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의 <암각화 또는 사진> 전람회 포스터 /뮤지엄한미 제공

강운구의 <암각화 또는 사진> 전람회 포스터 /뮤지엄한미 제공

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 벌을 받는다는 성경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호와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마련해두셨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소설의 원조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는 큰 물고기를 상상의 바다 괴물인 ‘리바이어던’으로 적는다. “달아나자, 달아나자! 저건 그 위대한 예언자 모세가 인내심 강한 욥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묘사한 리바이어던이 분명하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도 마찬가지였다. “그 거대한 리바이어던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바다를 끓어오르는 냄비처럼 만들었다.”

반구대, 한국, 2019

반구대, 한국, 2019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수록된 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경을 비롯해 80개에 달하는 문서에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는 리바이어던. 실재하는 생명체이지만 거대한 크기에 당혹스러웠던 작가들은 고래를 상상의 바다 괴물로 종이에 적는다. 사진 프레임에 가두어도 고래의 웅장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카자흐스탄 출신 나탈리 카르푸센코, 미국 사진가 브라이언 오스틴, 그리고 한국의 장남원 작가가 담은 고래의 거대한 형상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고래는 왜 서 있을까?”

강운구 작가에게 경이로웠던 점은 고래의 크기가 아니라 자세였다. 50여 년 전에 발견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는 수직으로 서 있었다. 통탄할 노릇이었다. 그이 빼놓고는 아무도 고래가 서 있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던 참이다. 그가 아는 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래? 난 (암각화를) 보고도 고래가 서 있는 줄 몰랐네.” 고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궁금해하는 이가 직접 답을 찾을 수밖에. 2017년 그는 국경을 넘는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등 8개국에 남아있는 수많은 암각화를 직접 조사하기로 작정했다.

내년 3월17일까지 뮤지엄한미에서 열리는 강운구의 사진전 <암각화 또는 사진>은 아득히 먼 시대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 여행이다. 구석기시대 오리냐크기 이후의 시기인데, ‘순록 시대’라고도 한다. 빙하기가 끝난 지구에 순록이 들판을 누비던 시대라는 말이다. 시간의 아득함 만큼이나 시대의 거울은 닳고 뒤틀리고 깨지고 금이 가 버렸다. 고래가 서 있는 까닭을 밝혀내기 어려운 이유다.

암각화를 찾아다니는 일 자체도 고역이었다. 발톱이 빠지고, 국경에서 러시아 군인에게 체포되기도 했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그만 몰랐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도 아닌 변방의 암각화를 찾아다니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점이 하나 있다. 강운구 작가의 암각화에 대한 생각과 라스코 동굴벽화에 대해 분석한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의 사유에 공통분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타유는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워크룸프레스)에 다음과 같이 썼다. “다른 무엇보다도 오직 놀이만이, 이러한 초보적인 그림들을 그리도록 할 수 있었다.” 사진작가 강운구는 이렇게 쓴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무리(부족)의 공적인 제의성보다는 단순히 새기는 재미나 관심사를 그리는 사적인 것들이 더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할 것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린 이유를 따져보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 있다. 동물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인간의 특성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도구에서 찾는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도구적 관점에서 해석된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반면 인간의 학명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규정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성의 정수는 노는 것이다. 호모 루덴스는 재미가 있어서 그림을 그릴 뿐이다. 그가 속한 부족의 안녕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예술의 탄생을 설명하자면 호모 루덴스라는 학명이 적절하겠다. 예술은 자기 만족적인 행위다. 바타유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은 ‘주권(主權)적’이다. 부와 권세와 같은 목적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 이를 우리는 예술가라 부르지 않는다. 선사시대 예술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냥의 성공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짐승을 많이 잡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리는 데 정성을 쏟기보다는 사냥 도구를 개발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짐승을 그리는 이유는 그림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의 이유는 이토록 단순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선사시대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21세기의 사진가 강운구 역시 고래를 사냥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작가가 도달하는 지점은 다큐멘터리를 넘어서 예술에 다가간다. “유용성과는 반대되는 가치를 지니는 활동”이 예술이다. 강 작가는 “생존에 목적을 둔 세계에 대한 항의”로서 셔터를 누른다.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한 노인이 “여태 뭘 하다가 이제야 왔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먹고 살기 바빴었다.”

반구대, 한국, 2019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반구대, 한국, 2019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한국의 반구대 꼭대기에는 사람이 등장한다. 새끼 고래를 등에 업고 가는 귀신고래 옆에서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다. 강운구 작가가 붙인 애칭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얼 그리 고민하는 걸까? 새끼가 딸린 어미 고래를 잡아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참일까? 죽이느냐 살리느냐, 이것이 문제인 시대였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사냥의 성패에 달려 있기에 우리는 선사시대의 피사체가 주로 짐승이었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이유로 그림을 설명할 수는 없다.

