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의 스파이는 잊어라…세상에 맞선 ‘비범한 여성의 투쟁기’, 뮤지컬 마타하리

선명수 기자
<마타하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처형당한 무희 마타하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세상에 맞선 여성 예술가의 투쟁을 그린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마타하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처형당한 무희 마타하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세상에 맞선 여성 예술가의 투쟁을 그린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마타하리(1876~1917)는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 같은 존재다. 본업인 댄서보다, 유럽 사교계에서 활동한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 스파이로 대중에게 더 각인돼 있다. 마타하리는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을 지닌 인도네시아어다.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 1917년 10월, 1차 세계대전 와중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군사정보를 판 이중간첩 혐의로 총살당했다. 그러나 그의 혐의에 대해선 훗날에도 이견이 분분하다. 1999년 기밀 해제된 영국 정보부의 1차 세계대전 관련 문서에는 마타하리가 독일에 정보를 팔았다는 어떤 결정적 증거도 없다고 기록돼 있었다. 프랑스 군부가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대중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뮤지컬 <마타하리>는 프랑스 파리를 주름 잡았던 전설의 무희나 관능의 스파이 대신 자유와 사랑을 좇았던 여성 예술가로서 마타하리의 삶을 조명한다. 뮤지컬제작사 EMK오리지널이 만든 첫 창작 뮤지컬로, 2016년 초연 당시 흥행과 함께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즈 ‘올해의 뮤지컬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다. 초연 이후 드라마를 보강해 2017년 재연했고, 이번 세 번째 시즌에선 인물들의 전사(前史)를 더하고 새 캐릭터와 음악을 추가하는 등 달라진 무대로 돌아왔다.

눈에 띄는 것은 마타하리의 내면 묘사다. 이를 위해 이번 시즌에선 ‘마가레타’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마타하리의 본명을 따 만든 캐릭터로, 극 중에서 마타하리의 과거와 내면의 자아를 상징한다. 김지혜, 최진 두 명의 무용수가 마가레타를 맡아 대사 없이 춤으로 마타하리의 영혼을 표현한다. 마타하리의 동료로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킨 ‘안나’와의 관계성을 부각시켜 둘의 서사를 추가한 것도 이번 시즌의 특징이다. 대본을 쓴 아이반 멘첼은 “결혼생활의 성적 학대를 피해 파리에 도착해 이국적인 무용수로 거듭난 비범한 여성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면서 “여성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는 현 시대에, 마타하리는 주변 남성들이 지시한 삶 대신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사는 것이 범죄가 되었음을 보여준 여성으로서 증언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연 때부터 이 작품과 함께해온 뮤지컬 배우 옥주현은 가난과 폭력의 굴레를 딛고 화려하게 비상했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여성 예술가의 굴곡진 삶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마타하리는 총살형이 집행될 때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눈가리개를 거부한 채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옥주현은 그 순간을 그린 넘버 ‘마지막 순간’을 특유의 카리스마로 열창해 관객 환호를 받았다. 앙상블 배우에서 이 작품으로 주역 데뷔전을 치른 김성식은 사랑에 빠진 순수한 청년 ‘아르망’을 매력적으로 연기해 새로운 뮤지컬 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 가수 역을 맡은 실력파 뮤지컬 배우 육현욱은 드라마 사이사이 군무 장면을 이끌며 극의 분위기를 띄웠다.

마타하리와 댄서들이 보여주는 관능적인 춤, 화려한 물랑루즈 극장에서 전쟁터까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웅장한 무대 세트, 벨에포크 시대를 재현한 200벌이 넘는 화려한 의상도 관객 시선을 사로 잡는다.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8월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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