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결혼 후 시동생이 도박중독임을 알았다면···‘도박 중독자의 가족’ 이하진

김한솔 기자

억울함과 불안함의 10년을 만화로 그려

2023 부천국제만화대상 대상 수상

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 열린책들 제공.

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 열린책들 제공.

만화가 이하진은 도박 중독자의 가족이다. 시동생이 중독자다. 수에 밝았던 남편의 동생은 오래전부터 가족의 돈을 도맡아 관리했다. 어느 날 시동생이 주식으로 가족들의 돈을 날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다.

가족들은 경제 상황 악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그냥 넘겼다. 곧 더 안 좋은 소식이 들렸다. 시동생이 어머니의 아파트 판 돈까지 몽땅 한곳에 투자했다 전부 잃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중독’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도박 중독. 큰돈을 땄을 때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 ‘도파민’이 주는 쾌락을 좇아 무엇이든 하는 행위. 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작가가 주식 중독인 시동생으로 인해 겪은 일들을 다룬 실화 바탕 작품이다. 2012년 연재된 인기 웹툰 <카산드라> 이후 이 작가가 약 10년 만에 내놓은 만화다. 2023 부천국제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가를 지난달 경기 부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만화는 크게 20개 장으로 나뉜다. 시동생이 주식 중독임을 인지하게 된 시점부터 현재 작가의 상황까지 시간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3~4년의 일을 만화로 풀어낸 것 같아보이지만 사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있었던 일들을 압축한 것이다. 만화는 제목대로 도박 중독자 본인이 아닌 도박 중독자 ‘가족’의 시점에서 상황을 조명한다.

이 작가는 차마 내 아들이, 내 동생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댁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꿋꿋하게 도박 중독 상담소에 다니며 상황을 바로잡으려 한다. “가족들은 처음에 못 받아들였죠. 저도 처음에는 ‘이게 중독이 맞나’ 싶었어요. 가족들은 시동생과 몇십년간 같이 살았는데, 얘가 너무 착한 애였거든요. 그런데 중독자라고 하면 나쁜 사람 같잖아요. 당연히 받아들일 수가 없죠. 보통 망하는 데 10년쯤 걸려요. 그때부턴 딱 받아들인다기보다는 좌절하는 거죠. ‘혹시 중독인지도 모르겠다’ 하고요.”

가족들은 처음엔 ‘떨어진 주식을 복구하려 했다’는 동생의 말을 믿지만, 점차 동생의 상태가 ‘중독’임을 알게 된다. 열린책들 제공

가족들은 처음엔 ‘떨어진 주식을 복구하려 했다’는 동생의 말을 믿지만, 점차 동생의 상태가 ‘중독’임을 알게 된다. 열린책들 제공

그는 이 과정에서 많은 중독자 가족이 겪는 ‘공동의존증’이라는 정신질환을 얻는다. 중독자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중독자의 행위에 따라 감정이 좌지우지되는 상태다.

처음 공동의존 증세를 보인 이는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속상한 마음을 며느리인 작가에게 매일같이 전화해 풀고, 때론 화도 냈다. 지칠대로 지친 작가에게 상담사는 ‘공동의존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중독자도 중독이라는 말 들으면 아니라고 부정하거든요. 저도 화냈어요. 제가 왜 공동의존증이냐고, 아니라고. 그런데 저는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인정한 것이 아닐까요. 솔직히 제가 정서적으로 그렇게까지 시동생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상담소에 찾아간 건, 제가 볼 때 상황이 너무 심각한데 아무도 아무것도 안 해서 화가 나서였어요. 시어머니도 힘드셨을 거예요. 중독자가 가족들 괴롭히는 게 상상을 초월한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잘 들어드리려고 했는데, 나중에 저도 너무 힘들어져서….”

작가는 상담소를 다니며 시동생이 ‘주식 중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지만, 가족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오히려 작가를 원망하기도 한다. ‘언제 또 사고가 터질까’ 하는 잔잔한 불안감 속에서 작가도 점점 지쳐간다. 열린책들 제공

작가는 상담소를 다니며 시동생이 ‘주식 중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지만, 가족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오히려 작가를 원망하기도 한다. ‘언제 또 사고가 터질까’ 하는 잔잔한 불안감 속에서 작가도 점점 지쳐간다. 열린책들 제공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할 만큼 괴로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만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가는 개인 블로그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 이야기를 짧은 만화로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너무 답답해서 만화를 그렸어요. 억울함이 폭발할 것 같았거든요. 만화를 안 그린 지 오래돼서 좀 쌓여 있던 것도 있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만화예요. 만화를 그린 덕분에 살았네요.”

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중독자 가족들의 모임에 나가 용기와 위로를 받고, 오랫동안 쉬었던 만화도 본격적으로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휴재했던 <카산드라>를 다시 그리기로 하면서, 블로그에 연재했던 ‘도박 중독자의 가족’도 구성을 다듬어 웹툰으로 재연재했다.

[인터뷰]결혼 후 시동생이 도박중독임을 알았다면···‘도박 중독자의 가족’ 이하진

이 작가는 자조모임에서 만난 가족이 요청한 ‘도박 중독에서 회복하는 방법’도 만화로 그릴 생각이다. “도박 중독은 연구가 거의 안 됐어요. 제가 찾아보려 해도 자료가 없었어요. 만화에 담긴 건 제가 그동안 공부한 것의 요약본이에요. 도박 중독자 가족들이 보면 ‘이거 내 얘기 같아’ 하는 게 많을 텐데, 일반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요. 어떤 분은 ‘교과서 같다’고도 했어요. 사회적인 독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중독에 대해서는 다 쉬쉬하니까 사실은 상담받으러 안 가잖아요. 상담소에서는 초창기에 ‘도박 중독이다’라고 알려버리면 더 심각해지지 않는다고 말해요. 왜냐하면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까요. 만약 돈 빌려줬다 피해를 보면 그 사람을 절대 도와주지 않아요. ‘나쁜 놈’ 하면서 연을 끊죠. 그걸 사회적 지원이 끊긴다고 이야기해요.”

그는 지난해 2월 1인 회사인 ‘호다(HODA)’를 설립했다. 호다에서 다른 작가들과 협업도 하면서, ‘여성으로서 생각하는 것들’을 만화로 그리고 싶다. “지금 ‘한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당시 여성들이 많이 썼기 때문이잖아요? 한글로 자기 삶을 편지로도 쓰고 작품으로도 썼죠. 그땐 여성들이나 사용하는 글자라고 천대받았지만요. 지금 웹툰 작가 중에서도 여성이 훨씬 많거든요. 자기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들이 같이 모여서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그게 만화가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하진 작가가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천국제만화축제 제공

이하진 작가가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천국제만화축제 제공

웹툰 연재 후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도박 중독자의 가족>. 열린책들 제공

웹툰 연재 후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도박 중독자의 가족>. 열린책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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