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레벨업’은커녕, 나 혼자 관리해야 하는 웹툰 작가들

위근우 칼럼니스트

제동장치 없는 과로 시장의 비극…이런 부고, 다시 나와선 안 된다

지난 23일, 한 명의 창작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인 인기를 끈 카카오페이지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이하 <나혼렙>)의 작화를 담당한 고 장성락 작가. 향년 37세. <나혼렙> 제작사인 레드아이스 스튜디오의 부고 소식엔 “고인께서는 평소 지병이 있었고, 이로 인해 생긴 뇌출혈로 타계하셨습니다”라는 사인이 덧붙여 있다. 지병이 있었다는 건 사실일 것이다. 다만 고인은 2020년 웹툰 전문 매체 ‘웹툰가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집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지만, 사실 날이 갈수록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지네요. 앞으로 운동을 조금 더 열심히 해볼까 합니다.” 회당 엄청난 분량과 높은 작화 퀄리티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말했다. “아직 제 작품이 퀄리티가 높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대답하기 쉽지 않네요. (중략) 앞으로 좀 더 열심히 작업하여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저보다 많이 그리시는 작가님들도 많이 계셔서 제가 그리는 게 많은 분량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컷 수를 맞추면서 그린다기보다는 한 화 안에서 전달하고 싶은 연출들을 넣는 것뿐이거든요. 제가 아직 미숙해서 분량이 가끔씩 들쑥날쑥한 것 같습니다.” 쉬어가는 장면 하나 없이 주인공인 성진우와 설계자의 공방이 숨 막히게 연출된 <나혼렙> 127화는 무려 99컷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성락 작가 본인의 말대로 분량이 들쑥날쑥하다면 이처럼 한 회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분량이 종종 나왔기 때문이다. 국내외 독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작화의 수준까지 고려하면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고인이 과로로 쓰러졌다는 뜻은 아니다. 강한 노동량과의 연관성을 배제한 채 지병이라는 한마디로 사인을 암시하고 설명하는 게 잘못됐다는 뜻이다. 그것이 결국 개인의 문제로 소급한다는 점에서.

고 장성락 작가가 2018년 3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한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은 다수의 글로벌 플랫폼에 공개된 데 이어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  해당 웹툰 캡처

고 장성락 작가가 2018년 3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한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은 다수의 글로벌 플랫폼에 공개된 데 이어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 해당 웹툰 캡처

세계적으로 인기 끄는 한국 웹툰
회차당 100컷에 육박하는 분량에
요구되는 작화 수준도 점차 상승
작가들의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

과연 장성락 작가의 사례를 슬프지만 급작스럽고 우연한 비극으로만 받아들여도 될까. <나혼렙>의 연재처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측은 “전 세계에 K웹툰 열풍을 불러일으킨 작가의 갑작스러운 비보가 안타깝다”고 밝혔다. 맞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그 K웹툰 열풍과 고인의 과로 사이의 인과에 대한 이야기는 빠졌다. <나혼렙>의 해외 시장에서의 인기는 소위 블록버스터 웹툰이라 불리는 특유의 작화 및 연출 스케일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혼렙>의 레드아이스 스튜디오가 대표적이기도 하지만, <나혼렙>처럼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블코믹스들은 스튜디오 안에서 원작 선택을 비롯한 기획부터 연출, 작화, 배경 작업, 채색, 편집 등 각 과정마다 전문 인력들이 협업해 하나의 공정(工程)을 이룬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나혼렙>이나 지난 5월 가수 아이유를 모델로 쓰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2022 슈퍼 웹툰 프로젝트’ 세 번째 라인업인 <도굴왕>, 현재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인 <나 혼자만 만렙 뉴비>처럼 스케일이 크고 작화가 화려한 블록버스터형 웹툰이 등장해 시장을 점유할 수 있게 되었다. 김민태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 교수는 만화 웹툰 비평지 ‘지금, 만화’ 기고에서 “스튜디오 웹툰 제작 시스템은 문제로 삼기보다 웹툰 블록버스터 작품을 위한 인프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밝힌 바 있다. 기획과 협업을 통한 스튜디오 제작 방식은 분명 창작자 혼자는 시도할 수 없는 수준의 분량과 퀄리티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지만 또한 혼자라면 미처 생각지도 못할 목표치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레드아이스를 비롯한 주요 웹툰 스튜디오들이 노동 착취를 했거나 악의 축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작가의 노동 환경과 강도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진 채 K웹툰의 글로벌 진출이나 블록버스터 웹툰의 효용에 대한 이야기만이 웹툰 산업 담론의 중핵을 이뤘다는 게 문제다. 스튜디오 소속은 아니지만 역시 국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끄는 네이버웹툰 <여신강림>의 야옹이 작가는 지난 4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일주일에 이틀 동안 잠을 못 자고 2.0이었던 시력이 0.1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형의 그림체가 야옹이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지만 메이크업이 중요 소재인 작품답게 각 인물의 얼굴 톤을 비롯해 높은 채도와 다양한 톤으로 구성한 컬러는 스마트폰 디바이스에 거의 최적화된 수준이다. 원 톤, 투 톤, 스리 톤마다 배가되는 채색의 난이도를 아는 이들이라면 화면을 꽉 채운 주인공 임주경이나 이수호의 버스트숏을 볼 때마다 예쁘다는 생각보다 ‘노가다’라는 생각부터 들 것이다. 심지어 <여신강림>의 컷 수는 매 회 평균적으로 90컷 이상이다. 그걸 5년째 매주 그리는 중이다. 하지만 <라디오스타>도 언론도 이런 문제엔 크게 관심이 없다. 마감의 고통과 건강에 대한 내용은 스치듯 지나갈 뿐, 100개국에 연재하며 누리는 인기와 버는 액수, 성형 유무 같은 이야기만이 방송 후에도 기사화돼 반복될 뿐이다. 인기 웹툰 작가가 누리는 것만이 이야기될수록, 그들이 창작노동자로서 감당 중인 업무 강도는 인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표준이 된다.

