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랑이 차별금지법을 고척돔에 쏘아올렸다

오경민 기자

지난 2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제31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시상식. 가수 이랑과 함께 무대에 오른 약 40명의 합창단이 수어를 했다. 두 손등을 위로 하고 위 아래로 엇갈리게 몇 차례 움직였다(“차별”). 이어서 손바닥을 아래로 펼친 두 손을 아래로 내리며 엄지에 나머지 손가락을 모아 쥐었다(“금지”). 검지와 중지를 반쯤 구부린 오른손 주먹으로 왼 손바닥을 두번 두드렸다(“법”). 두 손의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지읒 모양으로 펼쳐 손등을 위로 가게 한 후 두 손을 약간 아래로 내렸다(“지금”). 합창단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이 수어를 네 번 반복했다. “차별금지법, 지금!”

2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제31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을 수상한 이랑의 무대에서 합창단이 ‘차별금지법, 지금’이라는 수어를 하고 있다. KBS joy 화면 갈무리

2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제31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을 수상한 이랑의 무대에서 합창단이 ‘차별금지법, 지금’이라는 수어를 하고 있다. KBS joy 화면 갈무리

이랑은 국내 실내 공연장 중 가장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인 고척스카이돔 무대에 ‘차별금지법, 지금!’이라는 메시지를 쏘아올렸다. 이날 무대는 KBS joy 채널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시상식 다음날인 24일 이랑과 화상으로 만나 이러한 무대를 기획한 배경을 물었다. 그는 “저한테 올 수 있는 기회 중 가장 큰 무대가 아닌가 생각했다. 제 음악을 멋지게 소개하고 싶었고, 지금 하고 싶은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두 가지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맞춰서 볼 만한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며 “출연료나 제작비 없이 큰 무대를 꾸려야 했지만 차별금지법을 세상에 또 한 번 이야기할 기회라고 생각해 오르기로 결정했다. 합창단과 함께 ‘고척돔에 집회하러 가자’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랑은 지난 23일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KBS joy 화면 갈무리

이랑은 지난 23일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KBS joy 화면 갈무리

그간 이랑은 자신에게 무대가 주어질 때마다 자신의 음악을 소개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에 메시지를 전해왔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뒤 수상소감에서 “월세를 내야 한다”며 트로피를 즉석 경매에 부친 일은 오래 회자됐다. 그는 2년 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예술가를 직업인으로서 인정해주지 않는 가운데 버둥버둥 50만원을 벌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이랑은 2018년 서울서부지법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직후 오른 야외 페스티벌 ‘서울인기’ 무대에서는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구호를 외쳤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심사가 또 다시 미뤄진 뒤 가진 단독공연에서는 관객들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외쳤다.

‘트로피 경매’ 수상소감 이후, 감탄만큼이나 악의적인 비난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올해도 용기를 내 어김없이 할 말을 했다.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받은 이랑은 1분이 조금 넘는 수상소감과 3분30초가량 축하무대를 ‘차별과 혐오를 없애야 한다’는 메시지로 채웠다. “저는 주로 저랑 제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만듭니다. 제 친구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면서 약간 혁명가 같은 곡들을 노래하고 있는데요, 부디 제가 이런 곡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 빨리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수상소감이다.

수어 퍼포먼스는 농인을 위한 한글 자막도, 수어통역도 제공되지 않아 시상식에 대한 농인의 접근권이 열악한 상황에서 탄생했다. 이랑은 평소 더 많은 이들에게 노래나 멘트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자신이 참여하는 현장에 수어통역이나 자막을 요청한다. 그런데 서울가요대상은 이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는 “가사 전달을 위해 농인인 수어 선생님과 무대에 함께 서는 것을 제일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화면 전환이 잦아 수어통역이 제대로 비춰지지 않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가사에는 없지만 전하고픈 메시지인 ‘차별금지법’을 수어로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마저도 카메라에 잡힐지 알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이랑에게 차별금지법은 무엇일까. 그는 “누가 처음 정했는지 알 수 없는 ‘정상성’에 대해,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와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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