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가토 기요마사 후손 사진이 아닌데…

윤호우 선임기자

일제강점기 사진 중에 가토 기요마사의 후손이라는 사진이 나왔다. 300년 동안 왜군의 후손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후손’은 가토의 부하였던 사야가 김충선의 후손을 말하는 것으로 입증됐다.

이건 가토 기요마사 후손 사진이 아닌데…
설명이 다른 두 장의 사진엽서. 위 사진에는 ‘가토 기요마사의 후손’이라고 적혀 있고, 아래 사진에는 ‘가토 기요마사 부하의 후손’이라고 적혀 있다. / 위 사진: 출처 불명, 아래 사진: 코넬대 소장

설명이 다른 두 장의 사진엽서. 위 사진에는 ‘가토 기요마사의 후손’이라고 적혀 있고, 아래 사진에는 ‘가토 기요마사 부하의 후손’이라고 적혀 있다. / 위 사진: 출처 불명, 아래 사진: 코넬대 소장

“조선에 살고 있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후손들이라고?”

근대 기록물 자료를 수집해온 이돈수 한국해연구소 소장(박사·미술사 전공)은 인터넷에서 이상한 일제강점기 사진엽서를 발견했다. 이 엽서에는 한 한옥 고택에 갓을 쓴 조선인들이 서 있고, 앞줄에는 일본인 순사를 비롯해 10여명이 앉아 있다. 엽서의 아래에는 일본어로 된 사진설명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진 중 한인들은 30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가토 기요마사의 후손들(대구부 근처 팔조치에 거주)’이다. 영문 설명도 있는데 ‘약 300년 전 한국을 쳐들어간 일본인의 후손들’이라고 적혀 있다. 이 소장은 ‘가토 기요마사의 후손’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을 쳐들어온 왜군의 장수였다. 그의 후손들이 300여년 뒤인 일제강점기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이 소장은 이순신 연구가인 박종평씨에게 문의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사료인 만큼 가토 기요마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박 연구가는 여러 자료를 구한 끝에 인터넷에서 사진의 원형을 찾을 수 있었다. 1904년 윌러드 D. 스트레이트가 수집한 엽서였다. 미국 코넬대가 소장하고 있다. 원형의 사진설명(일본어)은 앞 사진의 설명과 조금 달랐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가토 기요마사의 부하로서 한국에 건너온 일본인의 후손(앞줄의 일본인은 당시 탐험가)’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영문 설명은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온 조상의 후손들’이라고 돼 있다.

장소는 ‘경상북도 팔조치’로 되어 있다. 팔조치(八助峙)는 현재의 팔조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앞 사진에서처럼 대구 근처에 있다. 경북 청도와 달성 사이에 있는 고개다. 박 연구가는 “사야가 김충선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대구 달성군 녹동서원이 바로 팔조령 근처”라고 말했다. 사야가 김충선은 가토 기요마사의 부하로, 임진왜란 개전 초기에 자신이 이끌던 조총부대와 함께 투항했다. 그는 나중에 조선군의 일원이 되어 왜군과 싸웠다. 선조는 그의 공을 인정해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는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내려가 여생을 마쳤다.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박 연구가는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일본인들이 사야가에 대해 연구를 하고는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면서 “나중에는 왜군과 싸운 업적이 드러나면서 김충선을 부정하는 주장도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결국 ‘가토 기요마사의 후손’이라는 것은 가토의 부하였던 사야가 김충선의 후손을 말하는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엽서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이돈수 소장은 “당시 많은 사진관이 일본에서 서울로 넘어와 사진엽서를 만들어 팔았다”면서 “사실을 정확하게 싣는 신문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오류가 많았다”고 말했다.

가토 기요마사라는 이름으로 흥미를 끌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설명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 연구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장삿속으로 만든 풍속엽서에는 아직 근대화되지 못한 조선의 모습을 담은 경우가 있다”면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인은 열등한 민족이라는 프레임이 작동된 사진엽서가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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