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사르트르·성서로 '뮤직비디오 비평'…유튜버 김일오 인터뷰

유경선 기자
뮤직비디오 해석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 ‘김일오’. 유튜브 제공

뮤직비디오 해석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 ‘김일오’. 유튜브 제공

뮤직비디오에 대한 인식은 ‘음악에 딸린 영상물’ 정도에 가까웠다. 이런 뮤직비디오를 ‘적극적 감상’을 통한 비평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유튜버가 있다. ‘뮤비 해석해주는 토끼’로 자신을 소개하는 유튜버 ‘김일오’다. 김일오를 26일 인터뷰하며 뮤직비디오 비평에 관해 이야기했다.

뮤직비디오 속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게 재밌었던 김일오는 자신의 감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지만 ‘뮤비 평론’ ‘뮤비 리뷰’를 찾기 어려웠다. “없으면 만들자”는 결심으로 ‘뮤비 해석’ 유튜브 채널이 탄생했다. 뮤직비디오가 음악에 종속된 영상물에서 벗어나 독립된 작품의 지위를 갖게 된 순간이다.

“K팝 시장이 확장되고 그에 따라 뮤직비디오 소비도 커지는데, 왜 음악을 홍보하는 일회성으로만 소비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대중이 뮤직비디오 리뷰와 평론을 익숙히 여기게 만들어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시작된 뮤직비디오 비평의 세계는 넓고 깊다. 오리엔탈리즘이나 불교철학, 칼 융의 심리학 이론, 성경 속 에덴동산, 영화 <블랙스완> 등이 해석의 도구로 등장한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 뮤직비디오는 대부분 연인이 등장하는 드라마의 구성을 하고 있었다. 메타포가 없진 않았지만 해석의 영역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여자가 중병을 앓다 죽어서 남자가 오열하거나, 괴한에게 납치된 여자를 남자가 목숨 걸고 구해낸다는 식의 극적인 구성이 많았다.

뮤직비디오는 K팝의 약진과 함께 한단계 도약했다. 김일오는 “2000년대 후반으로 오며 K팝에 메타포가 강한 뮤직비디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뮤비 해석’의 콘텐츠로 활용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라고 말했다. 주제도 ‘사랑노래’에서 더 다양하게 뻗어나가며 개성 강한 뮤직비디오들이 생겨났다.

김일오는 “전문서적이나 논문을 찾아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그룹 ‘에스파(aespa)’를 예로 들었다. 에스파는 메타버스(metaverse) 세계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룹으로, 뮤직비디오와 노래가 이 주제를 관통한다. 그는 에스파의 세계관을 분석할 때 “메타버스가 국내에서는 이슈가 된 지 얼마 안돼서 서적들에는 찾고 싶은 만큼 내용이 없었다”며 논문들을 뒤졌다고 했다.

메타버스 속 에스파 멤버들의 ‘아바타’를 설명하면서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가져온다. 이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가 본질을 앞서는 유일한 존재인데, 김일오는 아바타가 실제 에스파 멤버들과 주종(主從)을 뒤바꿔서 그들의 존재론적 자유를 쟁취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뮤직비디오를 해설하는 유튜버 ‘김일오’. 유튜브 화면 캡처

뮤직비디오를 해설하는 유튜버 ‘김일오’. 유튜브 화면 캡처

그의 콘텐츠는 뮤직비디오를 해석의 영역으로 편입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도 있다. ‘비평’이라는 행위가 일방적 전달이 아닌 쌍방이 함께 하는 소통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김일오는 언제나 영상의 시작에 “뮤비 해석 영상은 개인적인 견해”라며 자신의 감상이 정답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영상 말미에는 “뮤직비디오를 어떻게 보셨는지 댓글을 남겨달라.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실제 김일오가 올린 해석 영상 아래에는 시청자들의 추가 해석들이 많이 달려 있다. 합작하는 비평의 좋은 예다. 김일오는 “가끔 댓글을 읽는 건지 논문을 읽는 건지 헷갈린다”며 웃었다. 권위적으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비평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김일오의 지향점이다.

이 소통의 장에 아티스트가 ‘본인 등판’하는 일도 종종 있다. 김일오는 “그룹 ‘아이들’의 ‘오마이갓(Oh my god)’ 뮤직비디오를 해석하고 나서 ‘내가 만들었지만 재밌다, 예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이들이 공식 계정으로 댓글을 달아주셨다”고 했다. 최근에 새 앨범을 발표한 남매 듀오 악뮤(AKMU)의 이수현은 신곡 ‘전쟁터’ 뮤직비디오 해석 콘텐츠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언급하기도 했다.

김일오는 ‘어떻게 하면 뮤직비디오를 잘 감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는 “여러 뮤직비디오를 다양하게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틀린 해석’은 없다”며 “개인의 감정·경험을 연결해보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태연의 ‘사계’는 연인의 권태기를 다룬 노래인데, 제가 그때 실제로 권태기를 겪어서 해석에 도움이 됐어요. 그룹 ‘여자친구’의 ‘열대야’ 해석은 교수님이 수업에서 말씀해주신 열대식물 관련 지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생각보다 일상 속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김일오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한 토끼가 김일오의 동작을 대신 보여준다. 인터뷰도 이 토끼와 함께 진행됐다. 김일오는 “처음에 채널을 시작할 때 꿈꿨던 소통의 장이 현실화되고 있고, 뮤직비디오의 감상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어서 뿌듯하다. ‘김일오 덕분에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태도가 생겼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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