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여년 만에 열린 장경판전의 문…비로소 마주하는 ‘부처님 말씀’

합천 | 이혜인 기자
해인사 스님들이 지난 10일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경남 합천 해인사 법보전을 둘러보고 있다. 해인사는 오는 19일부터 매주 토·일요일 팔만대장경을 일반에 공개하기에 앞서 이날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연합뉴스

해인사 스님들이 지난 10일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경남 합천 해인사 법보전을 둘러보고 있다. 해인사는 오는 19일부터 매주 토·일요일 팔만대장경을 일반에 공개하기에 앞서 이날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연합뉴스

해인사 법보전 보관 ‘팔만대장경’
언론 대상 프로그램 사전 진행

“남쪽 창, 아래가 위보다 더 크고
북쪽은 위가 커 공기 순환 잘 돼
마구리 작업 경판엔 틈새도 있어”

지난 10일 오전, 경남 합천 해인사 앞에 취재진이 모였다. 국보 32호, 8만여장에 새겨진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 ‘팔만대장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오는 19일부터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 4개동 중 법보전 내부를 사전예약자에게 공개한다. 팔만대장경의 일반 공개는 조선 태조 때인 1398년 대장경판이 해인사로 옮겨진 지 620여년 만에 처음이다. 이에 앞서 언론을 대상으로 사전예약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팔만대장경을 만나러 가는 길은 욕계(慾界), 색계(色界)를 거쳐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인 법장 스님이 말했다. 장경판전은 해인사 경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해인사의 정문 격인 일주문과 봉황문, 해탈문, 구광루를 통과한 후 해인사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을 지나면서 총 500m가량을 걸어 올라가야만 목적지인 장경판전에 도달할 수 있다. 법장 스님은 “해인사도 부석사와 유사하게 경사가 있는 구조로 지어져 있다”며 “아래에서는 위를 짐작할 수 없지만, 위에 도착해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지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해 더 큰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적광전에서는 해인사 스님들이 모여 고불식(부처님께 고하는 의식)을 올렸다. 주지 현응 스님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는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과, 팔만대장경을 조성할 당시의 호국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스님 150여명이 대적광전을 나와 ‘석가모니불 정근’을 외우며 법보전으로 올라갔다.

스님들이 법보전 안을 한 바퀴 돌며 고불식을 마치고 난 후 취재진도 법보전 안으로 들어갔다. 법보전에는 팔만대장경 중 화엄경 등 대승불교 경전이 새겨진 판본이 보관돼 있다. 빡빡하게 꽂혀 있는 묵색의 대장경판들이 시야에 꽉 들어찼다. 가로 약 70㎝, 세로 약 24㎝로 균일한 크기의 판들이 나무로 된 5층짜리 판가(경판꽂이)에 빈틈없이 꽂혀 있었다.

대장경판 보존 소임을 맡은 일한 스님은 법보전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며 설명을 시작했다. “대장경 여러 권이 하나로 묶여서 천(天), 지(地), 현(玄), 황(黃) 등 천자문 순서대로 함차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지금 도서관에서 도서목록을 분류하듯이 체계가 잡혀 있어서, 어느 곳에 어느 경전이 꽂혀 있는지 알 수 있지요.”

700년 넘게 보존돼온 경판 수만 총 8만1258장, 경판 앞뒤로 새겨진 글자 수는 5272만자에 달한다.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19년인 1237년에 몽골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막고자 조성하기 시작해 1248년까지 이어졌다. 준비 기간까지 합하면 완성까지 16년이 걸린 것으로 전해진다.

정신없이 둘러보던 중 독특한 모양의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벽마다 나무로 된 2개의 붙박이 살창이 있다. 그런데 위쪽 창은 작고, 아래쪽 창은 컸다. 일한 스님이 “남쪽 벽의 창은 아래가 위보다 더 크고, 북쪽 벽은 위가 아래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공기가 실내로 들어와 잘 순환하게끔 만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법보전 안에 들어와서 후련하고 산뜻한 기분을 느낀 것은 기분 때문이 아니라 통풍이 잘되는 과학적 설계 덕분이었다. 대장경판이 꽂힌 나무 판가도 맨 아래 부분이 지상과 한 층 정도 띄워져 있다. 비바람이 들이쳐도 물에 잠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해인사 대장경 연구원이 장갑을 낀 채 ‘광명경’ 내용이 적힌 경판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경판 가운데 글자가 새겨진 부분보다 경판 바깥쪽의 두께가 더 두꺼웠다. 일한 스님은 “경판들이 서로 부딪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구리 작업을 한 것”이라며 “마구리 작업 덕에 틈새가 생겨 통풍이 잘된다”고 설명했다.

팔만대장경을 일반에 공개하기로 한 것은 해인사 입장에서는 큰 결단이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도 스님들은 피란을 가지 않고 밤을 지새우며 대장경판 주변을 지켰다. 지금도 스님 20여명이 3교대로 돌아가며 24시간 경비를 선다. 해인총림(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은 11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팔만대장경 속 부처님 말씀의 핵심인 ‘중도의 정신’을 실천해 국민이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고, 상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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