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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과 삶]‘사랑의 블랙홀’은 잊어라···시간이 ‘부피’로 쌓이는 기묘한 타임루프
    ‘사랑의 블랙홀’은 잊어라···시간이 ‘부피’로 쌓이는 기묘한 타임루프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2솔베이 발레 지음 | 손화수 옮김 은행나무 | 각 244쪽·284쪽 | 각 1만7000원타라는 프랑스의 조용한 마을에서 남편 토마스와 고서적상을 운영한다. 11월17일 2박3일 일정으로 출장을 떠난다. 보르도 경매장을 방문해 책을 구매하고 파리 호텔에서 묵는다. 18일엔 파리 고서점들을 들르고 지인들도 만난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11월19일 아침, 그는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 손에 든 조간신문의 날짜는 여전히 11월18일이고 어제 보았던 투숙객은 전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빵을 떨어뜨린다. 전날 만났던 지인들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늘이 11월18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반복되는 11월18일에 갇혀버린다.덴마크 작가 솔베이 발레의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는 주인공이 매일 같은 날을 반복하는 ‘타임 루프’ 소재의 이야기다. 작가는 1987년에 처음 이런 설정을 고안했지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해 묵혀두었다가 20...

    2026.07.10 14:00

  • [책과 삶]왜 비행기는 50년째 시속 900㎞로 날까···기계비평가, 이번엔 ‘속도’를 비평하다
    왜 비행기는 50년째 시속 900㎞로 날까···기계비평가, 이번엔 ‘속도’를 비평하다

    속도비평이영준 지음 | 문학동네 | 400쪽 | 2만원문학비평, 음악비평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엔 영화비평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요즘은 음식비평, 건축비평도 자주 볼 수 있다. 비평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니, 비평의 영역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속도’도 비평의 대상일 수 있을까. “기술·기계·도시·이미지·속도 등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시각적, 물질적 조건들에 대해 탐구”해온 기계비평가 이영준은 그렇다고 본다. 그는 전작 <기계비평>과 대구를 이뤄 <속도비평>이라 이름 붙인 신작에서 세상의 많은 현상을 ‘속도’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기차, 자동차, 비행기뿐이 아니다. 혈류, 글씨, 강, 바다, 로켓, 컴퓨터도 속도의 관점에서 비평한다.얼핏 쿠팡의 로켓 배송, 지나치게 빠른 한국식 일처리, 2배속...

    2026.07.10 06:00

  • [책과 삶]쓰레기장이 된 플랫폼…인질 되기를 거부하자
    쓰레기장이 된 플랫폼…인질 되기를 거부하자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은 ‘똥’을 일컫는 비속어(shit)에 ‘~이 되게 하다’라는 접두사(en-), ‘~화하다’라는 접미사(-ify)를 붙여 저자가 만든 말이다. 재기발랄했던 플랫폼이 부패해가는 현상을 한 단어로 축약한 단어다.과정은 이렇다. ‘플랫폼이 사용자에게 잘한다→사업자 고객(광고주 등)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용자를 괴롭힌다→똥 더미가 된다’. 페이스북이 같은 길을 걸었다. 알고 싶은 지인의 근황보다는 보기 싫은 광고가 가득 차 눈길 주기 싫은 매체가 됐다. 망했지만 사라지지 않은 똥 더미가 된 이유는 ‘집단행동 문제’ 때문이다. 너무 많은 친구가 페이스북을 쓰고 있어서, 이들과 친교하려면 페이스북을 떠날 수 없는 ‘인질’이 돼버린 것이다. 구글은 “검색 결과의 질을 떨어뜨리면 찾던 정보를 얻을 때까지 쿼리(검색어 입력)를 여러 번 실행하게 될 테고, 검색 페이지마다 광고를 더 보여줘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제안을 실행했...

