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상속세 만지작…‘유산취득세’가 대안일까

안광호 기자

윤석열·추경호 “기업 세 부담 커… 유산취득세 전환 검토”

학계·시민단체 “개편하려면 양도세도 함께 부과해야”

지난해 12월 1일 충남 천안시를 찾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신부동 문화공원 근처 카페에서 청년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 후보는 이날 천안 충남북부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며 집권 시 현행 상속세를 개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일 충남 천안시를 찾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신부동 문화공원 근처 카페에서 청년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 후보는 이날 천안 충남북부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며 집권 시 현행 상속세를 개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에서 상속세 개편 논의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상속세 개편 의지가 강하다. 경제사령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상속세 공제 항목을 늘리고 세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정부 임기 내 상속세가 아예 폐지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속세 완화는 재계의 숙원 중 하나다. ‘친시장·기업규제 완화’를 천명한 윤석열 정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완화되는 방향으로 개편될 가능성이 높다. 해묵은 상속세 개편 논쟁도 재현될 조짐이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부의 세습과 자산 불균등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부의 대물림 방지를 위해 엄격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상속제 취지에 맞게 피상속인(사망자)이 물려주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먼저 부과하고, 나머지 자산에 대해 상속자에게 유산취득세를 부과하는 게 조세 체계상 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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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상속세 개편 요구, 왜

한국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을 기준으로 납부해야 할 세액을 결정하는 ‘유산세’ 방식이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24개국 중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개국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상속세 세율은 물려받은 재산에서 각종 공제를 제외한 과세표준에 따라 10%(1억원 이하)에서 최고 50%(30억원 초과)까지 적용해 세금을 매긴다. 과세표준 구간별로 1억원 이하에 10%가 붙어 1000만원, 1억∼5억원 구간에서는 1000만원+1억원 초과금액의 20%, 30억원 초과의 경우 10억4000만원+30억원 초과금액의 50% 등이 적용되는 식이다. 고인이 최대주주일 땐 여기에 20%를 할증(중소기업 제외)한다. 이럴 경우 최고세율은 60%가 된다. 최고세율 50%는 OECD 평균 최고세율(약 25%)의 2배로, 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총조세 대비 상속세 비중도 2020년 기준 2.8%로, 2019년 OECD 평균인 0.4%보다 높은 수준이다.

재계가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고 토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업 오너의 자녀가 상속세를 내려고 보유 주식 지분을 내다 팔아야 할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재계에서는 “1965년부터 2013년까지 48년간 상속세가 있는 OECD 회원국 16개국을 실증분석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세수 비중이 0.1%포인트 상승할 때 경제성장률은 0.6%포인트 하락하고, 민간투자 증가율은 1.7%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분석결과도 인용한다. 상속세 수입이 늘수록 국가경제가 악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생전에 소득세를 부과한 후 사후에 상속세까지 매기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주장도 나온다. 또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급등으로 과거에 비해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중산층이 늘어난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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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3월 인수위에 전달한 ‘신정부에 바라는 기업정책 제안서’에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25%로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최대주주 주식 할증(20%) 폐지, 가업상속공제 대상에 대기업 포함, 유산취득세 전환 등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과 추 부총리 후보자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기업이 영속성을 갖고 잘 운영돼야 근로자의 고용안정도 보장된다”며 상속세 개편 의지를 내비쳤다. 추 후보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던 2019년 5월 대주주가 주식을 상속받을 때 세금을 추가로 매기는 주식할증과세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담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개정안에는 최고세율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세율구간을 4구간에서 3구간으로 축소하고, 구간별로 세율을 인하(10~40%→6~30%)하는 방안도 담았다. 추 후보자는 개정안 발의 취지에 대해 “실현되지도 않은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해 징벌적으로 과세하는 것은 실질과세 원칙에 위배된다. 중산층 자녀세대로의 원활한 자산 이전 촉진과 소비 활성화를 통한 경제 활력 제고”라고 설명했다. 추 후보자는 이후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기업에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대물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선진국에서 왜 상속세가 없어졌는지, 왜 외국은 기업승계에 대해 많은 혜택을 주는지를 잘 살펴보고 국민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면서 상속세 개편(완화) 당위성을 역설해왔다.

이런 분위기 탓에 문재인 정부에서도 상속세는 꾸준히 완화하는 쪽으로 바뀌어왔다. 지난해 12월 통과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통해 올해부터 가업상속공제 적용을 받는 중견기업의 범위를 매출액 기준 3000억원에서 4000억원으로 확대했고, 상속세 연부연납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연부연납이란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 유가증권 등 납세 담보를 제공하고 일정기간 세금을 나눠 낼 수 있게 한 제도다. 2023년 1월 1일 이후 상속 개시분부터는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문화재나 미술품 등을 통한 물납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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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세율 낮고 공제 과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상속세는 일부 자산 상위층에 국한된 세금인데 마치 보편적인 세금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 펴낸 ‘2022 대한민국 조세’를 보면 2020년 기준 상속세 과세자 수는 1만181명으로 전체 피상속인(35만1648명)의 2.9%에 불과했다. 2016년 이후 5년간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대부분이 과세미달 상속자(전체의 약 97%)로 확인된다. 유산을 물려받는 상속자 100명 중 실제 상속세를 납부하는 대상자는 약 3명에 그친다는 의미다.

