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의 프로야구 온라인 중계
아, 원고 쓰기 싫다. 격주로 돌아오는 마감일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번엔 더더욱 의욕이 없다. 곧 프로야구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응원하는 팀인 KIA 타이거즈의 4번 타자이자 주장 나성범의 햄스트링 부상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칼럼 마감을 포함해 이번주 일정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주말에 맥주와 함께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개막전을 보자는 나의 계획엔 이미 메울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안다. 어떠한 변수도 없이 최상의 전력으로 이상적인 시즌을 보내는 것은 그저 개막 전 팬들의 머릿속에서만 잠시 벌어지는 춘몽이란 걸.
한 시즌 144경기인 프로야구를 수년 이상 경험해본 야구팬들은 야구가 결코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족속이다. 그러니 괜찮다. 이기든 지든, 생중계를 보고 다시 경기 하이라이트를 복기하며 열광하거나 욕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다음 경기가 또 기다리니까. 그런데 이젠 그조차 쉽지 않을지 모른다. 다들 자기 팀에 대한 일장춘몽을 꾸는 3월 중순이지만, 올해부터 3년간 프로야구 온라인 중계권을 독점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의 지난 2주간 시범경기 중계 및 하이라이트 편집은 춘몽이 아닌 악몽에 가까웠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미 수차례 팬들과 언론을 통해 지적된 사안들을 건조하게 사실만 정리해도 칼럼 분량을 다 채울 정도다. 등번호와 타순에 대한 이해 없이 ‘22번 타자 채은성’ 같은 자막을 단 건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경기 후 하이라이트 업데이트는 너무 늦고. 그나마도 경기 흐름을 읽을 수도 즐길 수도 없는 수준의 편집이었다. 심지어 예능이나 드라마에 맞춰진 사용자 환경으로 매일 5경기씩 144번 총 720번(포스트시즌 제외) 벌어질 경기들을 팀별 날짜별이 아닌 프로야구 1화, 2화로 정렬해 원하는 경기를 찾기도 어려웠다. 자기 팀의 답 없는 경기력과 감독들의 이해할 수 없는 작전에도 익숙했던 야구팬들조차 이런 총체적 난국은 처음 경험해봤다.
3년간 온라인 중계 독점한 티빙
타순 기본상식 몰라 자막 실수
하이라이트 업데이트 너무 늦고
원하는 경기도 찾기 어렵게 배열
저품질 서비스에 소비자는 분통
예고된 참사 사전 검토 못한 KBO
1350억 중계권료 앞에 팬들 소외
시장 신봉자들이 빚은 씁쓸한 장면
당연히 팬들은 반발했고, 티빙은 고개를 숙였다. 지난 12일 티빙 측은 ‘K-볼’ 서비스 설명회를 열어 논란에 대한 송구함을 전하는 동시에 피드백에 대한 지속적인 반영과 개막 이후 보여줄 차별화된 경험에 대해 약속했다. 과연 개막 이후 보여줄 서비스가 뭔진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설명회 이후 하이라이트 편집은 눈에 띄게 나아졌고, 경기도 팀별·날짜별로 정리되었다. 그거면 된 걸까. 기존 사업자이자 무료로 서비스되던 네이버 중계와 달리 월 5500원의 유료 서비스에 어울리는 질이냐는 온당한 질문을 하려는 건 아니다. 분명 티빙은 성난 소비자의 민심에 꽤 빨리 반응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다. 야구 온라인 중계라는 중차대하고 자신의 삶에 밀착한 이슈에서조차 야구팬은 오직 완성된 저품질의 상품에 대한 성난 소비자로서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생각지도 못한 자막 오류 등을 보며 한국야구위원회(KBO)도 난감해 한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SBS 유튜브 채널 <야구에 산다>에서 정우영 아나운서가 지적했듯 과거 티빙의 프로야구 중계와 사용자 환경을 봤다면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KBO가 충분히 검토하고 예고된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허구연 KBO 총재는 프로야구의 젊은 팬 유입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첫걸음으로 ‘팬 퍼스트’를 말해왔지만, 정작 그 팬들은 이토록 중요한 결정으로부터 소외됐다.
물론 티빙은 정당한 입찰에서 기존 사업자였던 네이버 주축의 포털 컨소시엄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해 권리를 샀다. 3년 총액 1350억원.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써 시장 경쟁에서 승리했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선 아무 문제없거나 문제 삼아선 안 되는 일처럼 보인다. 다만 그 많은 액수는, 다시 말해 프로야구 중계의 시장 가치는 어떻게 형성된 걸까. 그저 KBO와 티빙 두 거래 주체 간 수요와 공급의 최적 효율 상태인 걸까.
