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에 ‘강제 연행’ 대신 ‘징용’을 쓴 이유는? “강제성·불법성 은폐 의도”

김지혜 기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30일 열린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전문가 세미나’에서 내년부터 사용될 일본 고교 사회과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연합뉴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30일 열린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전문가 세미나’에서 내년부터 사용될 일본 고교 사회과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부터 일본 고등학생이 사용할 사회과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연행’ 등의 표현이 삭제된다. 이러한 서술 변화에서 전시체제 식민지 노무동원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은폐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가 읽힌다는 견해가 국내 학계에서 나왔다. ‘종군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등의 표현이 ‘위안부’로 수정된 것 역시 동원의 주체와 강제성을 모호하게 하려는 시도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동북아역사재단이 30일 연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세미나’에서 전날 검정 심사를 통과한 ‘일본사 탐구’ 교과서 7종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한 위원은 이들 교과서의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관련 서술에서 기존의 ‘강제 연행’이라는 표현이 ‘동원’ 혹은 ‘징용’으로 수정됐다고 밝혔다. 조선인 노무동원은 ‘강제 연행’이 아닌 ‘징용’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지난 4월 일본 각의(내각회의)의 결정이 반영된 결과다.

한 위원은 이 같은 기술이 “조선인 노무동원의 불법적 강제성을 소거·부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교과서가 중국인 등 점령지 주민의 노무동원은 여전히 ‘강제 연행’으로 기술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한 위원은 “일본 정부 입장에서 중국과 조선의 강제동원은 다르다. 점령지 노무동원은 ‘전쟁(범죄)의 문제’지만, 조선·대만 등 식민지 노무동원은 비록 강제성이 있더라도 전시체제의 ‘국민의 의무’ 차원에서 일어난 일로 본다”고 설명했다. ‘동원’ 혹은 ‘징용’이라는 용어 선택의 배경에는 조선인 노무동원이 일본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에 근거한 합법적 행위였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한 위원은 “강제동원과 관련해 좀 더 명확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강제동원은 ‘법과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모집됐다’는 뜻이지만, 일본에서는 전시 총동원체제의 (합법적) 동원을 의미한다”면서 “강제동원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증언 수집을 통해 징용령이라는 형식을 떠나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강제되고 피해를 입었는지 실상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도 “일본에서는 ‘징용’이란 표현 역시 동원의 합법성을 강조하기 위해 쓴다”며 “용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세미나에서는 ‘종군 위안부’의 ‘종군’이 삭제된 것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조 위원은 “피해자를 동원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군이나 정부의 책임보다는 업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독도 관련 일본의 영유권 왜곡 주장을 담은 기술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과 비판도 나왔다.

매년 반복되는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있을까.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정책실장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 전문가들이 일본 정부에 수정 요구안을 제시해 왔지만, 실제 변화로 이어지진 못했다”면서 “중요한 것은 민간 차원에서 한·중·일 학자들이 모여 공동 교재를 만드는 등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다. 공동 연구와 교류 확대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그 연구 성과가 교과서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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