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익에 밟힌 생존 빈민의 ‘집다운 집’은

오경민 기자
[책과 삶]개발이익에 밟힌 생존 빈민의 ‘집다운 집’은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지음·조문영 엮음
글항아리 | 256쪽 | 1만6000원

서울역 뒤,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제대로 된 화장실이나 부엌이 딸려 있지 않은 1평 남짓한 수많은 방에 1000여명이 산다. 폭염이나 혹한이 찾아오면 기자들이 연례행사처럼 들이닥치는 곳이다. 주민들은 처지가 크게 바뀔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낯선 말벗들에게 이야기를 빌려주곤 했다.

그런 쪽방촌 주민들도 곧 ‘집다운 집’에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때가 있다. 2021년 2월, 국토교통부·서울시·용산구가 이곳 주민 모두를 수용하는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을 때다. 계획은 본격적이었다. 쪽방 주민의 주거권이나 공동체를 해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당시 쪽방 주민들은 “꿈이냐 생시냐” 했다. 반빈곤단체들은 “한국 주거개발사에 한 획을 그을 사업”이라며 “희망을 봤다”고 환영했다. 서울역 바로 뒤 ‘노른자 땅’의 개발이익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낀 임대인들은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 같은 반대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었다. 그러나 2년이 넘도록 사업은 공공주택지구 지정도 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지난해 학부 수업 ‘빈곤의 인류학’을 통해 계획 발표 전후 상황을 들여다봤다. 학생들의 보고서를 엮어 책으로 냈다.

책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도시빈민 주거권 운동사의 일환으로 바라보며 시작한다. 다음으로는 사는 공간으로서의 집과 재산으로서의 집이 부딪히는 부동산 개발의 지형을 들여다본다. 마지막 장에서는 쪽방 주민들과 임대인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학생들은 “우리 시대 빈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함께 현장 연구를 했고, 연대의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주민 중 최소 60명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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