    2026.07.09 21:11

  • [책과 삶]곤충 탈피 그리면 ‘신성모독’이었다?
    곤충 탈피 그리면 ‘신성모독’이었다?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 독일에서 사용하던 마르크화의 고액권인 500마르크 지폐 주인공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는 여성이었다.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를 관찰해 그림으로 옮겼던 그는 최초의 생태학자로 불린다. 곤충이 탈피하는 과정을 세밀히 관찰해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의 과학적 성취는 신학이 과학적 판단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던 17세기 당시에 비난의 대상이 됐다. 생물이 탈피하며 변한다는 주장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타국에서 빈곤에 시달리며 외로운 죽음을 맞은 여성 과학자는 270년이 훌쩍 지난 1990년에야 지폐를 통해 고국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었다. 그가 그렸던 말벌과 나비 애벌레, 나방, 바퀴벌레 등 많은 작품은 2000년대 이후 그녀를 비범한 과학자로 평가하는 증거가 되고 있다.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대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류한다.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상을 보고,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도록 남기는 일이다. 사진도, 문자도 없던...

    2026.07.09 21:04

  • [책과 삶]세계화는 어떻게 파멸의 고리가 됐나
    세계화는 어떻게 파멸의 고리가 됐나

    세계화는 국경을 초월한 무역과 금융으로 전 세계에 번영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혜택이 불균등하게 돌아가면서 개발도상국에선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선진국에선 제조업이 무너지며 일자리가 사라졌다. 경제 양극화는 정치적 분노를 불렀고, 포퓰리즘과 보호무역주의, 제도 훼손으로 이어졌다. 번영과 안정을 보장할 것으로 믿어졌던 세계화, 자유무역, 그리고 기술 발전이 서로를 죄며 혼란을 부추기는 ‘파멸의 고리(Doom Loop)’로 변질된 것이다.<둠루프>는 이 악순환의 구조를 짚는다. 과거 안정의 장치들이 불안정의 원인으로 뒤집힌 현실에 주목한다. 달러 패권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미국의 재정 불안과 정치적 혼란, 금융 제재 남용은 각국에 달러 의존을 줄이려는 유인을 제공한다. 그러나 유로화·위안화 등은 대안이 되지 못해 달러를 불신하면서도 달러에 기댈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진다.인공지능 등의 혁신은 생산성 향상과 경제적 기회를 약속하지만, 동시에 ...

    2026.07.09 21:04

  • [책과 삶]상 차리는 사람 말고 엎는 사람이 되었다
    상 차리는 사람 말고 엎는 사람이 되었다

    “내 딸은 상 차리는 사람 말고 엎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아이유)은 말한다. 1950년대생인 애순은 고된 시집살이를 묵묵히 버텼다. 시할머니가 딸 금명을 멋대로 해녀로 만들려고 한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딸을 지키기 위해 그는 손수 제사상을 뒤엎는다.1970년대생인 저자도 딸들을 지키기 위해 상을 엎었다. 종갓집 종손과 결혼한 그는 ‘17대 종손부’였다. 질리도록 “아들을 낳아라!”는 말을 들었다. 태어난 두 아이는 모두 딸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았다. 종가 일원 개개인은 또 나름대로 다정하고 헌신적이었기에, 냉정히 돌아서기도 어려웠다.‘이렇게는 안 된다’는 자각은 뒤늦게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첫째 딸이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면서다. 어려서부터 “왜 남자들은 거실에서 노는...

    2026.07.09 21:03

  • [책과 삶]로프 타고 100m 나무 꼭대기에 오르다···목숨 건 생태학자의 거목 탐험기
    로프 타고 100m 나무 꼭대기에 오르다···목숨 건 생태학자의 거목 탐험기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란융샹 지음 | 강영희 옮김 사계절 | 352쪽 | 2만6000원“나는 저물녘의 미미한 빛줄기를 타고 천천히 하강하여 점점이 반짝이는 반딧불이의 빛 무리 속으로 잠겨들었다. 사방으로 쭉쭉 뻗은 대만편백나무들 사이로 짙푸른 하늘이 보이고, 그 한복판에는 낫처럼 휜 초승달이 처연히 빛나고 있었다. 몰려오는 피로와 경탄의 마음,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당혹감이 뒤섞여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나를 감쌌다.”저자는 수관층을 연구하는 생태학자다. 수관층이란 나무의 가장 윗부분인 수관이 모여 숲의 지붕을 이룬 곳을 말한다. 수관층 연구자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은데, 수십 미터 혹은 100m 이상의 거대한 나무에 올라 연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과학적 지식과 더불어 전문적인 등반 기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20년간 대만과 미국을 오가며 로프를 타고 암벽을 오르듯 거대한 나무에 올랐다. 책에는 그가 직접 오르고 마주한 일곱 나무에 대한 ...

