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세계와 만남…우린 얼마만큼 포용했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 | 김멜라 외 지음 |윤진·홍한별 옮김 |민음사 |308쪽 |1만7000원아내를 따라 스키를 타러 간 ‘나’는 우연히 리조트 휴식 공간에서 젊은 남자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은 이틀 전, 스키장 화장실 변기 구멍에 빠져 밤새 갇혀 있었다는 한 남자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밤새 정화조 안에 있다가 아침에서야 구출됐다고 했다. 그 남자의 사연은 젊은이들에게 “똥오줌이 가득한 풀에서 수영하면서 암울한 밤을 보내긴 했지만 멀쩡해”라는 떠들썩한 조롱거리쯤으로 취급되지만, ‘나’는 2년 전 다른 리조트에서 들었던 똑같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나’는 이상한 생각에 화장실을 조사하게 되고, 설치된 변기의 구멍 크기는 실수로 사람이 빠지기에는 너무 작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스키장 직원을 통해 그 남자가 압디카림 게디 하시, 바로 2년 전 같은 사고를 겪었던... -
인류 문명 ‘마스터키’ 쥔 AI···‘재앙’이다
<사피엔스>(2015), <호모 데우스>(2017),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018) 등 화제의 책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무명의 이스라엘 역사학자에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한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가 새책 <넥서스>로 독자들을 찾아왔다.그 사이 전세계 65여개국에서 자신의 책 4500만부를 팔아치운 하라리가 이번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정보 네트워크다. 이 책에서 하라리가 말하는 정보 네트워크는 주로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구축된 네트워크를 가리킨다.AI가 주도하는 정보 네트워크 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정보 네트워크가 “질병과 빈곤, 환경 파괴 등 인간의 모든 약점을 극복하는 것을 포함해 우리에게 닥친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추적인 기술”이라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견제받지 않는 AI 발전은 생명과 생물권의 대규모 손실은 물론, 인류의 ... -
당신이 아픈 이유…혹시 패스트푸드?
초가공식품크리스 반 툴레켄 지음 | 김성훈 옮김웅진지식하우스 | 544쪽 | 2만3800원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녹아내리지 않는 완벽한 원형의 아이스크림. 영롱하게 반짝이는 윤기에 먹음직스러운 모양새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손색이 없다.초코맛 시리얼이 담긴 박스에는 귀여운 원숭이가 그려져 있다. 밥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이 시리얼은 더 먹겠다고 떼를 쓸 만큼 유혹적인 맛이다. 포장 박스에는 ‘다행히’도 하루 비타민 D 섭취량의 50%가 함유돼 있으며 설탕은 30% 저함량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비단 아이스크림, 시리얼뿐일까. 우리가 일상에서 먹고 마시고 음미하는 먹거리의 상당수는 맛과 모양, 편의성, 경제성을 두루두루 충족시키고 있는 ‘제품’들이다. 바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입장에선 시간을 들여 수고롭게 준비할 필요도 없고 원재료를 사서 손질해 만드는 것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실상 이 먹거리들은 음식이라 부르기 ... -
사회 모순, 우리 몸에 상처 새기다
몸,김관욱 지음현암사 | 256쪽 | 1만7500원2010년대 중반, 스웨덴에서는 잠에서 깨지 못하는 소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2시간 이상 늘어지게 잠을 자는 잠꾸러기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는 며칠을 내리 잤고, 누군가는 5년이나 잠에서 깨지 못했다. 몸을 흔들고 꼬집고 차가운 얼음을 갖다대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놀라운 것은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이었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콧줄을 통해 아이의 몸에 최소한의 영양을 공급하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몇 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줬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깨어났다. 그런데 아이들을 일어나게 한 것은 어떤 약도, 치료도 아니었다. 스웨덴 정부가 그들의 난민 신청을 최종 승인했다는 ‘뉴스’였다. 잠에 빠진 아이들은 모두 스웨덴에 망명을 신청한 난민의 자녀였던 것이다. 소녀들의 불가사의한 잠은 ‘체념증후군’이라고 명명됐다. 이렇듯 인간의 몸은 바깥의 환경에 반응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 -
보는 것에 머물다…신의 눈까지 흉내내는 인간
눈 뇌 문학석영중 지음열린책들 | 688쪽 | 4만8000원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1991년부터 올해까지 33년을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를 지낸 인문학자 석영중은 <눈 뇌 문학>에서 문학, 미학, 과학, 철학, 신학의 영역을 두루 탐험하며 답을 찾아간다. ‘본다’는 행위란 생물학적 관점에서 ‘광수용기 세포가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감지해 뇌에 전달하면 시각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뇌를 넘어선 궁극의 대상을 보려고도 시도한다.석영중 교수는 <눈 뇌 문학>에서 “포식과 경쟁에서 출발한 인간의 눈이 어떻게 그와는 반대되는 연민과 공존과 성찰의 방향을 향해 나아갔는가를 알아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백야>와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투르게네프의 <트롭만의 처형식>, 쟈마틴의 <우리들>, 체호프의 <검은 옷의 수도사> 등 러시아 문학에서 발... -
