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킨 “멸종의 길 달려온 인간···이제 인간이 자연에 적응할 때”

이영경 기자
<회복력 시대>를 펴낸 제러미 리프킨. 민음사 제공

<회복력 시대>를 펴낸 제러미 리프킨. 민음사 제공

<회복력 시대> 출간 기념, 언론 영상인터뷰
효율성 추구한 산업화 시대는 끝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는 ‘회복력 시대’ 강조
한국은 외침과 식민지배 속 정체성 지켜내며
강인한 문화적 유전자 지녀
청년 세대는 시위 뿐 아니라 정치, 교육에 참여해야
“이태원 참사 애도···엄격한 규제 필요”


“20만년 동안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적응하던 인간이 지난 1만년 동안 자연을 인류에 적응시키며 멸종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다시 인간이 자연에, 좀 더 정교한 방식으로 적응할 차례입니다.”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등을 쓴 미국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신간 <회복력 시대>의 출간을 기념해 지난 1일 한국 언론과 공동으로 영상 인터뷰를 가졌다.

리프킨은 <회복력 시대>에서 산업화 이후 효율성과 수익성을 추구해온 자본주의 체제를 ‘진보의 시대’로 부르며, 진보의 시대가 불러온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회복력 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500개의 글로벌 기업이 존재하며, 500개 기업이 글로벌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35억 노동인구 중 이들이 고용한 노동자 수는 6400만명입니다. 이는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뜻이죠.”

리프킨은 산업화 시기 기업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다국적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세계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화에서 세방화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고, 미래에 살아남는 기업들은 세방화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프킨은 멀지 않은 미래인 2040년이면 ‘회복력 시대’의 인프라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수직분산형, 중앙집권형이 아니라 완전히 분산된 인프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민첩한 최첨단 중소기업들의 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탈리아 건축가 구치넬라는 최근 친환경 재료인 점토로 3D 프린팅 주택을 건설했다. 24시간이면 회복력 있고 친환경적인 집이 지어지는 것이다. 비용도 200달러를 넘지 않는다”며 “이 3D 프린팅 프로그램을 필리핀으로 이송하면 그곳에서 필요한 건물을 건설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세방화이며 운송·비용·물류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제러미 리프킨이 지난 1일 한국 언론과 공동으로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제러미 리프킨이 지난 1일 한국 언론과 공동으로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적응을 위한 인프라’는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 리프킨은 “현재의 건축, 방식, 건물, 환경은 미래 세상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변화해야 할 것”이라며 “이주하는 인구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이에 적합한 일시적 도시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중·유럽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인프라는 커뮤니케이션 인터넷, 전력 인터넷, 모빌리티와 물류 인터넷, 사물 인터넷의 융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이 전력 인터넷과 통합되면서 수십억 인구가 주거지, 근무지, 농장, 상업지대 등에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적인데, 이 간헐성으로 인해 전 세계 인구는 에너지를 공유하게 될 것”이라며 “10년 내로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태양과 바람, 20년 내로 바다를 공유하게 될 것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인들은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에서 회복력으로 이행하는 기간에 기존 산업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크다. 이에 대해 리프킨은 낙관적 답변을 내놨다. “태양광·풍력 일자리만 하더라도 화석연료, 원자력 발전 일자리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며 “독일에서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새로운 분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프랑스에서도 지자체 및 시민 의회와 협력하에 광부들의 손자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태양광·풍력·건물 개조 분야에 취직하도록 도왔다. 단 9개월간 교육을 통해 평생 직업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 지구적 위기에 생존하기 위해 인간의 ‘적응력’과 ‘공감’이 발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가장 적응력이 강한 생명체다. 인간의 두뇌, 강한 신피질, 언어능력이 적응력의 중심에 있다. 또 역지사지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 신경회로에 내재된 공감능력이 있다. 수렵 채집 시대에 혈연에만 국한됐던 공감이 민족국가까지 확장되었다. 그 다음 단계는 생명애”라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회복력 시대로의 전환은 다음과 같다. 성장에서 번영으로, 금융자본에서 생태자본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GDP에서 QLI(삶의질 지수)로, 과소비에서 생태관리로, 부정적 외부성에서 환상성으로, 소유에서 접근으로, 시장에서 네트워크로, 선형적 프로세스에서 인공두뇌학적 프로세스로, 대기업에서 민첩한 최첨단 중소기업으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지적재산권에서 지식의 오픈소스 공유로, 제로 섬 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지정학에서 생명권 정치학으로.

그는 미래로의 빠른 전환을 위해 청년 세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청년들은 시위만 할 것이 아니라 시민의회, 생태관리, 교육체계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공감을 바탕으로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과 상호작용해야 합니다.”

리프킨은 한국의 강점으로 ‘적응력’을 꼽았다. 그는 “한국은 오랜 기간 주변 강국들의 지배를 겪으며 반응성이 민감해졌다. 식민지배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한국인들은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궁극적으로 주변 요소들의 연결고리를 관찰하는 능력을 키우고, 주변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을 배우면서 한국은 강인한 문화적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다. 바로 그런 능력이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리프킨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서 “애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보다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프킨 “멸종의 길 달려온 인간···이제 인간이 자연에 적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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