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카] 26. 전 세계를 평정한 작지만 강한 車 ‘오스틴 미니’

클래식카 고유의 DNA를 가진 오스틴 미니(Austin Mini)는 가장 영국적이면서 유럽의 멋을 제대로 담은 차다. ‘미스터 빈’의 차로 유명한 미니는 아담하면서 앙증맞은 사이즈와 달리 영국을 넘어 전 세계를 자신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미니는 등장부터 획기적인 기술력으로 인정받았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강력한 성능을 뽐내고 있다. 한 세기를 넘어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차’, ‘세기의 유럽차’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오스틴 미니의 탄생은 1905년 영국 롱브리지(Longbridge)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회사를 설립한 허버트 오스틴(Herbert Austin·1866~1941)에서 비롯됐다. 1차 세계대전 후 경영 불안이 가중되자 새로운 자동차 개발에 착수한 그는 1921년 미국의 포드 ‘모델 T’에 대적할만한 걸작을 내놓게 된다.

바로 값싼 소형차 ‘오스틴 7’이다. 세븐의 폭발적인 인기로 영국 자동차 수출 물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며 탄탄대로를 걷던 오스틴은 1952년 모리스의 모회사인 너필드(Nuffield)와 합병하면서 BMC(British Motor Corporation)로 재탄생했다. 합병 이후에도 오스틴의 엔진을 단 모델들이 속속 공개됐고 시장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1964년형 미니 쿠퍼 S Rally <출처: BMW코리아>

이 무렵 영국은 석유 수입에 큰 차질을 빚고 있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조치와 제2차 중동전쟁의 여파 탓에 기름값은 치솟았고 석유 수입이 제한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 후 복구 등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자동차 시장은 소형화, 그리고 실용화가 대세가 됐다.

그러나 당시 이른바 ‘버블카’(Bubble car)로 불렸던 3륜 소형차들은 사람들의 ‘다리’ 역할은 했지만 성능과 안전성 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다. 당시 영국의 최대 자동차 회사였던 BMC의 회장 레너드 로드(Leonard Lord)는 결함이 많은 버블카의 인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세계 최고의 소형차를 개발하겠다는 결심을 굳혀갔다.

1923년~27년 생산된 오스틴의 최초 모델 ‘오스틴 7’ <출처: BMW코리아>

혁신적 기술로 세계를 놀라게 한 미니의 창시자 이시고니스 = 그래서 영입한 인물이 바로 코벤트리(Coventry)의 알비스(Alvis)사에 있던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였다. 원래 모리스 직원이었던 그는 오스틴과 합병 이후 BMC 소속으로 바뀌고 소속 직원들간의 불화가 커지자 이를 참다 못해 회사를 떠났었다.

BMC의 회장 레오나드 로드를 평소 존경해오던 그는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에 큰 고민없이 복귀를 결정했다. 터키 출생의 공예학을 전공한 알렉 이시고니스는 그 당시 자동차 업계에서는 능력이 있는 디자이너로 평가를 받아왔다.

1959년형 오스틴 미니 설계도 <출처: BMW코리아>

알렉 이시고니스를 만난 레오나드 로드는 몇 가지를 당부했는데 핵심은 ‘경제적인 차’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먼저 시중에 나와 있는 소형차들보다 크기가 작은 3.05m로 길이를 맞춰야 하며, 개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존에 개발된 엔진을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3륜차 버블카가 아닌 4기통 엔진을 탑재한 4륜차를 주문했다. 여기에 성인 4명이 탈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실내공간도 요구했다.

