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래퍼3‘ 우승자 이영지 “내가 열망한 성공은 ‘맛있는 것 많이 먹는 삶‘“

김지혜 기자

‘고등래퍼3’ 우승자 이영지

고등학생 대상 랩 경연 프로그램 Mnet <고등래퍼3>에서 여성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이영지가 지난 19일 경향신문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고등학생 대상 랩 경연 프로그램 Mnet <고등래퍼3>에서 여성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이영지가 지난 19일 경향신문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경력 6개월 ‘랩 초보’ 무대 도전
‘남초’ 힙합계 뒤흔들어 큰 반향
통념 깨는 신선한 랩으로 화제

경력 6개월의 ‘랩 초보’로 등판, 비약적 성장 끝에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첫 방송에서 “넌 힙합이 아니네”라며 또래들의 공격을 받더니 방송 8회차 만에 전국 153만 고등학생 중 ‘힙합 최강자’로 거듭났다. 국내 혼성 랩 경연 프로그램 사상 최초의 여성 우승자이자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까지 따냈다. <슬램덩크>류의 ‘소년 만화’를 연상케 하는 이 호쾌한 성장담의 주인공은 지난 12일 종영한 고등학생 랩 경연 프로그램 Mnet <고등래퍼3>의 우승자 이영지(17)다. ‘극남초’ 장르라 불리는 힙합계에서 미성년 여성으로서 ‘소년 만화’ 아닌 ‘소녀 만화’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이영지를 만났다.

“최초 여성 우승자,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보다 ‘이영지’가 우승을 한 게 중요하죠.” 지난 1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이영지는 특유의 활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래퍼들이 보통 쓰는 ‘랩 네임’조차 없다. “딱히 내 이름을 대체할 게 없다”는 패기 넘치는 이유에서다. “넥타이 풀어헤쳐야, 학교를 자퇴해야 힙합이다”라고 말하는 또래들에게 “어디서 배운 거야? 그런 힙합?”이라고 받아치며 첫 방송에서부터 화제가 됐던 그답다. 힙합에 대한 통념을 깨는 신선한 발언이었다는 평에 대해 이영지는 “10대들이 생각하는 힙합이 ‘허세’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뻔뻔스럽게 뽐내는 것도 힙합의 매력이 될 수 있으니 과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흙 속의 진주.’ 방송 2화에서 팀 대표 선발전 무대를 마친 이영지에 대해 래퍼 더콰이엇은 이렇게 평가했다.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9월부터 자작랩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녹화 시점에서는 경력 6개월도 채 안된 때였다. 이영지는 “진로를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유튜브를 통해 외국 힙합이나 팝 음악을 많이 듣다가, 자연스레 국내 힙합을 듣고 따라 불렀는데 친구들이 ‘잘한다’고 하길래 그때부터 ‘내 걸 써볼까’ 생각이 들어 랩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등래퍼3‘ 우승자 이영지 “내가 열망한 성공은 ‘맛있는 것 많이 먹는 삶‘“

타고난 재능에 날개를 달아준 건 그의 ‘성실함’이다. <고등래퍼3>에서 이영지의 멘토였던 래퍼 코드쿤스트는 파이널 공연을 준비하며 “영지와 함께 열흘 밤을 새웠다”고도 했다. 이영지는 “무대마다 ‘새롭다’ ‘나날이 늘어간다’는 칭찬을 들었다. 밤을 새우면서, 감기는 눈을 열심히 떠가며 노력했기 때문에 멋진 결과들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력에는 이유가 있다. 이영지는 ‘성공’을 누구보다 열망해왔다. 지난 13일 발매한 신곡 ‘레디’(Ready)의 “벌고 벌어 또 벌어 또 멀어질 거야. 더러운 가난과는”라는 가사처럼, 그의 랩에는 성공이 유독 자주 언급된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가정의 불화가 돈에서 비롯되거나, 빈곤 때문에 자신이 싫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때 생각했죠. 돈 많이 벌어야지.(웃음)”

“친구들 ‘잘한다’ 격려 힘입어 시작
힙합, 표현의 자유 존중하는 문화
맛난 것 사먹을 정도 성공이 꿈”

그가 꿈꾸는 성공은 대단한 부와 명예가 아니다. “나이 들면서 성공의 기준은 계속 바뀌겠지만, 지금은 단순해요. ‘맛있는 것 많이 먹는 삶’. 미련하게 많이 먹는다는 게 아니라,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 내 돈 주고 사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사줄 수 있는 부를 갖는 거예요.” 그에게 성공은 주변인, 특히 가족과 함께 누릴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는 방송에서 랩을 통해 아버지에게 성공할 테니 돌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기억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아버지가 곁에 안 계셨어요. 자세한 전말은 잘 몰라요. 엄마, 할머니 품에서 자랐지만 그렇게까지 부족하게 산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중산층이 아닌 정도였죠. 다만 스타킹 한 개 살 때도 1000원, 2000원을 고민하며 진열대 앞에 서있었던 그때로 돌아가기 싫을 뿐이지, 잠잘 곳 입을 옷 걱정없이 건강하게 잘 살았습니다.”

‘남초’ 힙합계에서 여성인 그가 일군 성취는 또래 여성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경연 때마다 ‘이영지’를 뜨겁게 연호하는 여중생, 여고생들의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영지의 최종 우승곡 ‘고 하이’(Go High)에서 그의 목소리를 삭제한 음원이 유튜브 등에서 유통되기도 했다. 당시 이영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너무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적었다. 이영지는 “취향에 따라 편집을 할 수도 있는 건데, 당시엔 인신 공격성 악성댓글 때문에 예민해진 상태라 ‘비꼬려고 만든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음원을 게시한 분과 서로 사과하고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영지는 이날의 ‘발끈’을 발판 삼아 “쏟아지는 비판적인 시선들까지도 긍정으로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첫 방송에서 “힙합 다시 배워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이영지. 힙합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는 문화”라는 답을 내놨다. 래퍼로서의 그의 경력은 이제 시작이다. <고등래퍼3> 출연자들과 함께하는 ‘어나더레벨’ 전국투어 콘서트 등 공연이 줄이어 예정돼 있다. 우승 장학금 1000만원으로 음악 장비들을 살 마음에 부풀어 있는 이영지는 곧 좋은 곡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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