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려드는 ‘춤 전쟁’···‘여적여는 허상’ 보여준 스트릿 우먼 파이터

유경선 기자
엠넷의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국내 대표 여자 댄서들의 ‘진짜 승부’를 보여주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엠넷 제공

엠넷의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국내 대표 여자 댄서들의 ‘진짜 승부’를 보여주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엠넷 제공

엠넷(Mnet)의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가 여성 댄서들 간의 화려한 경쟁을 보여주며 시청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스우파>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여자들 싸움’이었다. 경쟁은 경쟁이되, 실력보다는 알력이나 은근한 질시가 우선 작동하는 싸움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오래된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이다.

시청자가 본 건 ‘여자들 싸움’이 아니라 ‘춤 천재’들이 철저하게 실력으로 겨루는 장면이었다. 승패 판정은 길어야 몇십 초 안에 끝나고, 참가자들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파이트 존’ 밖으로 물러난다. 상대에게 ‘리스펙’을 보이기도 한다.

이 깔끔한 ‘파이터’들에게 대중이 보내는 환호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3회 만에 이뤄냈다. <스우파>는 ‘K팝 아티스트가 독점하던 스포트라이트를 댄서들에게도 비추겠다’며 기획됐다. 제작진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자 댄스 크루”라고 자랑한 여덟 참가 크루가 고른 인기를 모으며 댄스신에서의 인기를 대중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댄서별·배틀별로 편집한 유튜브 다시보기 영상은 100만 단위 조회수를 훌쩍 뛰어넘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스우파 과몰입 중’이란 반응이 심심찮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참가한 여덟 크루. 엠넷 제공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참가한 여덟 크루. 엠넷 제공

<스우파>는 첫 방송 전까지만 해도 ‘여적여’의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40여분 분량의 선공개 영상에는 크루 ‘웨이비(WayB)’ 의 리더 노제가 ‘예쁜 외모에 비해 댄서로서의 영향력은 의문’이라는 평가를 듣자 크루 ‘YGX’의 여진이 마치 약올리듯 “괜찮냐”고 묻는 장면, 크루 ‘라치카(Lachica)’와 ‘훅(Hook)’이 방송 프로그램 안무 채택을 놓고 경쟁했던 과거, 크루 ‘홀리뱅(Holybang)’의 리더 허니제이와 ‘코카엔버터(CocaNButter)’ 멤버들이 갈라선 과거가 담겼다. 참가자들은 이 갈등관계들에 긴장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방송이 시작되니 분위기가 뒤집혔다. 먼저 ‘라치카’의 리더 가비와 ‘훅’의 리더 아이키의 대결이 예상을 깼다. 댄스배틀에서 옷을 벗는 퍼포먼스를 하던 가비가 실수로 버벅대자 아이키가 나서서 옷을 제대로 벗을 수 있게 도와줬다. 자신을 도발한 상대지만 대결이 실수 때문에 싱거워지는 일을 막았다. 이후 가비가 자신의 팀원을 격려하는 아이키에게 “멋있다”며 웃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노제는 ‘외모로 고평가됐다’는 편견의 대상인 듯했지만 ‘YGX’의 리더 리정은 “예쁜데 춤도 정말 잘 춘다”고 인정했다. 노제에게 도발하듯 “괜찮냐”고 묻던 여진은 사실 노제와 친한 사이다.

허니제이와 ‘코카엔버터’의 리더 리헤이 간 대결이 특히 시선을 모았다. 허니제이와 ‘코카엔버터’ 크루가 7년간 한팀에서 활동하다가 헤어진 과거 때문이다. 승부가 난 후 서로 끌어안은 두 사람은 “잘 지내셨던 거죠”라고 안부를 묻고 “고생했다. 많이 멋있어졌다”고 인정해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결 도중에는 서로 약속한 것처럼 비슷한 안무를 추며 같이 활동했던 7년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라치카’의 피넛은 “한번도 못 이겨봤다”며 ‘프라우드먼(Prowdmon)’의 립제이에게 왁킹(스트리트 댄스의 일종)으로 대결을 신청했다. 이번에도 이기지 못했지만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2회에서는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와 ‘코카엔버터’의 리더 리헤이가 대결을 펼친 뒤 포옹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엠넷 제공

<스트릿 우먼 파이터> 2회에서는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와 ‘코카엔버터’의 리더 리헤이가 대결을 펼친 뒤 포옹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엠넷 제공

이 대결들은 상대에게 ‘노 리스펙트(No Respect)’ 딱지를 붙이는 ‘약자 지목 배틀’이라고 명명됐는데, 실제로는 대부분 ‘리스펙’이 오고갔다. 경쟁관계인 댄서들이 SNS상에서는 서로 친밀하게 왕래하는 모습, 허니제이와 리헤이가 SNS를 ‘맞팔’한 장면에는 시청자의 환호가 따랐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스우파> 2회(8월31일 방송)는 평균 시청률 2.7%, 분당 최고시청률 3.2%를 기록했다. 종편과 케이블 통합 유료방송 플랫폼 기준으로는 동시간대 가구 시청률 1위였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현장에서 댄서들이 ‘이긴다’는 생각보다는 최선의 무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사력을 다하는 것이 보인다”며 “서바이벌의 특성상 크루 간 양보 없는 싸움이 불가피하지만, 미션 전후로는 카메라 뒤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연출자인 최정남 PD도 지난달 제작발표회에서 “댄서들의 스포츠맨십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참가한 여덟 크루의 리더들. 엠넷 제공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참가한 여덟 크루의 리더들. 엠넷 제공

그 덕분에 K팝 인기의 조역이었던 댄서들은 이제 변방에서 ‘센터’로 옮겨오고 있다. 댄서들이 과거 K팝 아티스트의 무대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영상이 ‘댄서 위주’로 재편집돼 유통되고 있고, 방송 이후 처음 개설된 댄서의 SNS 계정은 금세 만명 단위의 팔로어를 채우기도 했다. ‘고독방’도 생겼다. ‘고독방’은 팬들이 스타를 응원하기 위해 개설하는 익명의 오픈 채팅방이다.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는 12일 이 방을 통해 “부정적 평가마저 고맙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방송에 나왔다”며 “모두가 댄서라는 직업에 무관심해지고, 공연도 없어지고, 하나씩 주변에서 춤을 그만두려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모두가 누군가의 팬이 되어 댄서의 상황에 공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기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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