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이야기는 ‘영원한 아이’라는 상징성 덕에 길이 기억되고 있지만, 막상 100여년 전 집필된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당황스러운 묘사가 적지 않다. 특히 여성에 대한 관점이 그렇다. “목 부분을 사각형으로 깊이 파 만든” 나뭇잎 옷을 입은 요정 팅커 벨은 피터 팬의 새로운 짝궁 웬디에 대해 맹목적 질투심을 드러낸다. 인디언 타이거 릴리는 모든 용사들이 아내로 삼고 싶어 하는 “변덕스럽고 고집불통인 여자”다. 타이거 릴리는 백인 소년 피터 팬 앞에서는 유독 다소곳하다.
네버랜드의 ‘잃어버린 소년’들이 웬디를 환영한 이유는 그들에게 ‘엄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년들에게 엄마는 양말을 깁고 밤에 재워주는 사람이다. 남동생 존, 마이클이 피터 팬과 함께 모험을 하는 동안 웬디는 그에게 기대되는 ‘엄마’ 역할을 수행한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웬디>는 원작의 관점을 뒤엎는다. 미국 시골 철로변의 한 식당, 웬디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소녀다. 웬디는 쌍둥이 오빠 제임스, 더글러스와 함께 식당 옆을 지나는 화물열차에 올라 집을 떠난다. 웬디와 두 오빠는 나이 들지 않는 아이들의 화산섬에 도착해 피터 팬과 모험을 즐긴다. 화산섬의 영향력을 믿는 한, 아이들은 먹을 걱정, 나이 들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이는 믿음을 잃어버리면 아이들도 나이가 든다는 뜻이다. 모험을 하다가 더글러스가 실종되자, 제임스는 슬픔에 빠져 오른손이 나이 들어간다. 피터 팬은 제임스의 오른손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e메일로 만난 벤 자이틀린 감독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 인물들의 핵심 정신을 살리되, 심오한 문제적 역사로부터는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었다”고 말했다. 20세기 초반 원작의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요소는 제거하되 노화, 질병,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는 피터 팬의 주제를 다시 써보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오로지 바느질을 하고, 가정을 돌보며, 남자아이들이 하는 모험을 옆에서 지켜보는 데 머물렀던 여자아이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존재했던 ‘웬디’를 영화 제목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늙지 않는 아이들’이라는 환상의 전제에 기반하지만, 배경은 의외로 현실적이다. 피터 팬은 마법을 부리지 않는다. 요정 팅커 벨도 등장하지 않는다. 웬디와 아이들은 어른들이 없는 여름 캠프에서 위험하지만 흥미롭게 노는 것처럼 묘사된다. 자이틀린 감독은 “보편적인 현실과 동떨어진 원작의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싶었다”며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영화가 돼야 했다”고 말했다. 요정의 마법과 비행은 자연의 경이로움, 거대한 화물열차로 대체됐다. 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대신 땀을 흘리고, 벌레에게 물리고, 모래밭에서 뒹굴도록 연출됐다.
피터 팬의 성격도 원작과 다르다. 원작의 피터 팬이 천진난만하고 용감한 백인 소년이었다면, 영화에선 거칠고 때로 독단적인 흑인 소년이다. 유년기를 즐기는 것을 넘어, 노화를 적대한다. 자이틀린 감독은 “피터는 굉장히 순수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다소 소시오패스적인 모습도 어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이틀린 감독은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피터 팬도 노인은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며,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웬디는 난폭한 피터 팬을 관찰하면서 그를 조금 더 성숙하게 이끌어주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그랬듯이, 영화에서도 웬디는 나이 들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다시 피터 팬과 함께하는 모험에 눈길을 돌린다. 시대가 흐르고 세대도 바뀌지만, 어떤 욕망은 보편적이다. <웬디>는 케케묵어 문제가 명확해 보이는 원작도 몇 가지 보정작업을 거치면 눈여겨볼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