이시고니스는 회장의 제안을 수용했고 이내 새로운 소형차 개발에 돌입했다. 하지만 길이 3m에 높이·너비가 각각 1.3~1.4m에 불과한 차체에 성인 4명이 들어가는 차를 제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존엔 차 앞쪽에 엔진을 얹고 긴 동력 전달축을 통해 후륜을 구동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세로 방향의 엔진과 변속기 배치는 일정 크기의 차체에서 더 이상 실내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1959년형 미니. 모리스 미니 마이너(Morris mini minor)로도 불렸다. <출처: (cc) DeFacto at Wikipedia>

이시고니스는 수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엔진을 세로가 아닌 가로 방향으로 놓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시고니스는 모리스 모델인 A30의 850㏄ 엔진과 변속기를 가로로 배치하고 작은 바퀴를 장착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1930년대 말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의 비틀과의 큰 차이점이라면, 비틀은 화물실과 객실, 엔진 등 3박스를 바탕으로 해서 뒤쪽에 엔진을 탑재했다면 미니는 같은 3박스 차체였으나 엔진을 앞에 탑재했다는 점이다. 또한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4개의 휠에 독립식 서스펜션을 탑재시켰다. 그의 동료이자 서스펜션 전문가인 알렉스 멀튼(Alex Moulton)이 제작한 고무 소재의 서스펜션 덕에 보다 가벼워지고 민첩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1959년형 미니의 실내 인테리어. <출처: (cc) DeFacto at Wikipedia>

주행성·공간성 탁월, ‘20세기의 유럽차’ 명성 이어가 = 소형차 개발에 착수한 지 8개월 만에 실험용 차가 제작됐다. 이 차를 직접 몰게 된 레오나드 로드 회장은 큰 만족감을 보였고 1959년 8월 26일 미니는 세상에 공개됐다. 당시 미니는 오스틴 세븐(Austin seven)과 모리스 미니 마이너(Morris Mini Minor)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미니의 이름은 레오나드 로드 회장이 이시고니스에게 ‘미니어처’와 같은 작은 크기의 자동차를 개발해 달라고 해서 명명됐다고 한다.

1961년 미니는 최고시속 112㎞/h의 속도를 냈고 핸들링이 특히 좋았다. 미니를 몰아 본 많은 사람들은 특유의 스포티한 주행성능과 탁월한 공간 효율성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최신 기술에 높은 실용성을 보유하고도 가격이 저렴해 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차체 밖으로 드러난 접합부 때문에 초기 모델은 방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았다.

1965년 몬테 카를로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1964년형 미니 쿠퍼 S <출처: (cc) DeFacto at Wikipedia>

미니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받게 된 데는 랠리에서 거둔 탁월한 성적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경주차 제작자인 존 쿠퍼(John Cooper)가 기존의 미니를 튜닝해 997㏄ 배기량에 65마력, 최고시속 137㎞/h 로 끌어올렸다. 1963년에는 성능을 대폭 개선한 쿠퍼 S(Cooper S)도 생산됐다. 이러한 성능 개선으로 몬테카를로 랠리의 3회 우승 등 랠리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지만 강한’ 이미지의 미니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클래식카로 입지를 굳혀갔다.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는데, 익히 알려진대로 1969년 영화 ‘이탈리안 잡’에서, 영국 BBC의 코미디 ‘미스터 빈’과 2002년 ‘본 아이덴티티’에 모습을 드러내며 식지 않는 인기를 반영했다.

이후 미니는 영국의 로버 그룹으로, 다시 1990년대 말 BMW그룹에 인수되면서 포드 모델 T와 함께 ‘20세기의 유럽차’로 선정되는 등 명성을 21세기에도 이어가고 있다. 2001년 뉴 미니가 출시돼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은 전 세계를 무대로 쿠페와 해치백, 컨버터블, 로드스터, SUV 등 다양한 모델들이 출시되고 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오스틴 미니(1959) 제원
엔진 형식 : 0.9ℓ 직렬 4기통 / 배기량 : 850㏄ / 최고속도 : 112㎞/h / 차체형식 : 2도어 살룬 / 트랜스미션 : 4단 수동 / 최대출력 : 34.5hp·5500rpm / 최대토크 : 7.4㎏·m·3600rpm / 전장 X 폭 X 전고 : 3050㎜ X 1400㎜ X 1350㎜ / 휠베이스 : 2040㎜ / 총 중량 : 617㎏ / 디자이너 : Alec Issigonis / 생산년도 : 1959~1967년 / 생산국가 : 영국 롱브릿지 등 / 생산대수 : 119만대(1959~196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