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車 디자이너

8. 포르쉐 왕가의 전설, 페르디난트 포르쉐

안광호 기자

아널드 슈워제네거, 톰 크루즈, 제임스 딘, 더스틴 호프만…. 이름만으로도 영화 팬들을 설레이게 하는 세계적인 스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바로 ‘포르쉐’(Porsche) 마니아라는 사실이다.

20대에 요절한 ‘세기의 반항아’ 제임스 딘은 마지막 가는 길을 자신의 애마 ‘포르쉐 550 스파이더’와 함께 했고 톰 크루즈와 아널드 슈워제네거, 데이비드 베컴 등은 어느 자리에서든 ‘포르쉐 911’의 광신도임을 자처한다.

포르쉐는 예나 지금이나 고성능 클래식카의 대명사로 불린다. 스포츠카 이상의 성능은 물론 ‘개구리 눈’으로 대변되는 큼지막한 헤드램프 등 유려한 디자인은 보는 이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페르디난트 포르쉐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페르디난트 포르쉐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10대에 전기회사 취직…최초의 하이브리드 차 개발

자동차 왕가(王家)의 역사는 설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1875~1951)로부터 시작됐다. 체코의 리베레츠(Libererc·현 독일의 Reichenberg)에서 태어난 그는 기술자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기계에 대한 대단한 재능을 보였고, 10대에 공업학교에 들어갔다.

로너-포르쉐. 포르쉐가 개발을 주도한 최초의 하이브리드 차 (cc) Wikipedia at Alofok.

로너-포르쉐. 포르쉐가 개발을 주도한 최초의 하이브리드 차 (cc) Wikipedia at Alofok.

18살 때 비엔나의 ‘벨라 에거(Bela Egger) 전기회사’에 취직한 그는 일이 끝난 후에는 지역 공과대학에서 몰래 강의를 들었다. 전기회사에서 5년간 근무하는 동안 전기모터를 개발하는 등 엔지니어로서 그의 열정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단했다.

23살이 되던 해 그는 다른 국가의 황실이나 왕실의 VIP들에게 마차를 맞춤 제작하는 회사인 ‘야콥 로너’(Jakob-Lohner)의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동차시대의 도래를 예감한 이 회사는 마차 대신 자동차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첫선을 보인 차가 ‘로너-포르쉐’(ohner-Porsche)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개발작업을 주도한 이는 바로 포르쉐였다. 이 차는 엄청난 무게의 전기모터 2개를 장착했다. 각자 앞쪽과 뒷쪽 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형태로, 휘발유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한 최초의 하이브리드 차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돼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02년 군대에서 운전요원으로 복무한 그는 1906년 오스트로-다임러(Austro-Daimler)에 디자인 책임자로 부임했다. 포르쉐는 이 곳에서 85마력의 ‘프린츠 하인리히’(Prinz Heinrich)를 제작했다. 오스트리안 제국 황제 빌헬름 2세의 동생 헨리 왕자가 이 차를 개발해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임러 입사 10여년 만에 그는 임원으로 승진했고 강의를 훔쳐들어야 했던 비엔나공과대학교에서 명예공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히틀러가 KdF 생산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cc) Wikipedia at BArchBot

히틀러가 KdF 생산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cc) Wikipedia at BArchBot

1931년 포르쉐 설립…P-바겐 등 제작

다임러-벤츠 등 여러 회사를 거친 그는 1931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에 스포츠카와 경주용자동차를 전문 제작하는 ‘포르쉐 엔지니어링 오피스’(Porsche Engineering Office·1950년부터 포르쉐로 명명)를 설립했다.

아들과 사위, 옛 동료들과 힘을 합쳐 회사를 설립한 포르쉐는 초기에는 중형차 위주로 제작을 하다 사세를 확장하면서 다른 자동차 메이커의 콘셉트카를 외주받아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경주차에도 관심이 많았던 포르쉐는 1934년 ‘실버 애로우’(Silver Arrow)로 불렸던 P-바겐(P-Wagen)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다 일생일대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바로 ‘전쟁광’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와의 인연이다. 1933년 독일의 수상이 된 그는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우선 경제부흥을 위해 자동차산업의 성장이 우선돼야 했고 같은 맥락에서 고속도로의 건설도 필요했다.

