’라는 이름으로 불공정한 우대 혜택만 주장하면서, 사회가 약속한 친밀성의 약속을 거부하는 이들로 보일 뿐이다.

이처럼 평범 내러티브는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 소수자에게 향하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개인’의 것으로 만들고 혐오를 정당화한다. “승자로서 패자(피해자, 소수자, 약자)를 멸시하는 감각”과 “약육강식과 우승열패를 내면화해 끊임없이 자기계발하는 멘털리티”가 일베 이용자들의 혐오 근저를 이룬 것이다. 이들은 결코 연대하지 못하는 “차가운 열광” 속에서 혐오의 의례를 지속해간다.

문제는 이것이 비단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루리웹의 여성 관련 게시물의 24.5%에서 혐오표현을 포함하고 있다는 책의 분석 결과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순응을 거부하는 약자들의 정치적 행동을 냉소하고, 공정의 이름으로 차별의 자유를 외치는 모든 이들에게서 이미 일베식 혐오가 관측된다.

대안은 없을까. 저자는 “새로운 도덕의 단초는 능력주의가 아닌 평범함을 다변화하는 데 있을 것”이라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평범해지는, 즉 소박하지만 분명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안정을 포함한 사회적 안전망, 지역 간 불평등과 같은 폭넓은 대책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이 “현재 강고해 보이는 혐오 선동을 파훼하는 여러 불쏘시개 중 하나로서 가치”를 갖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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