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툰툰한 하루

그래픽노블 ‘로봇 드림’

그래픽 노블 <로봇 드림>의 한 장면. 놀 제공

그래픽 노블 <로봇 드림>의 한 장면. 놀 제공

[오늘도 툰툰한 하루]그때 널 두고 가지 않았다면···인연에 대한 우아한 이야기

흥미로운 만화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그래픽 노블 <로봇 드림(Robot Dreams)>(놀)의 주인공은 개와 조립식 로봇입니다. 혼자 살던 개는 어느 날 로봇 키트 하나를 주문합니다. 배송된 박스에는 철로 된 납작한 판과 긴 원통 몇 개가 들어있습니다. 개는 매뉴얼을 보며 정성껏 철판을 오리고 꿰매고 붙입니다. 마지막으로 팔과 다리를 만들자, 로봇이 완성됩니다.

개는 동그란 눈이 자신과 닮은 로봇과 친구가 됩니다. 둘은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고, 팝콘을 먹으며 <천공의 성 라퓨타>를 봅니다. 어느 날 둘은 버스를 타고 해변에 놀러 갑니다. 로봇은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물 앞에서 겁을 먹습니다. 하지만 망설임도 잠깐, 이미 물 안으로 뛰어든 개를 보며 용기를 냅니다. 개와 함께하는 물놀이는 어찌나 재밌는지! 신나게 놀던 둘은 해변의 모래밭에서 깜박 잠이 듭니다.

<로봇 드림> 스틸컷. 놀 제공

<로봇 드림> 스틸컷. 놀 제공

얼마나 잤을까요. 먼저 깬 개가 로봇을 깨웁니다. 그런데 로봇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소금물을 잔뜩 먹어서인지, ‘끼이이이익’ 하는 불안한 소리와 함께 로봇의 몸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로봇을 업고 가기에 개는 너무 작습니다. 망설이는 사이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됩니다. 개는 로봇을 해변에 둔 채 일단 혼자 집에 옵니다. 그리고 수리 도구를 갖고 다시 해변을 찾죠.

하지만 여름 개장이 끝난 해변의 문은 이미 닫힌 상태입니다. 내년 여름에 다시 문을 연다는 공지와 함께요. 지금은 8월. 개는 혼자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둘은 헤어집니다.

<로봇 드림> 스틸컷. 놀 제공

<로봇 드림> 스틸컷. 놀 제공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을까요.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친구들부터 사회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사람들까지. 딱히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도 살다 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과 엮이게 됩니다.

여러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관계’라는 것은 나와 상대 간의 호의적인 감정만으로 유지될 순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큰 우연과 작은 실수. 예상치 못한 사건과 그 순간의 선택. 이런 것들이 어떤 시점에 어떻게 발생하느냐에 따라 오래 갈 줄 알았던 관계가 쉽게 깨지기도,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도 합니다. <로봇 드림>은 이런 삶의 순간을 우아하게 표현한 만화입니다.

<로봇 드림>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로봇은 계속 꿈을 꾼다. 놀 제공

<로봇 드림>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로봇은 계속 꿈을 꾼다. 놀 제공

혼자 남겨진 로봇은 셀 수 없이 많은 꿈을 꿉니다. 꿈의 내용은 다 다르지만, 요약하면 ‘만약에’ 일 것 같습니다. 만약에 내가 물에 들어가지 않고 해변에서 개를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그럼, 물에서 놀고 나온 개와 사이좋게 집에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토끼, 갈매기를 보고도 꿈을 꿉니다. 만약에 저 토끼가 내게 기름을 한 스푼만 준다면 난 다시 회복해 개를 만나러 갈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저 갈매기의 다리를 잡고 날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봇의 꿈은 끈질기게 로봇을 배신합니다. 도움을 줄 줄 알았던 토끼는 오히려 로봇의 부품만 떼어가고, 갈매기는 로봇을 지나칩니다. 로봇은 실망하면서도 꿈 꾸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로봇의 꿈은 최종적으로는 이루어집니다. 로봇이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요. 마침내 꿈이 이루어졌을 때, 로봇은 누구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소중했던 인연을 보내줍니다.

<로봇 드림>의 개와 로봇의 행복했던 시절. 놀 제공

<로봇 드림>의 개와 로봇의 행복했던 시절. 놀 제공

이것은 누구의 잘못일까요. 개는 로봇이 움직이지 못하게 됐을 때 무조건 곁을 지켰어야 했을까요. 로봇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개를 더 적극적으로 찾았어야 할까요. 만약에 그랬다면, 둘은 계속 함께 행복했을까요.

결과를 놓고 어떤 선택의 옳고 그름을 논한다면 아마 이 세상에 잘한 선택이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그 순간 주어지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뒤,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아갑니다. 개가 로봇의 꿈을 모르듯, 로봇 역시 자신을 두고 간 개가 얼마나 오랫동안 헤맸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라 바론은 208쪽에 달하는 그래픽 노블에 단 한 줄의 대사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림체도 매우 단순합니다. 아무런 대사도, 복잡한 그림도 없지만 첫 장을 펼치면 웬만한 소설책보다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로봇 드림>의 원작입니다. 출판사 놀에서 절판됐던 만화를 14년 만에 단행본으로 재출간했습니다.

[오늘도 툰툰한 하루]그때 널 두고 가지 않았다면···인연에 대한 우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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