기괴한 행동부터 비참한 최후까지, 로마 황제 30명 생애 엿보기
로마 황제는 어떻게 살았는가메리 비어드 지음 | 이재황 옮김책과함께 | 680쪽 | 3만8000원시리아 출신 청년 엘라가발루스는 218년 로마 황제에 즉위해 222년 암살됐다. 칼리굴라나 네로만큼 유명한 폭군은 아니었지만,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들 못지않게 기괴하다. 연회의 음식 색깔을 초록색 혹은 파란색으로 통일하는 것은 약과였다. 대머리 남자 여덟 명, 뚱뚱한 남자 여덟 명 등 ‘주제가 있는’ 식사 친구를 초대하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을 초대해 밀랍으로 만든 가짜 음식을 내기도 했다. 같은 신발을 두 번 신지 않거나, 성전환을 시도했다는 기록도 있다.사실일까. 저명한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는 이 같은 기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꺼리는 듯 보인다. “황제가 암살된 뒤 그 경쟁자이자 제위 계승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들이 날조”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소문이 퍼지고 기록으로 남은 배경에는 전제정과 제한 없는 권력에 대한 공포가 있음... -
욕망만 벌겋게 눈뜬 밤…찾아오지 않는 아침
해가 죽던 날 |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글항아리 |520쪽 |2만2000원“이른바 몽유는 대낮에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이게 뼈에 새겨지며 골수에 사무치도록 생각하다가 잠들어서도 깨어 있을 때의 생각들을 이어가고 꿈속에서도 그런 상념에 빠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햇볕이 가장 강하다는 음력 6월 6일. 해가 저물 무렵부터 산간마을 가오톈촌에는 몽유하는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열네 살 소년 녠녠은 자신도 몽유를 하게 될지, 몽유를 하게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장마를 앞두고 종일 조급하게 밀을 탈곡했던 장씨 아저씨는 잠든 상태에서도 밀을 털어내고 있었다. 장례용품을 운영하며 매일 화환 종이를 오리던 엄마는 자면서 꿈속에서도 쉬지 않고 손을 놀리고 있었다. 근면의 습속과 노동에 대한 강박은 꿈속에서도 낮의 일을 끊임없이 재촉했다. 녠녠은 “뭔... -
노스탤지어···과거에 대한 미래지향적 그리움
‘노스탤지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지금이야 크게 해롭지 않은, 때로는 낭만적 울림마저 지닌 감정으로 치부되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노스탤지어는 치명적 ‘질병’으로 분류됐다.영국 감정사학자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의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는 애초 ‘죽음에 이르는 질병’으로 불렸던 노스탤지어가 어떻게 ‘퇴행적 감정’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거쳐 오늘날에는 ‘긍정적 활력’으로 인정받게 됐는지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노스탤지어를 질병으로 규정한 최초의 인물은 17세기 스위스 의사 요하네스 호퍼다. 호퍼는 1688년 학위논문에서 고향을 떠난 스위스 용병들이 앓는 불가사의한 질병에 ‘노스탤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퍼는 노스탤지어의 대표적 증상으로 수면 장애, 갑작스런 분노, 탈진, 시력 및 청력 저하, 발열, 식욕 감퇴 등을 꼽았으며 특히 발열과 식욕감퇴는 사망을... -
옛글에서 찾아낸 ‘토박이말’들
서울의 말들충청의 말들각 한성우, 나연만 지음유유 | 각 214쪽, 216쪽 | 1만4000원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투리’의 말뜻을 찾아보면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이라고 한다. 사투리는 뭔가 촌스러운 느낌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사투리는 곧 토박이말이다. 사투리에는 지역의 정서와 지역민의 정체성이 담겼다. 서울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는 사투리가 있다. ‘사투리의 말들’ 시리즈는 다양한 사투리들을 통해 한국 언어문화를 돌아본다.한성우 인하대 한국어문학전공 교수는 <서울의 말들>에 25년 넘게 수집한 서울 사투리들을 담았다. 서울 사투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표준어는 서울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표준어가 곧 서울말은 아니다. 서울도 엄연히 토박이가 사는 하나의 지역이다. 서울 토박이들이 오랫동안 사용한 서울말들이 있다. ‘짱아’(잠자리), ‘비웃’(청어), ‘버마재비’(사마귀), ‘째마리’(못난이)는 모두 서... -
‘내게 왜 이런 일이’ 연연하지 마세요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 김문주 옮김웅진 지식하우스 | 420쪽 | 1만8500원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이 일어났을 때 그 일에 마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거나 남을 위로한다. 종교적 믿음 때문이든, 아니면 괴로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든, 대체로 사람들은 기쁜 일보다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찾으려 든다. 그런데 정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까?<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의 저자 브라이언 클라스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많은 일들은 ‘무한에 가까운 우발성’에 의해 일어난다. 2001년 가을, 일레인 그린버그는 명화 넥타이를 매는 것을 즐기는 동료 조지프 로트를 위해 모네의 ‘라바쿠르의 일몰’이 그려진 넥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