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다다익선' 2022년 불 켠다...국립현대미술관, 복원방향 발표

도재기 선임기자
비디오 아트 창시자인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 공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 할 때의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비디오 아트 창시자인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 공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 할 때의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은 브라운관(CRT) 모니터와 각종 부품의 노후화 등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이 2018년 2월 작동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은 브라운관(CRT) 모니터와 각종 부품의 노후화 등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이 2018년 2월 작동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작동 중단으로 보존·복원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거듭돼온 비디오 아트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의 복원이 원형유지를 원칙으로 한 최신 기술 적용으로 결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1일 서울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다익선’ 복원의 가장 기본원칙은 ‘원형유지’로 원본성 유지에 최선을 다하되 불가피할 경우 최신 기술을 부분적으로 도입할 것”이라며 “2022년 하반기 전시 재개를 목표로 3개년 복원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백남준의 유작 중 세계 최대 규모이자 대표작인 ‘다다익선’(1988)은 브라운관(CRT) 모니터와 각종 부품의 노후화 등으로 2000년대 들어 고장과 수리가 이어졌고, 결국 지난 해 2월부터 작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날 복원 방향 및 계획 발표에서 “‘다다익선’의 핵심인 CRT 모니터를 최대한 복원해 작품이 지닌 시대적 의미와 원본성 유지에 노력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단종된 CRT 모니터의 재생산 가능성을 타진 중이라고 말했다. 또 동일 기종의 중고품 구입·수리, 최근 대두되는 CRT 재생기술 연구을 위한 국제적 협업도 도모하겠다고 덧붙였다.

미술관 측은 그러나 “다른 모니터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경우 LCD(LED), OLED, Micro LED 등 대체 가능한 최신 기술을 부분적으로 도입, 기존 모니터와 혼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술관 측은 이같은 복원방향 아래 “올 연말까지 사례 및 기술연구 지속하며, 2022년 하반기 전시 재개를 목표로 내년부터 3개년 복원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또 전시 재개에 앞서 작품의 가동시간 단축 등 작품의 보존 강화를 위한 관리방안 수립, 복원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연구백서로 발간하기로 했다.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은 전면 작동 중단 전까지 일부 모니터가 꺼진 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돼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은 전면 작동 중단 전까지 일부 모니터가 꺼진 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돼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 아트 설치작품인 ‘다다익선’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중심 공간인 코어램프(각 전시장을 연결하는 원형 공간)에 설치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1986년)을 앞두고 작품 의뢰를 받은 백남준은 2년 여에 걸친 작업 끝에 1988년 9월15일 지금의 전시공간에서 공식 제막식을 가졌다.

높이 18.5m의 ‘다다익선’은 8개의 영상 이미지가 한층한층 탑처럼 쌓아올린 구조물(설계는 건축가 김원) 위의 5~25인치 CRT 모니터 1003개(10월3일 개천절을 상징)를 통해 상영되는 형태다. 백남준이 작업한 영상 이미지 소프트웨어는 한국의 경복궁과 부채춤·고려청자·한복 등과 프랑스의 개선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등 각국의 문화적 상징물과 샬럿 무어맨의 연주 모습 등을 담은 ‘다다익선 Ⅰ’ 등 모두 8개다.

‘다다익선’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세계 인류가 예술과 과학기술을 통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백남준의 작품철학을 응축한 것이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에서의 첫 전시회에서 세계 최초로 TV를 예술적 오브제로 활용,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예술과 과학기술을 융합시킨 그의 선지자적 작품세계는 최근 국제적으로 미디어 아트가 활성화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백남준 작품 ‘다다익선’이 군데군데 모니터가 꺼진 모습(2011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남준 작품 ‘다다익선’이 군데군데 모니터가 꺼진 모습(2011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2년엔 작품에 불 켜질까

2022년 ‘다다익선’의 전시 재개를 목표로 삼은 국립현대미술관은 내년부터 3개년 복원프로젝트를 운영키로 했다. 올해는 먼저 보존·복원을 위한 관련 자료 및 세부 사례 연구와 기술 검토 등이 이뤄진다. 이어 내년부터는 CRT 모니터 수집과 수리·복원, 또 재생기술 조사와 신기술의 검토 및 모니터 교체작업을 2022년까지 진행한다.

