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사진은 사리, 법문”···관조스님 유고 사진집 ‘관조’ 출간

도재기 기자

유작 20만점 중 278점 수록

상좌 승원스님, “이제야 마음의 짐 내려”

24일 백련사서 16주기 다례재

관스님의 대표적 사진작품인 꽃살문을 담은 ‘문살’(내소사)과 유고 사진집 ‘관조’. 불광출판사 제공

관스님의 대표적 사진작품인 꽃살문을 담은 ‘문살’(내소사)과 유고 사진집 ‘관조’. 불광출판사 제공

“삼라만상이 본래 부처이니(森羅萬象天眞同·삼라만상천진동)/ 찰나의 깨달음을 한 줄기 빛으로 담았네(念念菩提影寫中·염념보리영사중)/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라(莫問自我何處去·막문자아하처거)/ 동서남북(본래 그 자리)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水北山南旣靡風·수북산남기미풍).”

수행자이자 사진가로 큰 족적을 남긴 관조 스님(1943~2006)이 남긴 열반송이다. “찰나의 깨달음을 한 줄기 빛”으로 담아내는 사진작업이 관조 스님에게는 곧 치열한 구도, 수행의 길이었다. 유작으로 남은 사진들은 곧 스님의 법문이자 수행 결정체인 사리다.

불교는 물론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한 사진으로 이름난 관조 스님의 유고 사진집 <관조(觀照)>가 불광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스님의 16주기를 맞아 상좌인 승원 스님(가평 백련사 주지) 등 관조 스님 문도회가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좋은 작품집”을 펴낸 것이다. 승원 스님은 11일 “제가 좋은 작품집을 꼭 내드리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러질 못해 그동안 가을만 되면 늘 마음이 무겁고 죄스러웠다”며 “이제 <관조>를 출간하니 16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 마음의 빚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승원 스님과 문도회는 오는 24일 백련사에서 관조 스님 부도와 비 제막식·사진집을 봉헌하는 16주기 다례재를 거행한다.

관조스님의 ‘스님’. 불광출판사 제공

관조스님의 ‘스님’. 불광출판사 제공

‘범어사 기와’. 불광출판사 제공

‘범어사 기와’. 불광출판사 제공

‘나무 봄’. 불광출판사 제공

‘나무 봄’. 불광출판사 제공

‘운문사 공양간’. 불광출판사 제공

‘운문사 공양간’. 불광출판사 제공

<관조>는 관조 스님이 1970년대 중반부터 30여년 촬영해온 사진 20만여점 가운데 엄선한 278점을 수록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명한 꽃살문 작품을 비롯해 불상과 탱화·닫집·단청은 물론 탑과 부도·석등·범종·대웅전 등 전각들, 수행자들의 공간인 승방과 공양간, 수계식과 다비식 등 각종 의식이 담겼다. 폐사지 등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 안팎의 풍경 등도 스님의 특별한 철학과 미감으로 담겼다. 특히 누구의 눈길도 받지 않던 무심한 돌계단,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아로새겨진 기둥, 기와 등도 스님에 의해 제 모습, 제 가치를 부여받는다.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부처 아닌 것이 없다”고 강조한 스님의 생전 의지를 구현한 사진집인 셈이다.

관조 스님의 사진은 선(禪)의 경지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필름카메라를 고수한 스님은 사진 촬영 때 자연의 빛을 강조해 필터나 인공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또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아웃포커싱된 것도 드물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대상과 솔직하게 대면하며 보는 이와의 교감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다. 현란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꾸밈없이 솔직하고 담백한 사진은 오히려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고 긴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스님은 생전에 “사진을 찍으면서 나 자신이 정화되고,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이 정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가 준초이는 “사진으로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수행자였다”면서 “인간 관조의 언어와 대자연의 언어가 섞여 있는 작품 속에서 관조 스님이 자연과 교우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이라도 하자”고 권한다.

관조 스님의 사진은 작품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이제는 사라졌거나 시나브로 없어지고 있는 것들을 촬영했다는 점에서 현대불교사와 한국 전통문화 기록 자료로서도 귀중하다. 관조 스님은 1978년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해 1980년 첫 전시와 함께 작품집 <승가 1>을 펴냈다. 이후 작품집 10여권을 내고, 국립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전시장에서 수십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생전의 관조 스님. 경향신문 자료사진

생전의 관조 스님.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고 사진집 ‘관조’를 펴낸 맏상좌 승원 스님.

유고 사진집 ‘관조’를 펴낸 맏상좌 승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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