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사내초(寺內草)를 아십니까. 청와대 미남석불을 아십니까.

해방된 지 무려 72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입니다. 그런데 이 사내초나 미남석불에 식민지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1852~1919)’의 체취가 남아있다는 것이 심각합니다. 사내초는 데라우치의 일본어(사내·寺內) 발음이지요. 말하자면 데라우치 꽃이고 학명도 여전히 ‘데라우치아(Terauchia)’로 시작됩니다. ‘평양지모’니 ‘조선화관’이니 하는 어엿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식물학자 나카이 타케노신(中井猛之進·1882~1952)이 “데라우치 총독 각하 덕분에 (식물조사를 벌였으니) 감복하고 있으며, 본 식물을 각하에 바쳐 길이 각하의 공을 전하려 한다”며 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야말로 ‘나는 총독각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청와대 미남석불엔 왜 데라우치의 체취가 묻어있다는 걸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데라우치가 조선총독으로 한창 권세를 누릴 때인 1912년 어느날 경주를 방문했더랍니다. 이때 어딘가에 앉아있던 석불좌상을 보고는 군침을 흘렸답니다. 모르긴 몰라도 “스바라시(すばらしい·굉장하다)”했겠죠.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경주금융조합이사 고다히라 료조(小平亮三)가 순간 ‘총독 각하의 의중’을 읽었습니다. 고다히라는 데라우치가 일본출장을 간 틈에 잽싸게 그 불상을 경성(서울)의 왜성대 총독관저로 옮겨놓았습니다. 하도 잘생겨서 ‘미남석불’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불상은 1939년 총독관저가 지금의 청와대로 이전하자 함께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미남불상은 1993~94년 구포역 열차전복·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서해 페리호 침몰·성수대교 붕괴·충주호 유람선 화재 등 참사가 이어지자 괴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나타납니다.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버리자 사고가 빈발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출입기자들에게 미남석불을 공개하는 촌극을 빚었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47회는 ‘데라우치 꽃과 사내초, 청와대 미남석불’입니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이런 기사 어떠세요?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