아무리 ‘자율적인 선택’이라지만
‘자기착취’로 이어지는 시장 구조
성장에만 치우친 시절 뒤로 하고
‘창작자 건강권’ 진지하게 논의를

<나 혼자만 레벨업> 제작사인 레드아이스 스튜디오는 지난 25일 “고인께서는 평소 지병이 있었고, 이로 인해 생긴 뇌출혈로 타계하셨습니다”라며 장성락 작가의 부고를 띄웠다.

<나 혼자만 레벨업> 제작사인 레드아이스 스튜디오는 지난 25일 “고인께서는 평소 지병이 있었고, 이로 인해 생긴 뇌출혈로 타계하셨습니다”라며 장성락 작가의 부고를 띄웠다.

회당 컷 수를 비롯해 웹툰 작가들의 노동량은 각 작가들의 자율적인 선택이며, 건강은 알아서 잘 스스로 관리하면 될 일이라 말하는 게 무의미한 건 그래서다. 우선 앞서 말했듯, 인기 작품은 그 자체로 업계의 표준이 되어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인기를 얻기 위한 경쟁 안에서 웹툰의 분량은 꾸준히 늘어났을 뿐 줄어든 경우는 없다. 네이버웹툰 초기를 대표하는 작품인 <노블레스>는 데뷔 당시에도 컬러 웹툰을 대표하는 그림체와 채색으로 유명했지만 그땐 50컷이 채 되지 않던 작품이 연재 후반엔 80컷 이상으로 늘어났다. 특히 <여신강림>처럼 스마트폰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작품들은 출판만화처럼 컷과 컷의 연계를 통한 연출보단 화면을 꽉 채우는 컷을 엄청난 분량으로 채워 넣어 터치로 빠르게 컷을 넘기는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포만감을 준다. 현재 네이버웹툰 토요일 순위 1위인 스튜디오 389의 <99강화나무몽둥이>의 경우 스마트폰 화면 기준 1~1.5배 정도 되는 크기의 컷을 매회 거의 150컷에 가깝게 채워 넣고 있다. 그럼 이젠 몇 컷이 독자를 만족시키는 ‘적당한’ 분량이 될까. 자율 선택이 무의미한 또 다른 이유는, 작가들은 상당수 스스로의 건강과 정신을 갈아 넣어 작품을 만드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도트 캐릭터부터 3D 캐릭터까지 다양한 장르의 게임 캐릭터를 역시 다양한 화풍으로 그려냈던 네이버웹툰 <전자오락수호대>의 가스파드 작가는 연재 당시 “그림체가 익숙해지면서 무의식중에도 남는 시간엔 퀄리티를 올리게 됐는데, 지금은 이게 기본값이 되어버려서 그걸 유지하기 힘들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장 앞서의 인터뷰에서 장성락 작가가 더 열심히 하겠다 답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손이 빨라지면 쉬는 시간을 늘리기보단 작업량을 늘리는 게 작가란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자발적 착취라기보다는 창작자 특유의 태도에 가깝지만, 특별한 제동이 없다면 결과적인 자기 착취가 되기 십상이다. 과연 이것을 자기 관리의 문제로 접근해 알아서 책임지라 하는 게 온당할까.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웹툰에 대한 주류 담론은 지난 십수년 동안 몇 번의 분기점을 거쳤다. 초기 웹툰 담론이 <마음의 소리>를 비롯한 개그만화를 마이너한 인터넷 문화로 접근했다면, 2010년대 초반부터는 출판만화의 문법과는 다른 웹툰 고유의 미디어 맥락과 장르 다양성에 천착했으며, 유료 시장이 정착되고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이 본격화되면서는 K컬처 산업의 역군으로 찬양하고 인기 웹툰들로부터 성공 공식을 역산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웹툰이 무슨 만화냐는 취급을 받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이러한 양적, 질적 성장에 동반되는 부작용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주요 포털에서 연재하면 연평균 몇억을 번다는 기사는 나오지만 인기작을 제외한 다수 작가의 소득과 생활 수준을 가늠할 중위소득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창작물의 참신함과 재미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고뇌에 감탄하지만, 그것을 위해 손목과 허리는 어떻게 고갈되는지 육체적 영역의 고통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지난 십여년이 성장에 집중해야 했던 시기라 해도 이제는 그 성장을 위해 그동안 망가진 손목과 면역력과 잃어버린 수면 시간과 인간적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됐다. 아니, 사실은 늦었다. 누군가의 부고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늦을 수밖에 없다. 단지 더 늦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고 장성락 작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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