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공정’과 안티페미니즘은 공생 관계”···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다시 쓰는 ‘공정’

오경민 기자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9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에서 ‘미래완료-공정의 현재와 미래적 재구성’ 포럼을 열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9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에서 ‘미래완료-공정의 현재와 미래적 재구성’ 포럼을 열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지난 3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자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지난 6월, 연세대 학생 3명이 학내에서 집회를 한 청소·경비노동자들을 고소했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주최한 ‘미래 완료-공정의 현재와 미래적 재구성’ 포럼이 29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에서 열렸다. 동료 시민의 권리 보장을 위해 약간의 불편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공정’ 담론에 주목한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우리 시대의 ‘공정’이 보편적·중립적이거나 옳은 가치가 아니라 혐오와 폭력을 손쉽게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공정의 의미를 해체해 정의와 재분배의 관점에서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 이후의 세계>를 쓴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학교 교수는 “공정담론과 안티페미니즘이 서로를 확장시키고 있으며, 공정담론이라는 숙주에 여성혐오, 장애인혐오, 퀴어 차별 등이 올라타 증식하고 있다”면서 오늘날 공정의 개념을 비판했다. 이 시대 한국 사회의 공정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국민국가라는 기존의 억압적 지배구조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식민담론’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개인이 스스로를 인적 자원으로 간주하게 하고, 언제나 자기 계발에 매진하며 시장 가치를 끊임없이 재조정하게 하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감각이나 연대 의식이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김정 교수는 “이들의 공정담론에서는 소수자들이 구조적 차별을 받은 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에서 낙오한 패배자인 것처럼 그려진다. 노력하지 않았거나 능력이 없는 이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그런데 페미니즘은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보증을 해준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불공정’의 최전선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 교수는 “공정담론에 가려진, 공정담론 바깥에 놓인 배제된 삶들을 듣고 여기에 응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며 페미니스트 연구자 사라 아메드가 제시한 ‘페미니스트적 듣기’를 강조했다. 김정 교수는 이것을 서로에게 전달해 공동체를 만들고, 풀뿌리들의 돌봄과 연대를 지키고, 공정담론이 두려워하는 페미니스트 정치를 흔들림 없이 지속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애령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연구교수는 ‘공정이 곧 정의’라는 표상에 의문을 제기했다. 공정의 문제가 단지 정치권의 개념 왜곡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공정을 해체해서 정의의 관점에서 재조립해야 한다. 공정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제도적이거나 절차적인 공정을 조건으로서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공정이 이토록 중요하게 여겨진 뿌리에는 롤스의 정의론이 있다. 롤스는 ‘공정성’을 정의의 열쇠처럼 제안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공정은 목적이 아니라 절차이며, 정의가 아니다. 공정한 분배만으로는 구조적 부정의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공정성을 뛰어넘는 가치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정의롭기 위해서는 불공정까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몇 가지 주장을 인용했다. 먼저 “권리는 누군가 받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것이 빼앗기는 ‘사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관계’ ”라고 했다. 소위 여성의 권리를 증진하면 남성의 몫을 빼앗기는, 권리를 파이 싸움으로 보는 통념을 뒤집은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회의 배분 역시 단순히 시험을 치를 기회를 ‘소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치를 ‘역량을 갖추게’ 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매년 그해 중요하고 긴급한 페미니즘 의제를 제시하는 ‘쟁점들’ 섹션과 함께 포럼을 진행한다.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에서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래완료-공정의 현재와 미래적 재구성’ 포럼에서 김정희원 애리조나국립대학교 교수가 화상으로 발언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에서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래완료-공정의 현재와 미래적 재구성’ 포럼에서 김정희원 애리조나국립대학교 교수가 화상으로 발언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에서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래완료-공정의 현재와 미래적 재구성’ 포럼에서 김애령 이화여대 교수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에서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래완료-공정의 현재와 미래적 재구성’ 포럼에서 김애령 이화여대 교수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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