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독재자’

백승찬 기자

어제의 대통령 수배자 된 오늘, 거리서 마주한 성난 민중 소리

[리뷰 ]영화 ‘어느 독재자’

세계는 가끔 우연한 사건의 연속으로 그 불가사의한 속성을 드러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날, 세월호는 뜻하지 않은 긴 항해를 마치고 귀항했다. 몰락한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그린 <어느 독재자>(원제 ‘The President’)가 이 시점에 개봉하는 것도 신기한 사건이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의 지원을 받았고, 2014년 제19회 부산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됐다. 같은 해 영화제에서 공개된 <다이빙벨>이 이후 박근혜 정권의 탄압 빌미가 됐음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뒤늦게 대중에게 정식 공개되는 <어느 독재자>는 무모한 정권에 대한 영화의 응답인 셈이다.

가상의 국가. 대통령은 말 한마디로 온 도시의 불을 껐다 켤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독재자다. 하지만 혁명의 기운이 국가를 덮치자 대통령 가족은 해외로 도피한다.

국외 탈출에 실패한 대통령과 어린 손자는 거리의 악사로 분장한 채 성난 민중들을 피해 나라 안을 떠돈다. 대통령은 타락한 군인, 과거에 알던 매춘부, 고문 피해자 등을 만난다.

[리뷰 ]영화 ‘어느 독재자’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도심의 라디오에선 “하늘에는 신, 땅에는 대통령”이라는 칭송이 흐른다. 권력은 대통령 손자가 물려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영원할 듯 보였지만,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 명목으로 떠나는 가족을 공항에 바래다주는 길에서 풍선을 흔들었던 민중은, 그가 돌아오는 길에선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운다. 환송 행사를 열던 군악대는 악기를 접은 뒤 총을 들고 대통령을 쫓는다. 어제의 최고 권력자는 오늘 현상금 걸린 수배자가 된다.

대통령은 나라를 떠돌면서 자신이 저지른 폭정의 결과물을 목도한다. 상점엔 손님이 없다. 코흘리개 아이들도 막노동을 한다. 도처엔 시신이 널려있다. 옛 권력이 물러갔으나 새 권력은 자리 잡지 못한 공백기에 나라는 거대한 혼란에 빠진다. 나라를 지키던 군인들은 도적떼로 변했다. 식량을 약탈하고, 신부를 겁탈한다. 법도 윤리도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통치 기간 중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매춘부가 억울한 사연을 담은 편지를 수백 통 보냈다며 오열하자, 대통령은 그중 한 통도 받지 못했다며 당황해한다. 그러고선 다시 권력을 잡는다면 잘못을 고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권력자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약하고 어리석은 지도자는 권력의 피해자나 비판자가 나타났을 때, 피하고 무시하고 그 의도를 의심한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유족들을 내내 무시하거나 조롱했지만, <어느 독재자> 속 권력자는 자신의 잘못을 강제로 깨닫는다.

이제 몰락한 독재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영화 속 격분한 민중은 목을 내민 독재자를 두고 토론한다. “내 아이를 죽였으니 저 놈의 아이도 죽이자”는 사람도 있고, 그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서 현상금을 나눠 갖자는 사람도 있다. 어제 독재 체제에 부역했다가, 오늘 독재자를 처단하자고 가장 목소리 높이는 사람도 있다. 영화는 예상 못한 해답을 내놓는다.

조지아에서 촬영된 영화지만, 감독은 이란의 모흐센 마흐발바프다. <가베> <칸다하르> 등으로 유명한 그는 당국의 탄압으로 국내에서 영화 제작이 불가능해지자, 2005년 해외로 이주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 6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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