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충북 보은의 ‘장애인 영화 보는날’

이삭 기자
지난 22일 오후 충북 보은지역 시청각장애인들이 시청각장애인용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보은영화관 상영관에 앉아있다.

지난 22일 오후 충북 보은지역 시청각장애인들이 시청각장애인용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보은영화관 상영관에 앉아있다.

지난 22일 오후 1시30분 충북 보은군 보은읍,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작은 영화관인 보은영화관 로비에 사람들이 몰렸다. 영화관 입장을 기다리던 한 무리의 사람들은 수어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다른 곳에서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한 남성이 한 손에는 흰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팝콘을 들고 앉아 있었다.

이날은 보은군의 ‘장애인 영화 보는날’이다. 보은군은 이번 달부터 매달 셋째 주 목요일을 ‘장애인 영화 보는 날’로 정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자막과 화면해설음성을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다. 보은군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영화가 상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은군에는 6월 말 현재 900명의 시청각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 주민은 3만1000여명이다.

보은군에 거주하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자막과 화면해설음성을 담은 영화를 보기 위해선 청주와 충주(매월 두 차례), 제천과 옥천 그리고 영동(매월 한차례)까지 가야만 했다. 먼 이동 거리 등 때문에 이들에게 영화감상이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임원빈 충북농아인협회 보은군지회장(65)은 “청주에서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려면 정오에 출발해야 한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 오후 5시로 영화 하나 보는데 반나절을 쓰는 셈”이라고 했다.

지난 22일 충북 보은군 보은영화관 로비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이 상영관 입장을 앞두고 기다리고 있다.

지난 22일 충북 보은군 보은영화관 로비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이 상영관 입장을 앞두고 기다리고 있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겐 영화관 문턱이 더 높다. 이날 영화관을 찾은 황호태 보은군 시각장애인 연합회장(61)은 “4년 만에 영화관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도움 없이 먼 곳을 가기는 쉽지 않다”며 “집과 가까운 곳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날 영화관에는 50여명의 시청각장애인들이 찾았다. 보은영화관은 이날 이들을 위해 54석, 37석 규모의 2개 상영관을 모두 빌려줬다. 관람료도 2000원으로 저렴하다. 5000원의 관람료 중 3000원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한다.

지난 22일 오후 충북 보은군 보은영화관에서 시청각장애인용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충북 보은군 보은영화관에서 시청각장애인용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이날 상영된 영화는 이정재 감독의 <헌트>였다. 영화관에서는 청각장애인용 자막과 시각장애인용 화면해설음성이 동시에 전달되는 버전이 상영됐다.

이 영화는 일반 영화와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자막은 큰 거부감이 없었다. 반면 성우의 화면해설음성은 1980~90년대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었던 드라마와 비슷했다. 배우들의 다급한 움직임, 배경 등이 세세하게 목소리로 전달됐다. 미국 정보요원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의 대화는 한국어로 더빙됐다.

이날 영화관에서 만난 청각장애인 민모씨(83)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큰 스크린에 화면 해설이 담긴 자막이 큰 글씨로 떠 있어 보기 편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실감이 났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앞으로도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며 “시청각장애인용으로 제작된 최신 영화가 적다.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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