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송 '창귀'로 새 장르 쓰는 안예은…"나는 전생체험 시켜드리는 가수"

유경선 기자
지난 23일 서울 서교동 연습실에서 만난 가수 안예은.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 23일 서울 서교동 연습실에서 만난 가수 안예은. 우철훈 선임기자

안예은은 ‘안예은이라는 장르’를 쓴다. 올해 서른살이 된 이 싱어송라이터는 “재밌어 보이는,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들 뿐이다. ‘대중성이 없다’ ‘너무 마니악하다’는 평가에 멈춰설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안예은은 계속 자기 길을 걸었고, 그만의 색으로 대중에 각인됐다.

이달 초 두 번째 ‘호러송’인 ‘창귀(倀鬼)’를 발표한 안예은은 데뷔 이후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창귀’의 독특한 분위기와 무시무시한 노랫말에 빠져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뮤지컬 넘버(노래) 작곡 작업을 했고, 국악 경연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도 참여 중이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연습실에서 안예은을 만났다.

■갈팡질팡하는 귀신 이야기 ‘창귀’

안예은의 개성은 ‘호러송’에서 빛난다. 지난해 첫 번째 호러송 ‘능소화’를 발표했고, 지난 1일 두 번째로 ‘창귀’를 냈다.

“보통 여름에 ‘서머송’이 많이 발표되죠. 저도 저만의 콘셉트로 서머송을 하나 내보자 싶었고, 여름마다 ‘납량특집’ ‘공포영화’가 나오는 것처럼 호러송을 만들어봤어요. 생각보다 많이 재밌어 해주셔서 올해도 내게 됐습니다.”

‘창귀’는 한국의 전설 속 귀신으로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의 혼을 뜻한다. 창귀는 호랑이 노예 신세를 벗기 위해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다닌다. 이 귀신이 한 나그네를 꾀어내 호랑이에게 바치려고 부리는 조화가 노래의 내용이다. 창귀의 창(倀)자에는 ‘갈팡질팡하다’는 뜻이 있다. 목숨을 잃은 게 억울한 창귀가 ‘갈팡’하는 사이 나그네는 정신이 홀리고 ‘질팡’하면서 잡아먹힐 듯하다.

안예은의 두 번째 호러송 ‘창귀’ 뮤직비디오 스틸컷. XX엔터테인먼트 제공

안예은의 두 번째 호러송 ‘창귀’ 뮤직비디오 스틸컷. XX엔터테인먼트 제공

안예은의 두 번째 호러송 ‘창귀’ 뮤직비디오 스틸컷. XX엔터테인먼트 제공

안예은의 두 번째 호러송 ‘창귀’ 뮤직비디오 스틸컷. XX엔터테인먼트 제공

“범을 잡는다 거드럭대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창귀는 나그네에게 “이대로는 달상하여(슬프고 가슴 아파) 황천을 건널 수 없”다며 “옳다구나 당신이 나를 도와주시게”라고 본색을 드러낸다. 나그네를 상대로 “네 목숨이 곤히 붙어있을지 무꾸리(점치기)를 해보자”며 농락하기도 한다. 결국 “너를 데려가겠노라”라는 포효와 함께 노래가 끝난다.

작사와 작곡 모두 안예은의 상상력으로 탄생했다. 그는 “창귀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재밌어서 메모장에 기록해둔 게 시작”이라며 “한국에만 있는 귀신이고, 이야기도 흥미로워서 소재로 삼았다”고 말했다. ‘거드럭’ ‘달상하다’ ‘교교하다’ 같은 단어를 정성껏 골라 가사에 넣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된 뮤직비디오가 26일 기준 유튜브 조회수 205만회를 넘어설 만큼 반응이 뜨겁다.

안예은의 두번째 호러송 ‘창귀’ 뮤직비디오 스틸컷. XX엔터테인먼트 제공

안예은의 두번째 호러송 ‘창귀’ 뮤직비디오 스틸컷. XX엔터테인먼트 제공

■“음악으로 ‘전생 체험’ 시켜드리는 사람”

‘능소화’와 ‘창귀’ 외에도 안예은은 한국의 민속과 정서를 담은 노래를 여럿 발표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 ‘홍연’이 사극의 OST로 쓰이기도 했다. 갓 서른인 아티스트가 국악풍 음악을 만든다는 건 분명 익숙치 않은 장면이다.

계기가 있었냐는 질문에 안예은은 “그런 질문을 많이 받지만 계기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단 재밌으면 열심히 할 뿐이에요. 저는 그 성향이 특히 강한 것 같고요. 서사가 있는 모든 걸 좋아해요. 어떤 이야기를 접한 뒤 그게 재밌으면 파고드는 거죠. 한국사람이라 한국의 오래된 이야기에 더 흥미가 가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국악을 해야지’ ‘한국적인 걸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어려서 사극을 즐겨봤던 것 정도?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가 수라간에서 요리할 때 나오는 연주곡을 정말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의 취향이에요.”

그의 노래는 팬들의 상상력의 자극해 2차 창작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너무 무서워서’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능소화’ 뮤직비디오에는 단편 이야기에 준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홍연’을 듣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조선시대 궁으로 와 있는 기분을 느낀다는 팬들도 있다.

“저는 제 음악을 듣는 분들에게 전생 체험을 시켜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게 저의 차별점이고 장점인 것 같아요. 제 노래를 들을 때만이라도 시간여행이나 공간이동을 하는 느낌을 드리는 거죠.”

■“소수자 문제, 관심 멈추는 순간 나도 멈추는 것”

안예은은 소수자와 약자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최근 작업한 뮤지컬 <유진과 유진>은 아동 성폭력을 다룬 작품이다. 페미니즘에 관한 소신도 뚜렷하다. 그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소수자·약자 문제에는 계속 관심을 갖겠다고 다짐한다”며 “그걸 멈추는 순간 나도 같이 멈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안예은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그는 선천적 심장 기형으로 다섯 차례 수술을 받았다. “제가 약자였어요. 지병이 있다는 것만으로 많이 차별받았어요. 가령 수련회를 가면 ‘몸 안좋은 애들은 다 빠져’라는 말부터 들었어요. 할 수 있는 일에서도 미리 배제된 거예요. ‘심장병이 있는 애가 이러면 안되지, 저러면 안되지’ 하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그때는 기분이 나쁘면서도 왜 나쁜 건지 이유를 몰랐어요.” 당사자의 생각과 의지보다 그가 가진 특징만을 근거로 예단하고 배제하는 것, 전형적인 차별의 기제다.

그의 부모는 그런 배제가 옳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부모님은 ‘심장병이라서 안 된다’는 식으로 키우지 않으셨어요. 그냥 좀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셨죠. 건강한 친구들이 10분 뛰어놀면 전 5분 뛰어놀게 하셨어요. 브레이크를 밟아도 제가 밟게 하신 거죠.”

자녀가 같은 병을 앓는 부모들에게 그의 존재는 희망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병을 가진 환우들끼리 모임이 열렸어요. 전 ‘그냥 태어나서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기인 환우들의 부모님은 ‘우리 아이도 고3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어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안예은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며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요즘은 복싱도 한다”며 웃었다. “음악을 그만두려 했던 제가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밥 잘 챙겨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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