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넘버, 치밀한 스토리로 쌓아올린 서스펜스…뮤지컬 ‘레베카’

선명수 기자
지난 16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레베카>의 한 장면. EMK 제공

지난 16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레베카>의 한 장면. EMK 제공

공연은 무대 위에 선 주인공 ‘나’가 작은 수첩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의 손끝을 따라 무대 정면에도 수첩의 스케치가 구현되고, 이윽고 그림 속 웅장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음산하고, 어딘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맨덜리 저택이다.

대저택을 배경으로 인물 간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 욕망을 그린 뮤지컬 <레베카>가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6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원작을 충실히 반영한 탄탄한 서사, 강렬한 넘버와 몰입감을 높이는 무대 연출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공연이다.

<레베카>는 영국 소설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1938년 출간한 동명의 고딕 스릴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치밀한 내면 묘사와 반전이 이어지는 전개로 미스터리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소설은 1940년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화하기도 했다. 뮤지컬은 히치콕의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제작됐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이문드 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전세계 12개국에서 공연됐으며, 한국에선 2013년 뮤지컬 제작사 EMK가 라이선스 공연으로 첫 선을 보였다.

공연은 영화와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귀족 부인의 말벗을 해주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몬테카를로 휴양지의 한 호텔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류층 남자 막심 드 윈터를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남편을 따라 그의 대저택이 있는 맨덜리로 향한 ‘나’는 그곳에서 막심의 죽은 전 부인 레베카의 흔적들을 마주한다. 저택 곳곳에 여전히 깊게 물들어 있는 레베카의 영향력에 ‘나’는 위축되기 시작한다. 매력 넘치던 귀족 레베카와 너무나도 다른 평범한 ‘나’를 인정하지 않는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과도 갈등을 빚게 된다.

극의 제목이기도 한 ‘레베카’는 이미 죽은 인물로 단 한 번도 무대에 등장하지 않지만, 작품의 배경인 맨덜리 저택 뿐 아니라 극중 모든 인물의 심리까지도 장악하며 미스터리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이야기는 레베카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마주하게 된 ‘나’를 따라 전개되지만, 뮤지컬의 중심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레베카를 대변하며 동시에 집착하는 인물인 댄버스 부인이다. 개막일인 지난 16일 댄버스 부인으로 무대에 오른 배우 옥주현은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 번 그 존재감을 입증했다. 이 뮤지컬의 대표 넘버 ‘레베카’를 열창하는 장면에선 폭발적인 가창에서 나오는 특유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지난 16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레베카>의 한 장면. EMK 제공

지난 16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레베카>의 한 장면. EMK 제공

지난 16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레베카>의 한 장면. EMK 제공

지난 16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레베카>의 한 장면. EMK 제공

잘 설계된 무대 연출도 뮤지컬의 서스펜스를 높인다. 극을 열고 닫는 ‘나’의 스케치 장면이나 맨덜리 저택의 화재 장면 등이 관객 시선을 빼앗는다. 특히 댄버스가 바닷 바람을 맞으며 포효하듯 ‘레베카’를 열창할 때 레베카의 방 발코니가 360도 회전하는 장면은 한국 공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명장면이다. 배우들의 노래가 감정의 극한에 이르렀을 때 변화하는 무대 세트가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 이는 한국 초연 때부터 원작자인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로부터 “한국 무대가 세계 최고”라는 평을 이끌어낸 장면이기도 하다.

댄버스 부인 역은 초연 때부터 함께해온 옥주현과 신영숙이, 순수하고 여린 내면의 인물에서 강인한 면모로 거듭나는 ‘나’는 임혜영·박지연·이지혜가 번갈아 연기한다. 레베카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 막심은 배우 민영기·김준현·에녹·이장우가 번갈아 맡는다. 공연은 내년 2월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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