야구를 소재로 한 최고의 영화 <머니볼>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부단장 피터(조나 힐)는 거액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고민하던 단장 빌리(브래드 피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돈은 상징일 뿐이에요. 거액을 버는 선수는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돈이 말하는 거죠.” 과연 야구의 가치는 뭘까. 공을 던지고 치고 달려서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이 비효율적인 공놀이는 어떻게 가치 있는 활동이 되는가. 홈런의 가치가 그저 어떤 선수의 힘과 비거리로만 환원된다면 그건 숫자에 불과하다. 담장을 넘는 흰 공의 포물선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주자를 남김없이 불러들이며 올라가는 점수에 환호하는 팬들을 통해 비로소 공놀이는 문화이자 콘텐츠가 된다. 어쩌면 프로야구 중계의 시장 가치를 올리는 데 한몫했을 지난해 LG 트윈스의 우승은 그저 그들이 야구라는 종목을 잘해서만이 아니라 그 오랜 시간 무관과 암흑기를 견디며 팀에 대한 충성을 지켜온 팬들의 기다림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내 팀을 사랑하고, 야구를 사랑하고, WBC나 아시안게임에서 참패할 때 화나서 욕하다가도 한국 프로야구 자체를 비하하는 목소리에는 기어코 반박하고 ‘쉴드’를 치며 이 문화의 향유자이자 참여자로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안고 살아가지만, 시장 원리라는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도그마 앞에서 팬은 더없이 무력해진다. 나의 하루를 정리하는 일상의 경험이 바뀔 때조차 그 선택과 결정으로부터 정작 나는 소외되는 것.
티빙의 시범경기 중계와 겹치거나 근접한 3월 초중반 동안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역시 팬들이 여러 중요한 결정으로부터 소외된 경험을 한 건 그래서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가령 지난 4일 KBS는 <전국노래자랑>의 MC 김신영을 하차시키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제작진도 윗선의 통보를 받아 연락할 정도로 절차적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 송해라는 전설적 진행자의 뒤를 이어 젊고 재능 넘치는 여성이 그 유산을 지키고 새롭게 써나가길 기대한 이들의 바람은 시청률 하락이라는 단순명료한 이유 앞에서 재고조차 되지 못했다. 역시 시청률을 이유로 SBS 장수 프로그램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세상에 이런 일이>도 최근 장기 휴방에 돌입한다. 다행히 폐지는 아니지만 올해 초부터 폐지설이 떠돌던 터라 여전히 불안하다. 가장 당황스러운 건 배우 오달수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2> 합류 소식이다. 그에게 성범죄를 당했다는 이들이 등장하자 두루뭉술한 사과문을 쓰고 연기 활동을 잠정 중단했던 그가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다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프로젝트에 참가하지만, 해당 문제에 대해 제작진은 어떠한 해명도 규명도 없다. 장수 프로그램이니 K콘텐츠니 할 땐 문화의 힘과 팬의 저력을 말하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마다 시장은 사무적인 말투로 ‘왜 이러십니까, 손님’이라며 선을 긋는다.
프로야구 팬들이 지금보다 3년 1350억원의 수익을 더 KBO에 안겨준다면, 김신영을 응원하던 이들이 <전국노래자랑> 시청률을 10%로 지켜냈다면, 좋아하는 것을 지키고 싫어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오직 구매력만이 힘이 된다면, 애초에 글로벌 마켓을 염두에 둔 <오징어 게임 2>에 대한 불매운동으론 딱히 무언가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의 신봉자들은 완전 경쟁을 통한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최적의 결과와 효용으로 이끌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야구팬들 앞에 주어진 건 티빙의 실망스러운 유료 서비스다. 이것은 싫어도 나성범의 부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삶이 시장에 종속될수록 우리의 선택이란 구매하거나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의 역할로만 축소된다. 일말의 효능감을 느낄 유일한 방법조차 악성 민원인, 진상 고객이 되는 것뿐이다. 과연 우리는 이 우울한 결론과 시장의 종속 너머에서 건강한 효능감을 상상하고 되찾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것이 너무나 대단하고 숭고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스포츠와 예능과 드라마를 적어도 마음 편히 보는 일상의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