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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스탈린이 그립다” “붉은색만 봐도 욕 나온다”
붉은 인간의 최후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김하은 옮김|이야기장수 |688쪽 |2만2000원“아침에 전철을 타면 매일매일 똑같은 그림들이 펼쳐졌어요. 기차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앉아서 뭔가를 읽고 있었어요. 다 읽은 신문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어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도요. 저와 남편은 20개의 신문을 구독했어요. 사실상 모든 월급을 신문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하루종일 유리병을 삶고, 병조림을 만들었어요. 신문도 안 읽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추리 소설을 읽었어요. 책 한권을 끝내면 연달아 다른 책을 펼쳤어요. 텔레비전은 공포감을 세뇌시켰어요. 신문도 마찬가지였고요.”“전 오랫동안 스탈린의 추종자였어요…절 포함한 모두가 그랬어요. 그 삶을 부정한다면 전 빈손으로 남게 된다고요.”“전 붉은색만 봐도 욕지기가 납니다. 붉은 카네이션만 봐도요. 전 스탈린과 히틀러가 동급이라고... -
운명적 사랑의 상대부터 정치적 성향까지 유전자가 결정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년)가 출간된 후로 약 50년이 흘렀다.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찰스 다윈은 앞서 <종의 기원>을 통해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에서 끌어내렸고,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이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유전자의 번식을 위해 진화를 거듭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렸다. 타인을 위해 발휘하는 숭고한 이타심은 파고들어보면 유전자가 대를 이어 번식하기 위한 ‘이기적 본능’에서 발현된 것이다.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는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의 최정균 교수는 “이러한 혁신적인 관점이 등장하고 지금까지 5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것이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과 파급력은 그 사상적인 심오함에 크게 못 미치는 것 같다”며 아쉬워한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와 같이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의 여러 활동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 -
1936년 팔레스타인의 ‘아랍 대봉기’…죽고 죽이는 ‘중동분쟁’의 시작
팔레스타인 1936오렌 케슬러 지음 | 정영은 옮김위즈덤하우스 | 528쪽 | 2만8000원1936년 4월15일 영국령 팔레스타인 텔아비브에서 유대인 이스라엘 하잔이 아랍인들의 총격에 목숨을 잃는다. 비밀결사 ‘검은 손’을 설립한 이맘(지도자) 이즈 알 딘 알 카삼의 복수를 위한 기부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1936년부터 3년간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아랍 대봉기’의 첫 번째 사망 사건이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일어난 아랍 대봉기는 수천명의 죽음으로 이어졌다.저널리스트이자 정치분석 전문가인 오렌 케슬러는 <팔레스타인 1936>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 분쟁’이 1936년 ‘아랍 대봉기’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중동 분쟁의 원점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에 이어진 ‘나크바(대재앙)’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케슬러는 5년간의 취재로 아랍 대봉기 3년에서 중동 분쟁의 맹아를 발굴하려 시도한다.팔레스타인 아랍인... -
작업복이 말해주는 노동의 현실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경향신문 작업복 기획팀 지음오월의봄 | 272쪽 | 1만9800원옷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입은 옷을 보면 그 사람의 연령, 취향, 경제력 등을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작업복은 더 많은 정보값을 지닌다. 붉은 소방복을 입은 소방관,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 안전장비를 착용한 건설노동자 등 특정 작업복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직업이 있다. 그런데 깊숙이 들여다볼수록 작업복이 일에 대해서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는 일에도,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알맞지 않았다. 땅속에 위치한 하수처리장에서 일하는 이승훈씨는 작업복을 “사무실 직원에게나 어울릴 법한 옷”이라고 말한다. 습기로 가득찬 공간에서 일하는 그에게 지급된 폴리에스터 옷은 흡수성이 떨어져 금세 땀범벅이 된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가슴장화는 PVC 소재로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아 답답하고, 끈으로 묶는 작업화는 각종 기계에 끼일 수 있어 안전하지 못하다. 남성이 다수인 건설현... -
소비자, 기만적 상술에 농락당하다
다크 패턴의 비밀해리 브리그널 지음 | 심태은 옮김어크로스 | 344쪽 | 2만원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날짜와 장소를 검색해 숙소를 선택한다고 해보자. 가격이 적당해 예약 상세 페이지로 넘어가면 처음 확인했던 비용보다 높은 가격이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서비스 요금, 수수료 등의 비용이 은근슬쩍 붙은 것이다.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남은 세일 기간’을 알리는 타이머가 줄어들기도 한다. 세일 기간이 1시간도 남지 않았으니 빨리 결제를 해야 할 것 같다. 소비자는 타이머가 0이 되면 곧바로 ‘남은 기간’이 12시간으로 복구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테슬라 업그레이드의 ‘환불 불가’를 알리는 메시지는 작고 어두운 글씨로 결제 화면 가장 아래 배치됐다. ‘재고 2개 남음’ 같은 메시지가 따라붙는 경우도 있다. 재고를 알리는 데이터 숫자가 임의로 형성된다는 것 역시 소비자에겐 비밀이다.‘다크 패턴’이란 “사람들을 속이는 의도적이고 기만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 -