공제 항목이 많아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실효세율)은 명목세율보다 훨씬 낮다는 지적도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소속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상속세 주요 쟁점에 대한 검토의견’ 보고서에서 “각종 공제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실효세율은 명목세율(10∼50%)보다 크게 낮은 0.55∼35.1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계를 중심으로 상속세의 명목세율이 높다고 비판하지만, 실제 다른 나라의 경우 자산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은 우리보다 대부분 높다”면서 “지금의 상속세 개편 논의는 전형적인 부자 감세”라고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해 10월 발간한 ‘OECD 회원국들의 상속 관련 세제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높다는 주장에 대해 “각 국가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실효세율 측면에서 각종 공제제도나 기존 소득세와의 관계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므로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고 밝혔다.

현 상속세에는 10개 안팎의 공제 항목이 있다. 대표적으로 기초공제(2억원)와 성인 자녀(1인당 5000만원) 등 인적공제가 있다. 기초공제에 인적공제를 합한 금액과 일괄공제(5억원) 중 큰 금액을 택해 과세표준에서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배우자 공제도 최소 기준이 5억원이다. 통상적으로 상속받은 재산 중 최소 10억원 정도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순금융재산가액이 2000만원 이하인 경우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 금융재산상속공제와 최대 6억원의 동거주택 상속공제 등도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가업을 상속할 때는 최대 500억원까지, 영농 상속의 경우에는 20억원까지 공제 혜택을 받는다. 참여연대는 2019년 5월 발표한 이슈리포트 ‘상속세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에서 “상속세의 실효세율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상속세의 공제가 과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천명한 윤석열 정부에서 보편적인 증세를 통한 세제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4월 6일 참여연대 토론회에서 “한국 조세정책의 근본적 문제는 재정지출 구조에서 경제부문 지출 비중이 크고 고소득·고자산가에게 유리하게 세제가 설계돼 있다는 것”이라며 “다각적인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한편 세원을 확대하고 누진적 보편증세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5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잠시 얼굴을 만지고 있다. 추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기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현행 상속세 제도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사진기자단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5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잠시 얼굴을 만지고 있다. 추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기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현행 상속세 제도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사진기자단

■상속세 개편 어떻게

윤석열 정부도 당장은 상속세율 인하와 같은 극단적인 처방은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추 후보자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최근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에서 “상속·증여세율 조정은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과세 형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자산 불평등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는 상속세율 조정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는 여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대신 ‘유산취득세’를 대안으로 적극 검토 중이다. 현 상속세 부과 체계인 유산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총액에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인 반면 유산취득세는 재산 총액을 상속인 수만큼 나눈 후 세율을 적용한다. 상속인의 유산 취득가액에 대해 각각 세액을 계산하는 만큼 세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OECD 24개국 중 20개국이 유산취득세를 적용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선거 과정에서 “우리나라 상속세는 받는 사람 기준으로 계산하지 않고, 피상속인의 재산 자체를 기준으로 과세를 한다. 받는 사람이 실제로 받는 이익에 비해 과도한 세율을 적용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산취득세 전환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추 후보자도 “현행 상속세 제도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연구용역과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통한 의견 수렴 등을 거쳐 개편 시기 및 방법 등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검토한 바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상속인 각자의 담세력에 맞춰 과세할 수 있고 증여세 체계와 일관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 필요성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인수위 안팎에서 상속세를 내지 않는 지역특구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 상임자문위원을 맡았던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인수위에서 상속세 프리존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했다. 윤석열 정부는 장기적으로 상속세를 내지 않는 지역특구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오 회장은 “앞으로 기회발전특구의 경우 상속세 감면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상속세를 완전히 없애는 쪽으로 파격적인 조치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유산취득세 전환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유산취득세 방식은 세 부담의 감경을 도모하기 위해 허위의 분할신고가 성행할 우려가 있고, 유산분할의 실태에 관한 공시가 불비돼 있는 경우에는 적정한 세무집행이 곤란한 점 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고 했다. 또 상속·증여세법의 모든 규정을 바꿔야 하는 문제여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박 교수는 “상속세가 대다수의 국민과는 무관한 세목이란 점에서 유산취득세 전환으로 실효세율을 더 낮추면 부의 세습과 자산의 불균등 문제가 더 고착화할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그간 공정을 강조해온 만큼 상속세 개편을 추진하려면 피상속인의 주식이나 부동산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먼저 부과하고, 이후 남은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자에게 유산취득세를 걷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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