복원 과정에서 모니터는 물론 배선, 분배기, 소프트웨어 문제 등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검토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 기술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일정 수립과 관련된 예산 확보 등 실무적인 복원작업이 이뤄진다. 이어 작품 전시 재개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점검하고 장기적인 운영 관리방안도 수립할 예정이다. 미술관 측은 “작품 전시 재개까지 일부 변동이 있을 수 있으나 단순한 기술 검토와 수리의 개념을 넘어 미디어 작품의 보존을 위한 매뉴얼이 될 수 있도록 기록과 연구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에는 시범 상영 등을 거쳐 하반기에는 ‘다다익선’의 전시 재개와 함께 결과보고회 발표, 백서 발간 등을 추진하게 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다다익선’의 복원에 주력하겠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미술관의 의지를 지지해주기를 기대하며 작품 전시가 재개될 때까지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다다익선’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백남준 작가(1992년).경향신문 자료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다다익선’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백남준 작가(1992년).경향신문 자료사진.

■논란에 마침표? 향후 미디어아트 작품 보존·복원에도 영향 줄 듯.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대표작·최대 규모의 작품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지만 1988년 작품설치 때부터 작동 중단 등을 어느정도 내포하고 있었다. 작품 제작당시엔 CRT 모니터 등 부품이 첨단이었지만 기술발전에 따라 구시대 소재가 될 것이란 예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작품은 10여 년이 지나면서 부분적 보수가 필요했고, 일부 모니터는 노후화돼 작동이 멈췄다.

2002년에는 각종 부품의 노후화로 화재까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 운영을 잠정 중단하고 2003년 3월 모니터를 전량 교체했다. 작품에 사용된 모니터는 단종돼 삼성전자 등의 지원과 옥션·고물상에서의 구매로 겨우 교체가 가능했다. 부분 수리를 받으며 보존되던 다다익선은 결국 지난 해 2월 전반적인 노후화와 부품 조달의 한계, ‘계속 가동할 경우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누전상태’라는 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작동이 전면 중단됐다.

사실 ‘다다익선’은 이미 2000년대 들어 심각한 노후화로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 미술계의 큰 숙제를 안겼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다. 세계적 가치와 의미가 있는 만큼 ‘복원해야 한다’부터 ‘아예 해체·철거하자’는 견해까지 다양하게 나오면서 주장과 반박, 재반박이 이뤄지며 논란이 뜨거웠다. 또 복원을 한다면 어느 범위에서 어떤 수준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도 난제였다. 영상 이미지 소프트웨어의 복원, 힘들지만 CRT 모니터 구입 또는 특별 주문제작, 모니터를 LCD·LED·OLED로 전면 교체, 모니터 케이스는 놔두고 내부 브라운관만 교체, 새로운 기술개발 때까지 대기 등의 방안이 제기됐다. 문제는 각 방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려 접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단적으로 평면 화면으로 바꿀 경우 특유의 브라운관의 볼록한 볼륨감이 사라지면서 작품의 원형, 원본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백남준은 생전에 작품의 외형은 신기술 매체로 대체하는 데에도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개념은 영상이미지에 담겼기 때문에 외형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어디에다 켜도 괜찮다”는다는 것이다. 실제 2002년 모니터들이 검은 색에서 은색으로 바뀌었지만 특별한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백남준 작가가 독일 부퍼탈에서 1963년 첫 전시회를 열 당시의 포스터. 한국에서 공수한 경향신문 지면을 그대로 활용한 독창적인 포스터로 평가받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남준 작가가 독일 부퍼탈에서 1963년 첫 전시회를 열 당시의 포스터. 한국에서 공수한 경향신문 지면을 그대로 활용한 독창적인 포스터로 평가받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해체·철거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작품 특성상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다다익선’은 영구 설치작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지금 작품이 설치된 램프코어는 원래 전시공간이 아니라 여러 전시장을 연결하는 한번에 연결하는 기능의 미술관 핵심 공간으로 설계됐다. ‘다다익선’이 당초 설계상 의미를 훼손하면서 공간의 조망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다익선’의 설치배경의 하나는 램프코어 공간이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것과 너무 닮아 이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실제 미술관은 2012년 수리·모니터 교체의 한계·건축설계의 훼손 등을 이유로 해체와 관련 기록물로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다다익선’이 지닌 상징성으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보존·복원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던 것은 세계 곳곳에 있는 백남준의 다른 비디오 아트 작품의 보존·복원의 전례가 될 수도 있어서다. 국내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인 것이다. 나아가 다른 작가들의 미디어아트 작품 보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이에따라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이 정한 복원 방안은 앞으로 미디어 아트 작품의 전반적인 보존·복원에 중요한 선례가 돼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준모 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이날 “원본성 유지를 하겠다는 뜻은 이해하지만 향후 계속되는 수리·복원 필요성 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개인적으로 이번 기회에 이 시대 첨단과학기술을 적용함으로써 ‘다다익선’을 ‘2.0버전에서 3.0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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