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남자의 로망’ 람보르기니 쿤타치

안광호 기자

슈퍼카의 전형이자 남성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차가 있다. 람보르기니 쿤타치(Lamborghini Countach)다. 쿤타치는 직선을 강조한 수려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1970~1980년대 슈퍼카 계열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 모델이다.

그 명성은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어 미국의 스포츠카 전문 잡지인 ‘세계의 스포츠카’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스포츠카’에 1970년과 1980년대에 각각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람보르기니의 첫 번째 슈퍼카인 미우라(Miura·1966~1972년)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1960년대 후반, 람보르기니사는 미우라의 명성을 뛰어넘는 후속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무엇보다 경쟁사인 페라리의 4.4ℓ 엔진을 넘어서는 새로운 엔진의 개발이 시급했다. 람보르기니사는 이에 전통의 V12 기통과 5.0ℓ 배기량의 엔진을 적용한 모델 개발에 몰두했다.

람보르기니 창립 25주년 기념 쿤타치 전측면 <출처: 람보르기니서울 제공>

람보르기니 창립 25주년 기념 쿤타치 전측면 <출처: 람보르기니서울 제공>

미우라 명성 이은 쿤타치. 1971년 프로토 타입 공개 =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이 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쿤타치 LP500 프로토타입이 공개됐다. 쿤타치(Countach)라는 말은 주로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피에몬테 지역에서 쓰는 방언이다. 아름다운 여성을 봤을 때 피에몬테 사람들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감탄사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카운타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영국식 발음이 일본어와 합쳐지면서 변형된 말이다.

1971년 람보르기니 쿤타치가 공개되기 전 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가 ‘프로젝트 112’라는 구상 하에 LP500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 모델의 디자인을 본 한 직원이 감탄해 ‘쿤타치’라고 외치면서 이름을 사용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또 수석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가 디자인한 LP500을 본 베르토네가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도 있다.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쿤타치 LP500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쿤타치 LP500

참고로 LP500 이라는 이름은 엔진을 ‘후방(운전석 뒤) 세로 배치’ 라는 의미인 LP(Longitudinale Posteriore)와 배기량 5.0ℓ의 엔진을 사용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쿤타치 LP500은 등장과 함께 월등한 성능으로 눈길을 모았다. V12 기통의 4,971㏄, 446마력 엔진을 얹어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최고시속 300㎞/h 라는 뛰어난 성능으로 경쟁사인 페라리를 위협했다.

아무튼 LP500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목을 끌었던 전신인 미우라와 달리 힘있는 직선으로 람보르기니 디자인의 전통을 알리기 시작했다. 미드십(Mid-ship) 방식의 커다란 엔진은 운전석과 조수석을 보다 앞쪽으로 이동시켰고 이러한 구조는 고성능 스포츠카의 표준이 되기도 했다. 유리창에서 이어진 직선은 노즈(Nose – 자동차 앞부분을 말함) 부분의 흡기구까지 이어졌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목을 끌었던 미우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목을 끌었던 미우라

또한 쿤타치 특유의 낮은 전고와 넓은 차체로 일반도어 적용이 어려웠는데 시저스 도어(Scissors door – 가위처럼 문이 열려 붙여진 이름)를 고안했다. 쿤타치의 시저스 도어는 상하로 열고 닫는 방식으로 쿤타치 만의 차별화된 스타일이었고 또한 탑승자의 승하차까지 고려한 설계로 (경사진 유리창을 적용)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저스 도어는 현재까지도 람보르기니와 쿤타치의 상징이 되고 있다.