1955년형 비틀 생산 공장의 모습〈왼쪽. 출처: 폭스바겐 코리아〉과 1959년 미국 시장을 공략한 폭스바겐의 'Think Small' 캠페인〈출처: 폭스바겐 코리아〉

1955년형 비틀 생산 공장의 모습〈왼쪽. 출처: 폭스바겐 코리아〉과 1959년 미국 시장을 공략한 폭스바겐의 'Think Small' 캠페인〈출처: 폭스바겐 코리아〉

히틀러가 생각한 경제부흥책은 국민 누구나 자동차를 소유해 산업 경기를 띄우는 것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소형차에 관심이 많았던 포르쉐에 주목했고, 이듬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히틀러는 포르쉐와 마주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어른 2명과 아이 2~3명이 충분히 탈 수 있어야 하며 7ℓ의 연료로 100㎞를 갈 수 있을 것, 또 값은 1000마르크 이하일 것 등이다. 그러면서 이 차의 개발에 필요한 공학연구소를 만들어주고 연구비 등도 전부 지원해주기로 했다. 포르쉐가 우려했던 가격 문제는 국민들이 우표 900마르크 어치를 구입하면 차 한 대를 준다는 방식으로 국민차 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1936년 공개된 프로토타입은 수평대향 4기통 1.1ℓ 엔진에 최고속도 98㎞/h, 최대출력 26.5마력의 성능을 지녔다. 간단한 구조와 우수한 내구성이 장점이었다. 특히 후면에 위치한 엔진과 후륜구동의 RR방식은 나중에 포르쉐가 설계한 차들의 시초가 됐다.

디자인에 불만을 가졌던 히틀러는 70일간의 성능테스트 결과를 보고 크게 만족했다. 그리고 이 차의 이름을 ‘KdF’(Kraft durch Freude)라고 불렀는데, ‘기쁨의 힘’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1938년형부터 1975년형까지 전시된 비틀〈출처: 폭스바겐 코리아〉

1938년형부터 1975년형까지 전시된 비틀〈출처: 폭스바겐 코리아〉

비틀·포르쉐356 등 역작 배출…20개월 감옥생활도

포르쉐는 히틀러와 달리 이 차의 이름을 폭스바겐(Volkswagen·독일어로 국민차라는 뜻이다)으로 불렀다. 독일의 소형차 생산을 예의주시하던 미국에서는 이때부터 이 차의 외관에서 모티브를 얻어 비틀(Beetle·딱정벌레)로 부르기 시작했다.(당시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에서 이 차를 비틀로 언급했다고 한다). 비틀은 지금까지 2100만대 이상, 역대 3번째로 가장 많이 팔리는 역사적인 모델이 됐다.

천재적인 디자이너에 의해 탄생한 소형차 비틀은 뛰어난 성능과 내구성, 앙증맞은 디자인,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인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국민차’ 비틀의 판매로 거둬들인 돈은 고스란히 전쟁 준비에 쓰였다. 전쟁 중에 폭스바겐 공장은 군수공장으로 바뀌었고 비틀은 생산이 중단됐으며, 그 동안 만들어 두었던 KdF는 전쟁에 이용됐다.

2011년형 제3세대 비틀〈출처: 폭스바겐 코리아〉

2011년형 제3세대 비틀〈출처: 폭스바겐 코리아〉

히틀러는 비틀의 주문과 함께 포르쉐에 군용 탱크의 개발도 주문했다. 타이거 1, 타이거 2, 엘레판트(Elefant) 등이 그것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동시에 포르쉐의 공장은 군용차 생산공장으로 변했다.

자국 독일이 패전국이 되자 차와 탱크를 군수물자로 지원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 머물던 포르쉐는 전범으로 체포됐다. 아들 페리(Ferry)는 잡혔다 바로 풀려났으나 포르쉐는 20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포르쉐 기업은 아들 페리가 이끌었다. 자유의 몸으로 1949년 독일로 돌아온 포르쉐는 아들과 함께 포르쉐 왕가의 재건에 나섰다. 포르쉐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포르쉐 356’이 공개된 것도 이 때다. 수작업으로 49대만 제작된 포르쉐 356은 이후 17년간 7만8000대가 생산됐으며 포르쉐 재기의 밑거름이 됐다.

포르쉐는 이후에도 914와 924, 벤츠와 재규어의 여러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켰다. 20세기 최고 또는 천재 디자이너로 이름을 남긴 포르쉐는 1950년 심장마비로 쓰러진 후 이듬해 1월30일, 생전 얻었던 명예와 영광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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