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면서도 못다 한 책임 때문에 쉴 수 없던 한 인간의 모습
세 걸음, 단 세 걸음이 부족했다. 지난 7일 방영한 KBS2 <고려거란전쟁> 16화에서 도순검사 양규(지승현)는 거란군의 수장 야율융서(김혁)를 활로 맞힐 수 있는 사정거리로부터 단 열 걸음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 군사의 화살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한 걸음씩 좁혀갔다. 몸에 꽂히는 화살 하나하나가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상을 입히지만, 피칠갑 된 양규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카메라는 그 각각의 화살이 아닌 그동안 또한 여전히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과 피로의 무게와 싸우는 모습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세 걸음, 단 세 걸음을 남기고 그는 멈춰 선다. 비로소 수십 개의 화살이 온몸에 꽂혀 선 채로 죽음을 맞이한 그의 전신이 비치지만, 그를 멈춰 세운 건 각각의 화살이 아니라 차라리 거란의 고려 2차 침공과 맞서 싸운 내내 누적된 혹사의 여파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양규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흥화진 전투를 그린 <고려거란전쟁> 6화에서 수일 밤낮을 자지 않고 성을 방어하던 그가 피로를 참지 못하고 잠시 선 채 잠드는 장면은 방패에 잔뜩 꽂힌 거란군의 화살과 눈 감고 선 양규의 모습을 절묘하게 겹쳐 16화에서 그려진 그의 최후를 예시한다. 비통한 죽음과 비로소 얻은 휴식 사이. 영웅적이면서 비극적인, 아니 영웅적이기에 비극적인 그의 최후에 시청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양규를 연기한 배우 지승현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과 애정 속에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이다. 이미 지난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해당 역할로 남자 인기상과 우수상을 타기도 했지만, 만약 시상식 전에 16화가 방영했더라면 ‘어차피 대상은 최수종’이라는 분위기 속에서도 지승현 역시 어느 정도 대상 후보로 거론될 수 있을 법하다. 그만큼 양규의 마지막 전투 장면은 압도적이다.
김한솔 감독이 자신의 모든 재능과 양규라는 실존인물에 대한 사랑을 바쳐 찍은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고려거란전쟁> 16화의 전투 장면은 그것만으로도 분석할 가치가 있다. 특히 양규와 그의 짝패 귀주별장 김숙흥(주연우)이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수없이 많은 작은 철편으로 이어붙인 그들의 갑옷이 적들의 칼을 튕겨내는 모습은 마치 영화 <더 배트맨>에서 배트맨이 기관총을 그대로 맞아가며 전진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배우들이 소화한 액션 자체의 완성도도 높지만, 수많은 사극에서 그저 시대를 드러내는 장식품처럼 사용되던 갑옷을 마치 배트맨 슈트와 같은 그 당시의 하이테크 병기로 묘사하며 자칫 허무맹랑하거나 관념적으로 그려질 수 있던 양규와 김숙흥의 일당백의 용력을 몸과 몸이 부딪치는 피와 땀의 전장 안에 효과적으로 기입한다. 반대로 그렇기에 하나하나의 공격에 철편이 조금씩 떨어져나가며 그사이에 적의 칼날이 비집고 들어오는 모습은 병력 차이에서 오는 중과부적의 위기감 역시 극대화한다. 두고두고 한국 사극의 레퍼런스로 남을 법한 이 장면은, 하지만 앞서 말했듯 양규라는 인물에 누적된 서사를 폭발시키고 종결하는 것이기에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드라마에서도 인용한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 달 사이 일곱 번 싸워 수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3만여명의 백성을 되찾았다’는 고려사 기록대로 이미 그 자체로 위대한 업적 때문이지만, 또한 업적을 동시대의 시청자들 앞에 어떻게 재현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줄 역사의 기록이 피와 살로 이뤄진 인간의 형상으로 경험되기 위해선 과거의 그들과 지금의 우리 사이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지승현 스스로도 양규 장군을 잘 몰라 부끄럽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양규라는 인물 자체가 업적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극에서 역사적 존재는 동시대의 요청에 맞춰 새롭게 발굴되고 발견되며 무엇보다 발명된다.