    2026.07.03 14:00

  • [책과 삶]한글 닮은 ‘일본 고대 문자’의 정체는?···문자로 다시 읽는 세계사
    한글 닮은 ‘일본 고대 문자’의 정체는?···문자로 다시 읽는 세계사

    문자 전파담로버트 파우저 지음 | 혜화1117 | 512쪽 | 3만5000원한국인은 세종대왕과 한글을 두고 문자를 만든 사람과 연도가 정확히 알려진 드문 사례라고 여기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다. 405년쯤 아르메니아의 성직자이자 학자인 메스로프 마슈토츠는 성경을 자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 여러 언어에 익숙했던 마슈토츠는 그리스 문자에 영향을 받아 아르메니아만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새로운 글자를 추가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수없는 외세의 침략과 정복 속에서도 문자를 지켜냈다. 마슈토츠는 ‘아르메니아의 세종’인 셈이다.학계에서는 탕구트, 한국에서는 서하로 알려진 중국 서북 지역 변방국에도 독자적인 문자가 있었다. 서하 문자는 ‘역사상 가장 어렵고도 흥미로운 문자’로 꼽힌다. 서하 초대 황제인 경종 이원호(재위 1038~1048)는 송나라와 대등한 독립 국가임을 강조하기 위해 즉위 이전부터 독자적 문자 체제의 개발을 계획했다. ...

    2026.07.03 06:00

  • [책과 삶]여성에 금지됐던 기쁨 책 읽는 자유로의 여정
    여성에 금지됐던 기쁨 책 읽는 자유로의 여정

    최근 텍스트힙의 중심에서 여성 독자들이 활약하는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책 읽는 여성’은 오랜 시간 부정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이 글을 배우면 가사 노동을 소홀히 하거나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읽는 여성의 역사>는 오랜 금기와 탄압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읽고 쓰며 세계를 확장해온 여성 독자들의 발자취를 추적한다.30여년간 일간지 문화부에서 책 담당 기자로 일한 저자는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여성들의 끈질긴 ‘읽기’와 그 너머에 있는 여성 독자의 힘에 주목한다.책은 바빌로니아 신전에서 문서를 읽고 기록한 여성 서기관부터 배움을 위해 은둔을 택한 중세 수녀들, 지적 능력을 질시당해 마녀로 몰린 여성들과 죽어서야 이름을 남긴 조선의 여성 학자들까지 시대와 공간을 넘나들며 여성 독서의 역사를 복원한다. 홀로 읽는 사적 독서 시대를 연 중세의 ‘시간 기도서’, 비녀를 맡기면서까지 소설을 빌려 읽던 조선 후기의 세책점, 일제강점기 여...

    2026.07.02 20:56

  • [책과 삶]내가 악마로, 악마가 나로 살아본다면
    내가 악마로, 악마가 나로 살아본다면

    제목만 보면 치밀하고 영악하게 한 인간의 인생을 망쳐놓으려는 악마의 모습이 상상된다. 막상 마주하는 ‘악마 Z’는 사람을 100명씩 죽이거나 싸움 붙이는 일 같은 “인정을 받는 일, 위대한 악마가 되는 일”에는 “지레 질려 버린 타입”이다. “한 커뮤니티를 잘 쑤셔서 악플러를 대거 양성하고… 대규모 고소로 사방에서 합의금을 지출”시킨 게 최고 업적이다. 그저 보일러가 있는 집에 살고 싶어서, 동시에 실적을 올리기 위해, 악마 Z는 집에 사는 가영과 계약을 맺고 가영의 몸으로 산다. 인디밴드에서 건반을 치던 가영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소설의 배경이라 일거리를 잃은 예술가의 생활고 탓인 듯싶지만, 사실 같은 밴드 멤버의 스캔들에 휘말려 당한 사이버불링이 그를 피폐하게 했다.악마 Z가 가영의 모습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등 바삐 살면서, 가영의 모습은 오히려 기력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쥐만 한 크기의 악마 Z 몸으로 살...

    2026.07.0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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