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가부장·이슬람 것이 아니다···이란 여성 저항 정신의 계보

김종목 기자
네샤트의 ‘알라의 여인’ 연작 중 ‘Unveiling’(1993). 출처: 위키아트

네샤트의 ‘알라의 여인’ 연작 중 ‘Unveiling’(1993). 출처: 위키아트

이란 출신 예술가이자 영화 감독 시린 네샤트는 지난 10월 1~4일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와 로스앤젤레스 펜드리 웨스트 할리우드 대형 전광판에 영상 작품 <Woman Life Freedom(여성 생명 자유>을 발표했다. 세계 주요 도시 전광판에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송출하는 예술 문화 플랫폼 써카(CIRCA, The Cultural Institute of Radical Contemporary Art)와 협업한 작품이다.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 뒤 반정부 예술 운동에 참여한 이란 내 예술 학교 학생들에 대한 탄압이 고조될 때 벌인 프로젝트다. 써카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기본 인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란 사람들에게 연대를 표명하고, 이들의 외침을 국제적으로 더 알리려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여성 생명 자유’는 이란 전역의 저항 목소리에 동반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1일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이란과 잉글랜드의 경기 때 ‘여성 생명 자유’를 새긴 이란 국기가 관중석에서 펄럭였다. 10월 3일(현지 시간) 이란 대학생들 시위 때도 이 구호가 터져 나왔다.

시린 네샤트가 지난 10월 초 영국 런던과 뉴욕 LA에서 발표한 영상 작품 <Woman Life Freedom(여성 생명 자유)>의 대표 이미지. 출처 : 써카(CIRCA)

시린 네샤트가 지난 10월 초 영국 런던과 뉴욕 LA에서 발표한 영상 작품 <Woman Life Freedom(여성 생명 자유)>의 대표 이미지. 출처 : 써카(CIRCA)

네샤트의 이번 작품의 대표 이미지는 총알을 든 손바닥을 부각한다. 네샤트는 베일(히잡·부르카·니캅·차도로)을 쓴 이란 여성 얼굴이나 손과 팔 표면에 페르시아어를 새긴 사진 연작을 선보여 왔다. 정희원(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부교수)은 영미문학연구 ‘안과 밖’ 최근호(53호)에 실은 논문 ‘이란 여성 작가의 한 계보’에서 “네샤트는 ‘베일’의 클리셰를 통해 아랍인/아랍 여성의 수동적 이미지, 하렘으로 대변되는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서구의 문화적 시선을 맞받아친다”고 말한다.

손글씨로 페르시아어를 적어 내려가는 네샤트의 작품 제작 방식을 두고 정희원은 “이란 여성에게 글쓰기가 ‘다른 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공적 소통의 가능성으로 인해 위반이자 베일 벗기로 간주’됐다”는 이란 태생 미국 학자 파르자에 밀라니의 지적도 인용한다.

논문은 1960년대~2000년대에 걸친 세 작가의 계보를 좇는다. 네샤트는 ‘알라의 여인’ 등에서 이란 여성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1935~1967)를 비롯한 “이란 현대 시인들의 여성주의적 시구”를 신체에 새겼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는 동명의 파로흐자드 대표작에서 따왔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시를 쓰고 영화를 찍으며 살았던 파로흐자드는 이슬람계 여성에게 기대되지 않는 삶을 선택한 대가로 험난한 길”을 걸은 시인이다. “시인 자신과 겹쳐 있는 화자를 통해 이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좌절과 동시에 그것에 갇히지 않는 열망”을 표현했다.

이란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란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소설가 샤누쉬 파시푸르는 파로흐자드가 스무살에 첫 시집 <포로>(1955)를 출간했을 때 열살 무렵이었다. 1981년 가족의 필화에 연루돼 4년 7개월 동안 투옥됐다. 출옥 후 쓴 소설이 <남자 없는 여자들> 등이다.

정희원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더불어 처녀성, 강간, 매춘 동 금기시되던 주제들을 전경화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이란에선 금서로 지정된 이 소설은 1953년 8월 19일 친 팔레비 쿠데타 직후 상황을 다룬다. “쿠데타 이후 이란 사회에 대한 일종의 우화”인 소설엔 “여자들은 집에 있어야 하고, 바깥세상은 남자들의 몫” “폐경하고도 정원을 가꿀 수 있겠냐” 같은 남자들의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뮤니스가 사흘 집을 비웠다는 이유로 오빠가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구타하다 우발적으로 가슴에 칼을 찔러넣는 장면도 있다.

정희원은 “19세기 중반부터 이란 여성의 몸은 이슬람과 민족주의, 현대성과 전통이 각축을 벌이는 ‘전쟁터이자 은유이며 상징’이 됐다”는 평을 인용하며 “뮤니스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닌 오빠와 가족, 이슬람의 것임이 전제된다”고 했다. “(소설은) 이란 사회가 공화정에서 왕이 통치하는 왕정사회로 복귀하면서 보수화하던 사회적 맥락 안에 놓인다”고 했다.

소설에서 주목해야 공간 배경은 ‘정원’이다. “오빠와 남편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의 도시 테헤란으로부터 ‘망명’”해서 찾아든 곳인 정원은 “유토피아인 동시에 억압으로부터 탈주한 망명자들의 집합체이자 도피처”다. 정희원은 “정원의 혼성적 성격은 모든 공화주의자를 무차별 폭력으로 탄압했던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우회적으로 인유(引喩)한다”고 했다.

파로흐자드의 시 중 하나가 ‘나는 작은 정원을 동정한다’이다. “정원과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반감에서 ‘이란 민족-국가 전체에 대한 부정’”이란 해석도 있다.

시린 네샤트(왼쪽)와  샤누쉬 파시푸르. 출처 :  CIRCA(The Cultural Institute of Radical Contemporary Art), 위키디미어 공용

시린 네샤트(왼쪽)와 샤누쉬 파시푸르. 출처 : CIRCA(The Cultural Institute of Radical Contemporary Art), 위키디미어 공용

파시푸르는 <남자없는 여자들>로 다시 투옥됐다. 파시푸르의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가 네샤트다.

세 이란 여성 작가 계보의 축을 이루는 건 저항 정신이다. 네샤트는 “1906년 입헌 혁명부터 2009년 녹색 운동까지 이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며”라는 헌사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정희원은 “파시푸르의 <남자 없는 여자들>이 제목처럼 여자들만의 유토피아를 통해 이란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중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네샤트의 <남자 없는 여자들>은 쿠데타 시기를 살아냈던 개인을 대변하는 인물로 뮤니스를 정치화함으로써 소설을 현재화한다”고 했다.

지금의 이란 히잡 시위의 현재도 읽을 수 있다. 소설에서 뮤니스는 차도르 없이 남성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팸플릿을 배포한다. 쿠데타 반대 시위대 속을 거닐며 독백으로 한 자기 선언은 “나는 이곳에 관망하러 오지 않았고, 보기 위해 왔다. 이곳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동하기 위해서 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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