기억하세요, 폭력의 현장 속 고통 받는 여성들을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이브 엔슬러 지음|김은지 옮김|푸른숲|410쪽|1만8800원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 위치한 부카부에는 ‘기쁨의 도시(City of Joy)’라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회복 공동체가 있다. 내전이 장기화되고 분쟁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군, 반군, 민병대할 것 없이 여성들을 강간했다. 강간은 공동체를 파괴해 광산을 차지하려는 군대의 전쟁 전술이자 무기였다. 강간 피해를 입고 살아남은 여성들을 부카부 판지병원을 찾았다. 의사 드니 무퀘게는 헌신적으로 그들을 치료하고 지원했다. 헌신과 신뢰, 연대로 ‘기쁨의 도시’가 건설됐다. 무퀘게는 이 공로로 201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2018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기쁨의 도시>는 전쟁 범죄 피해자인 콩고민주공화국 여성들이 끔찍한 기억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맞서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는 절망의 폐허 속에서 ... -
팔자 좋은 양반? 먹고사는 데 진심이었다
양반과 선비정진영 지음|산처럼1권 368쪽·2권 328쪽|1권 2만4000원, 2권 2만원그 사람 참 양반이네.이 양반아, 눈깔도 없어?우리는 일상에서 ‘양반’이라는 단어를 상찬으로, 욕으로, 때로는 ‘저기요’처럼 누군가를 부르는 중립적 호칭으로 다양하게 사용한다. 양반은 고려시대의 문반, 무반을 지칭하던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점차 문반, 무반에 소속된 사람과 그 후손, 인척 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양반과 통용돼 쓰이는 ‘선비’라는 단어는 비슷하게 느껴지나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 선비는 공자, 맹자로부터 유래된 말로, <맹자>에서 선비는 “떳떳한 생업이 없으면서도 떳떳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설명된다. 선비는 학문에 정진해야 하는, 인(仁)과 의(義)로 무장한 전문 지식인 집단이었다.“조선시대는 양반의 사회였고, 선비의 시대였다.”조선시대 민중운동사와 ... -
불합리한 지시엔 ‘의문’을 품어라
진짜 노동데니스 뇌르마르크 지음 | 손화수 옮김 자음과모음 | 468쪽 | 2만2000원2014년 노키아 최고경영자 스티븐 엘롭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열망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e메일을 직원들에게 발송했다. 이후엔 ‘전략’ ‘가장 많은 가치’ ‘미래’ ‘생산성’ 같은 어휘들이 이어졌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정작 발신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기 어렵다. ‘더 많은 일’은 무엇인지, ‘전략을 가시화’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호하다.인류학 전공자로 노동·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데니스 뇌르마르크는 전작 <가짜 노동>에서 직원을 바쁘게 하지만 정작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직장 문화를 지적했다. 끝없는 회의, 불필요한 서류 작업 등의 문제점을 말했다. 후속작 <진짜 노동>에서 그는 엘롭의 메일이 ‘훌륭하고 전문적’으로 보이지... -
‘안전한 책’이 좋은 책일까?…흥미진진 ‘금서의 세계’로 떠나자
나쁜책김유태 지음글항아리 | 404쪽 | 1만9800원최근 공개된 박찬욱 감독 연출의 미 HBO 시리즈 <동조자>는 비엣 타인 응우옌이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베트남·프랑스 혼혈이면서 남북 베트남의 이중 스파이인 주인공이 두 개 문명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야기다.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인 응우옌은 데뷔작인 이 장편 소설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최고 권위의 상 수상에 TV 시리즈화까지. 작가의 고국 베트남이 떠들썩해질 법하다. 그러나 정작 베트남은 조용하다. <동조자>는 베트남에서 출간조차 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공산당과 공산주의 활동에 대한 소설 속 묘사 때문으로 추정된다.<나쁜 책>은 <동조자>를 비롯한 금서의 세계로 떠나는 책이다. 정치 권력, 종교 등에 의해 ‘나쁘다’고 규정된 책들이다. 시인이자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인 김유태가 썼다. 매주 출판사에서 ... -
노벨상 숨은 비결은 호기심과 재미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브라이언 키팅 지음 | 이한음 옮김 다산초당 | 272쪽 | 1만8500원‘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있다. 수십년간 실험실에 틀어박혀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 강한 자기 확신과 고집으로 이제껏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을 증명해내는 사람.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키팅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9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그런데 인터뷰 질문이 조금 특이하다. 키팅은 1979년 노벨상을 수상한 셸던 글래쇼에게 ‘물리학자에게 자존심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고 묻는다. 88세가 된 과학자 라이너 바이스에게는 ‘지구에서 88년 동안 쌓은 지혜 중 미래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애덤 리스에게는 ‘뛰어난 동료를 만났을 때 자신감을 잃거나 자기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