LP500은 또 튜브 모양의 입체 뼈대를 사용했는데 재질은 차체 강성을 높이기 위해 레이싱 자동차나 항공기가 사용하는 알루미늄을 적용했다. 이로 인해 내구성을 높이고 차의 무게도 1,130㎏까지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지만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쿤타치 LP400 시저스 도어 - 가위처럼 상하로 열고 닫는 방식 시저스 도어 <출처: 람보르기니서울 제공>

쿤타치 LP400 시저스 도어 - 가위처럼 상하로 열고 닫는 방식 시저스 도어 <출처: 람보르기니서울 제공>

4.0ℓ 375마력 쿤타치 LP400 등장. 후속모델로 계승 = 람보르기니 창립자 페루초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LP500의 양산화를 위해 투자를 과도하게 하다가 재정난에 몰리면서 LP400 출시 한 해 전인 1973년 경영권을 넘기고 은퇴했다. 우여곡절 끝에 1974년 양산형 쿤타치인 LP400이 세상에 공개됐다. 1977년까지 총 149대가 생산됐는데 개발 당시 공언했던 배기량 5.0ℓ이 아닌 V12 4.0ℓ 엔진을 얹었다. 배기량을 낮춘 대신 차량경량화를 위한 알루미늄 보디 채택으로 최대출력 375 마력, 최고시속 309km/h, 제로백(정지상태에서 100km/h 의 속도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 5.4 초의 놀라운 성능을 발휘했다.

쿤타치 LP400S – 이 전 모델보다 외관, 서스펜션, 휠 등이 크게 변경되었다.

쿤타치 LP400S – 이 전 모델보다 외관, 서스펜션, 휠 등이 크게 변경되었다.

외관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LP500보다 직선이 더욱 강렬해져 남성적이면서 공격적인 인상을 전했다. 세련미를 더한 후미등과 엔진 냉각 작용을 위해 더욱 커진 공기 통풍구와 흡입구가 눈길을 끌었다.

쿤타치는 이후 후속모델을 내놓으며 더욱 발전해갔다. LP400의 후속 모델인 LP400S는 이전의 모델보다 외관도 크게 변형이 되고 서스펜션과 휠, 타이어 등이 바뀌었다.

쿤타치의 후속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출처: 람보르기니서울 제공>

쿤타치의 후속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출처: 람보르기니서울 제공>

쿤타치 LP400S는 1982년까지 총 237대가 생산됐으며 람보르기니는 이즈음 경영 악화로 규모를 축소하고, 새로운 제3세대의 쿤타치를 계획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LP500S는 4,754㏄의 배기량에 최고출력 375마력의 힘을 자랑했다. 외관은 전 모델인 LP400S와 같았다.

1984년 페라리가 ‘GTO’와 ‘테스타로사’를 내놓자 위기감을 느낀 람보르기니는 이듬해 제네바 모터쇼에서 48밸브의 배기량 5,167㏄, 최고출력 445마력, 최고시속 295㎞/h, 제로백 4.9초의 성능을 가진 ‘LP5000콰트로발볼레’(Quattrovalvole·LP5000QV)로 맞불을 놨다. 1988년에는 람보르기니 창립 25주년을 기념한 쿤타치가 400대 한정 생산으로 공개됐다.

25주년 기념 쿤타치는 5000QV와 비슷했으나 스타일링이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수요가 늘면서 당초 계획된 제작 대수를 넘어 1990년까지 총 650대가 생산됐으며 쿤타치는 미국적이며 보다 강력해진 ‘디아블로’에 자리를 내주고 단종됐다.

<안광호 기자>

쿤타치 LP400 제원

엔진 형식 : 4.0ℓ V12 미드십 / 배기량 : 3,929㏄ / 최고속도 : 309㎞/h / 차체형식 : 2도어 고정형 헤드 쿠페 / 트랜스미션 : 5단 수동 / 최대출력 : 375hp·7,500rpm / 최대토크 : 36.8㎏·m·5,000rpm / 전장 X 폭 X 전고 : 4,140㎜ X 1,890㎜ X 1,070㎜ / 휠베이스 : 2,450㎜ / 총 중량 : 1,200㎏ / 제로백(0-100㎞/h) : 5.4초 / 디자이너 : Marcello Gandini / 생산년도 : 1974~1990년 / 생산국가 : 이탈리아 볼로냐 / 생산대수 : 2,0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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