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이라 뭉뚱그릴 수 없는 입체적인 10대들

이종산 작가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요즘 애들”이라 뭉뚱그릴 수 없는 입체적인 10대들

에놀라 홈즈1 : 사라진 후작
낸시 스프링어 지음·김진희 옮김
북레시피 | 260쪽 | 1만4000원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의 여동생 이야기다. 셜록 홈즈를 읽어본 적이 없다고? 그가 탐정이라는 것 정도만 겨우 아는 정도라고? 전혀 상관없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재밌게 읽어본 적이 없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에놀라 홈즈>가 훨씬 좋다.

어두운 분위기에 진지한 고전인 셜록 홈즈 시리즈에 비해 <에놀라 홈즈>는 통통 튀는 현대물이다. 셜록 홈즈의 시대에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셜록 홈즈의 아버지가 죽은 뒤 집안의 재산을 어머니가 아니라 두 아들이 소유하게 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성인이 된 두 아들은 재산을 관리할 권리가 당연히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는 사회가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셜록을 비롯한 두 형제는 재산을 관리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삶의 방식까지 관리하려 든다.

두 아들에게 종속된 삶에 갑갑함을 느끼던 어머니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뒤, 셜록의 여동생 에놀라는 오빠들에 의해 강제로 엄격한 기숙사 학교에 보내질 위기에 처한다. 엄마를 닮아 똑똑하고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에놀라는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그리고 오빠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와 위험한 여정을 떠난다.

사실, 소설의 후반부 스토리는 뻔한 면이 없지 않다. 디즈니에서 만든 12세 관람가의 안전하고 관습적인 시나리오 같다고 할까? 하지만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살고 있는 10대 여성이 탐정이 되어 해결해 나간 사건의 끝에 자유를 찾아 집을 떠난 아이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소설의 메시지는 감탄스러울 만큼 선명해진다.

소설 <에놀라 홈즈>는 읽기 쉬운 책이다. 온갖 트릭이 복잡하게 섞인 현대의 추리물들에 비하면 스토리도 단순한 편이고, 인물 관계가 얽히고설키지도 않고, 메시지도 지나칠 만큼 뚜렷하다. 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매력과 활력이 흘러넘쳐서 이 소설의 ‘단순함’을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보이게 한다. 영리하고 활기 넘치는 주인공을 따라 너무 복잡하지 않게 설계된 미로를 달려갈 수 있도록 짜인 <에놀라 홈즈>는 우울한 탐정을 따라 안개가 가득 낀 길을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책의 후반부를 읽다가 문득 에놀라가 겨우 열네 살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솔직히 약간 놀랐다. 이토록 똑똑하고 용기 있고 의지가 강한 인물이 열네 살이라고? 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니 & 조지아>의 지니를 떠올리면 에놀라가 더욱 성숙하게 느껴진다. 사춘기를 한참 통과하고 있는 열여섯 살 지니는 노력하는 엄마 조지아에게 못된 말을 하기 일쑤이고, 연애에 서툴러서 마음과는 다른 행동을 하면서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고, 반짝 인기에 으쓱해져서 거만하게 굴기도 한다.

왓챠피디아에서 <지니 & 조지아>의 리뷰글을 보면 지니는 별로 인기가 없다. 다른 틴에이지 드라마의 주인공들에 비해 철없고 미성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에놀라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주인공이다. 영리하고, 신중하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거침없고,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스스로 자유를 쟁취할 줄 아는 열네 살 소녀. 그야말로 판타지에 가까운 소설 속 캐릭터다.

어느 쪽이 더 훌륭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10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니도, 이상적인 소설 속 캐릭터인 에놀라도 멋지다. 10대들에게는 현실과 판타지, 양쪽의 모습이 모두 필요할 것이다.

예전에는 틴에이지물을 보면 푹 빠져서 주인공들에게 깊게 이입되고는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이나 10대들의 부모가 더 나처럼 느껴졌다. 최근에는 틴에이지물을 보면 그것을 보고 있을 진짜 10대들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틴에이지물이 넘치는 요즘, 10대들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얼마나 자신과 가깝게 느끼고 있을까? 넘치는 틴에이지물들은 각각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10대 인물들을 그린다. 아마 현실의 10대들은 그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어느 세대든 뭉뚱그리는 순간 납작해진다. “요즘 애들”이란 없다. “요즘 애들”은 하나의 세대라는 것은 그들이 제각각 다른 삶을 사는 수많은 개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지우는 말이다. <에놀라 홈즈>가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10대들의 마음속에 ‘에놀라’ 같은 자아가 하나씩 숨겨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비록 몸은 교실에 있을지라도 세상으로 나아가 멋진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야말로 10대의 욕망일지 모른다.

덧붙이자면, <에놀라 홈즈>는 넷플릭스의 영상화 버전보다 원작소설이 훨씬 재밌다. 혹시 영화가 별로 재미없었더라도 원작을 한번 들춰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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