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와 불교, 순교 성지에서 미술작품으로 만난 까닭은?

도재기 선임기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현대불교미술전-空’ 전
·국보 ‘화엄사 괘불’과 현대미술작품 30점 선보여
·“종교간 경계 넘어 이 시대 우리 삶의 성찰” 취지

천주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특별기획전으로 ‘현대불교미술전-공’을 열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조선시대 불화로 높이 12m에 이르는 ‘화엄사 영산회 괘불’(국보 301호)을 살펴보고 있다. 도재기 기자

천주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특별기획전으로 ‘현대불교미술전-공’을 열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조선시대 불화로 높이 12m에 이르는 ‘화엄사 영산회 괘불’(국보 301호)을 살펴보고 있다. 도재기 기자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상징성이 큰 서울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불교 가르침을 다룬 미술전이 열려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천주교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이 개관 2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현대불교미술전-空(공)’을 마련한 것이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지하에 자리한 지상의 ‘서소문 역사공원’ 일대는 한국 가톨릭 최대의 순교터다. 조선시대 ‘서소문 밖 네거리’로 불린 이곳은 1801년 신유박해부터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73)를 거치며 많은 신자들이 죽음으로 신앙을 지킨 성지다. 국내 가톨릭 성인 103위 중 44위, 복자 123위 중 27위가 바로 이곳에서 순교했다.

교황청이 승인한 국제 순례지이기도 한 이 성지에서 불교의 핵심사상인 공을 주제로 한 미술전시회는 천주교·불교의 종교계는 물론 미술계 안팎에서도 관심을 끈다. 종교의 경계를 훌쩍 넘어서서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고 종교간 화합을 위한 의지의 표현이 두드러져서다. 특히 정치·사회적 갈등과 환경·생태 등 인류적 난제, 각자도생으로 상징되는 현대인의 개인적 고뇌,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의 삶을 깊고 넓게 성찰해보자는 취지도 돋보인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내 천주교 순교 성인 5위의 위패가 모셔진 콘솔레이션 홀의 사방 벽으로 김기라 작가의 영상작품 ‘장님-서로 다른 길-1’이 펼쳐지고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내 천주교 순교 성인 5위의 위패가 모셔진 콘솔레이션 홀의 사방 벽으로 김기라 작가의 영상작품 ‘장님-서로 다른 길-1’이 펼쳐지고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특별전은 지리산 화엄사의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301호)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가 13명의 회화·조각·영상·사운드 아트·설치 등 다양한 장르 작품 30여점으로 구성됐다. 참여작가는 강용면·김기라·김승영·김태호·노상균·윤동천·이수예·이용백·이인·이종구·이주원·전상용·천경우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주목받는 원로·중견 작가들이다.

예술감독인 김영호 중앙대 교수는 “불교의 ‘공’사상을 기반으로 이 시대의 다양한 현실에 대한 작가들의 예술적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엄선하게 됐다”며 “세상 모든 것들이 더불어 행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보편적 진리의 이상을 예술표현이라는 실천행위와 전시라는 소통·나눔의 장치로 실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불교에서 ‘공’은 인간을 비롯한 우주 만물이 모두 서로 연결·의존하고 인연에 따라 생멸하며 늘 변화하기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것으로 무아(無我), 무자성(無自性) 등으로 풀이된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다.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처럼 계단 아래 외진 한 켠에 자리한 윤동천 작가의 설치작품. 작업 중 타계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처럼 계단 아래 외진 한 켠에 자리한 윤동천 작가의 설치작품. 작업 중 타계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작품들은 지하 1~3층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미술관·갤러리의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성지박물관이라는 독특한 공간적 특성과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를 전한다.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은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법당 밖 야외에서의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조선 효종때인 1653년에 조성된 괘불은 길이 12m, 폭 7.7m로 현존하는 영산회 괘불 중 최대 규모이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이후 10여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

괘불탱 뒷편에 자리한 콘솔레이션홀은 순교성인 5명의 유해가 홀 중앙에 모셔진 성스러운 공간이다. 하늘의 빛이 지하 3층의 홀 중앙으로 쏟아지는 공간의 네 벽면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됐고, 김기라의 영상작업 2점이 펼쳐진다. 절규하며 싸우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적 갈등과 대립·부조리를 역동적으로 그린 작품,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 안팎을 다양한 영상기법으로 담아낸 명상적인 작품이다. 개인적·사회적으로 생생한 현실, 또 추구하는 이상을 서로 대조시키며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윤동천의 설치작은 작업중 타계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유품 등으로 구성됐다. 세계적인 산업재해의 실상 등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은 ‘나는 너다 너는 나다’란 텍스트 작업을 통해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 공존과 상생, 나눔과 배려의 가치를 되새긴다. 특히 작품은 소외된 이들처럼 박물관내 가장 소외된 공간인 계단 아래 맨바닥 한 켠에 설치됐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새삼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이끄는 이종구 작가의 작품 ‘사유-생·로·병·사’ 의 전시 전경.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새삼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이끄는 이종구 작가의 작품 ‘사유-생·로·병·사’ 의 전시 전경.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이종구의 ‘사유-생·로·병·사’는 4점의 연작 회화다. 끝없이 내려놓고 비워낸 듯 사유적인 화면 구성과 반가사유상의 의미심장한 표정들이 눈길을 잡는 작품은 생로병사에 허덕이는 관람객에게 스스로 실존적 물음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박물관 전시실 바깥 공간(하늘광장)에는 조각작품들과 더불어 관람객 참여형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원종현 신부는 “오늘날 문제들의 원인은 무아, 공과는 달리 ‘나’를 중심으로 살아온 지난 날에 있지 않을까”라며 “이번 전시가 반성과 성찰, 그리고 변화를 통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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