거란군의 왕을 활로 맞힐 수 있는 사정거리로부터 열 걸음 부족한 상황
도순검사 양규는 화살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한 걸음씩 좁혀갔다
카메라는 화살보다 그가 책임과 피로의 무게와 싸우는 모습에 집중한다
나라의 근본은 국민, 국가는 근본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대전제 앞에서
전란의 영웅이란 수치심을 아는 존재여야만 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하면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의 공적을 부풀렸다거나 역사 왜곡을 벌였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강감찬(최수종)이나 현종(김동준)에 대한 재해석과 비교해 양규는 충분히 상상 가능한 수준에서 캐릭터가 형성된 편이다. 다만 그의 실제 공적에서 짐작 가능한 여러 맥락 중 무엇을 부각해 극적으로 만드느냐는 과정에선 다분히 동시대와의 접합이 불가피하다는 것뿐이다. 가령 그의 최후를 훨씬 비장하게 만든 마지막 걸음을 떠올려보라. 적국의 왕을 쏘아 맞히기 위해 부족한 열 걸음을 걷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온전히 창작이다. 그저 영화 <300>에서 레오니다스 왕(제라드 버틀러)이 전투의 마지막 순간 창을 던지는 것처럼 인상적인 순간을 한국 사극에도 담아보려는 실험적인 연출이었을까. 실제 역사에서 그가 게릴라전을 펼치며 거란군에 붙잡힌 고려 백성들을 구출해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로부터 군인으로서의 양규에게 백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유추 및 부각할 수 있다. 드라마 속 양규는 김숙흥과 대화하며 이렇게 말한다. “지난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이번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도 적을 섬멸하지 못한다면 놈들이 또다시 이 고려를 침범해올 거다. 그래서 싸우는 거다. 여기서 끝내려고.” 야율융서를 활로 쏴 죽이려는 그의 처절한 몸부림은 이 한 발로 전쟁의 불씨를 아예 꺼뜨려버리겠다는 일관된 의지 표명이다. 앞서 그의 누적된 피로에 대해 말했지만, 그는 애초에 거란의 2차 침공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전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역사엔 기록되지 않았지만 있을 법도 한 고려 백성을 이용한 거란군의 인간 방패 전술에 양규가 눈물을 흘리며 공격을 명하는 장면은 노골적일 정도로 그가 가지고 있는 부채감의 형태를 구체화한다. 그는 매 순간 이미 짓눌린 상태로 싸워나간다. 그리고 세 걸음이 부족했다.
그것이 절대 양규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래서 양규의 부족한 세 걸음은 거란의 3차 침공을 예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조금 과장해서 앞으로 <고려거란전쟁>에서 현종이 정치적 수완으로 고려의 국력을 키우고 강감찬이 귀주대첩에서 기록할 위대한 승리는 결국 양규가 미처 걷지 못한 세 걸음을 남은 사람들이 뒤이어 채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오롯이 강감찬, 현종 같은 거인들의 영웅적 행위로만 가능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위인 중심의 거대 서사에 가까운 <고려거란전쟁>이 방영 시기가 일부 겹치고 역시 외세의 침략에 의한 전란을 좀 더 미시적 차원에서 그려낸 MBC 사극 <연인>과 비교해 민중의 역량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대신 양규라는 인물의 부채감을 통해 평화는 민중이 누려야 할 권리이며 국가는 그 권리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고려거란전쟁>은 영웅 서사의 위험성을 우회한다. 나라의 근본은 국민이고, 왕과 장수를 비롯한 국가의 시스템이란 그 근본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대전제 앞에서 전란의 영웅이란 수치심을 아는 존재여야만 한다. 양규의 최후가 눈물샘을 자극한다면,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장군이 죽어서가 아니라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못다 한 책임 때문에 최후의 최후까지 쉴 수 없던 한 인간을 그려내서다. 초인적인 전공을 세웠지만 남은 건 영광이 아닌 미처 채우지 못한 세 걸음의 원통함이다. 그 원통함을 아는 이가 그 원통함을 남기지 않으려다 죽었다. 수치심과 책임을 아는 사람이 언제나 스스로를 짓누르다 먼저 떠난다. 그것이 우리를 슬프고 공허하게 한다. 다행히 드라마에선 강감찬과 현종이 책임의 바통을 건네받았다. 과연 이후의 이야기는 이 공허를 채우는 희망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사랑받았던 드라마 속 한 인물을 위해서도, 지금 이곳 마음이 허전한 우리를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