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에겐 거친 자연, 생쥐에겐 포근한 집…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돌 그 이상의 돌

유수빈 기자
[그림책]달팽이에겐 거친 자연, 생쥐에겐 포근한 집…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돌 그 이상의 돌

돌 하나가 가만히
브렌던 웬젤 글·그림, 황유진 옮김
북뱅크 | 50쪽 | 1만6000원

여기 돌 하나가 있다. 물과 풀과 흙과 함께, 원래 모습 그대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커다란 돌 위에는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머물러 있다. 느릿느릿 돌 위로 올라온 달팽이는 제 속도로 돌을 건너 그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달팽이가 구불구불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는 동안에도 여전히 돌은 그 자리에 있다.

칼데콧 명예상을 받은 작가 브렌던 웬젤의 신작 <돌 하나가 가만히>는 돌이 돌 그 이상이 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작가는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계의 상대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곁에 있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서 돌은 어두컴컴했다가 또 환히 빛난다. 어떤 동물에게 돌은 그저 작고 맨들맨들한 조약돌일 테지만 민달팽이에게는 거친 자연이고, 생쥐들에게는 포근한 집이다. 때때로 돌은 수달의 식탁, 힘 센 맹수의 왕좌가 되기도 한다.

[그림책]달팽이에겐 거친 자연, 생쥐에겐 포근한 집…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돌 그 이상의 돌

누군가의 위험이자 안식처이며 이야기이거나 무대인 돌. 이렇게 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돌의 존재를 결정하는 건 주변에 머무르는 생명들의 몫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돌 자신이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무엇인지 알아챌 때야말로 돌의 존재가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파릇한 이끼가 제 몸을 덮을 때, 빨간 단풍잎에 물들어 갈 때, 몸속 가득 냉기를 머금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을 때 돌은 푸르게, 붉게, 또 파랗게 빛나는 건 아닐까. 책에서는 돌 하나가 가만히 있다고 말하지만, 가만 보면 돌은 가만히만 있는 게 아니다. 제자리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감각의 촉수를 세우고 있다. 스스로 무엇이 될지를 선택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돌은 변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로 제자리를 지킨다.

“돌은 한순간이었고 또한 긴 세월이었어요. 돌은 기억이자 영원이었어요.” 머무르되 변화하는 돌의 시간은 심오하다. 책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소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박제된 듯했던 돌이 가물가물해진다. 점점 차오르는 물이 더 높아지면 결국 사라지게 될 돌의 모습에선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연상된다.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가서, 돌을 스쳐 지나간 존재를 하나하나 짚어본다. 돌의 마음처럼 내 주변의 일들을, 마주하는 사람들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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