고대 시대 사냥꾼과 짐승의 관계는 지금과는 달랐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시베리아의 사냥 제의들을 연구한 에블린 로트팔크에 따르면 선사의 사냥꾼들은 동물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겼다. 짐승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은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능력을 과장해 호모 파베르라는 학명으로 선사인들을 동물과 구별 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선사인들에게 도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냥의 성공은 사냥감인 동물이 자신을 죽일 살해자의 뜻에 동의했을 때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숲 속에 있던 곰이 사냥꾼 앞에 나타나는 것은 그에게 잡히기 위해서이고, 계절마다 같은 들판을 지나는 순록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짐승과 인간의 공모관계는 현대인의 감수성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과 동물이 혼동된 시대였으니까. 원숭이 같은 꼬리를 달고 새의 머리를 한 인간이 암각화에 등장했던 시대였으니까.

아르파우젠, 카자흐스탄, 2018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아르파우젠, 카자흐스탄, 2018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탐블르이, 카자흐스탄, 2017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탐블르이, 카자흐스탄, 2017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빛과 사물의 관계도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을 것이다. 강운구 작가는 사진술의 고갱이인 빛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다. “태초에 빛은 있었으나 사진술은 없었다.” 빛으로 그린 그림이 사진술인데, 다른 기술로 빛을 그릴 수는 없을까? 작가는 선사시대에 지금과는 다른 사진술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암각화를 바로 그것이라고? 선사시대 생활상을 암각화가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강운구 사진론>(열화당)을 읽으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그의 사진처럼 현란한 수사(修辭)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암각화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다시 적어본다. <암각화 또는 사진>이라는 제목 또한 이런 뜻을 품고 있으리라.

암각화가 어째서 빛으로 그린 그림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선사시대 사람들이 원시적이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짐승의 가죽 원피스를 입고 괴성을 지르며 고기를 뜯어 먹는 동물에 가까운 이미지들 말이다. 하지만 온전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그 시대 사람들이 원시인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들은 현대인보다 더 뛰어난 감각과 지각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선사시대 사람들은 전기로 만든 빛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태양 빛에 대한 이해는 현대인보다 뛰어났을 것이다. 특정한 계절과 시간에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경이로운 암각화들을 목격한 학자들은 선사인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시베리아의 한 암각화는 백야의 저녁 빛에만, 강변의 한 암각화는 강물에 비친 달빛이 닿아야만 속살을 드러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도 마찬가지. 기울어지는 태양 빛만이 바위에서 유영하는 고래의 형상을 드러낸다.

강운구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진술 말고도 빛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40년 전 찍은 <경주 남산>의 돌부처가 준 깨달음이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일 년 중 낮이 제일 짧은 동지(冬至)의 태양 빛을 받고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다. 신라 시대 예술가들이 제작한 불상은 화강암을 쪼아내어 형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암각화의 계보를 잇는다. 강운구의 <경주 남산>을 본 향토사학자 윤경렬은 이렇게 말했다. “바른 계절, 바른 시간을 잡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기다렸을까.” 울산 반구대의 바른 시간은 신시(申時, 오후 3시~오후 5시)이다. 음각으로 새긴 어미 귀신고래 등 위에 올라탄 새끼 고래의 형체가 돋을새김하는 시간은 인간이 아니라 태양이 정하는 것이다.

사르미시사이, 우즈베키스탄, 2018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사르미시사이, 우즈베키스탄, 2018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사르미시사이, 우즈베키스탄, 2018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사르미시사이, 우즈베키스탄, 2018 (C)강운구, 뮤지엄한미 제공

머리를 하늘로 향한 고래의 포즈도 자연의 법칙을 따른 것일까? 사진가 강운구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영원히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타인의 삶을 상상해 볼 수 밖에. 작가는 말한다. 고래의 자세는 삶과 죽음을 나타냈을 것이라고. 고래 사냥에 성공한 배를 탄 사냥꾼을 묘사한 암각화를 보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포경선 옆에 포획된 고래의 자세는 수평이었다. 머리에서 물을 내뿜는 긴수염고래와 흰수염고래, 향유고래 등 나머지 고래들은 하늘로 향해 헤엄치고 있다.

생명은 하늘로 솟구치는 수직의 이미지이며, 죽음은 모래 바람처럼 흩어져 버리는 수평의 모습이다. 태양 빛을 받으며 물 밖으로 뛰어오른 거대한 고래 모습을 보는 인간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게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몸집을 가진 생명체가 하늘을 날고 있다니! 사진은 이 순간을 포착해 고래를 영원히 날게 할 수 있다. 암각화도 마찬가지. 그래서 강운구 작가는 자기 작품에 <암각화 또는 사진>이라는 제목을 단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사진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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