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추악한 미래로 인류 파멸되지 않으려면…”

뉴욕 | 김경학 기자    이창준 기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 이달 방한

<2023 경향포럼>서 현 위기 진단·해법 제시

“거대 위협 현실화되면 인류 추악하게 파멸

아시아 긴장 고조되지만 전쟁 발발 않을 것”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닥터 둠(Dr. doom)’.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64)의 이름 앞에 항상 붙는 수식어이자 그의 별칭이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질 수 있음을 수차례 경고했고, 그의 말대로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가 발발해 파멸 또는 죽음을 의미하는 ‘둠’이라는 어두운 별칭을 얻었다.

다소 잠잠했던 그는 지난해 10월 책 <초거대 위협>을 통해 강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국내에는 지난 2월 번역 출간됐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반된 상태), 팬데믹 기간 폭증한 민간과 공공 부채, 고조되는 지정학적 갈등,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기후위기, 질병, 전쟁 등 말 그대로 초거대 위협들이 서로 융합해 생애 최악의 경제 재앙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루비니 교수는 이달 한국을 찾는다. 오는 28일 <2023 경향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성장을 넘어 - 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열리는 <2023 경향포럼>에서 현재 세계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 패러다임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강연에 앞서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에서 루비니 교수를 직접 만나 대담을 진행했다.

‘닥터 둠’에 걸맞게 그는 “서로 얽히고설킨 위협들을 제어할 정치적 능력이나 의지가 없게 됐을 때” “매우 추악한 미래로 이어져 경제적, 금융적 위기뿐 아니라 지구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며 현재 위기 상황을 냉철하게 평가했다. 다만 “전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과제”라며 다양한 위협과 문제들이 상존하고 더 심화하겠지만 해결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루비니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다음은 루비니 교수와의 일문일답.

- ‘닥터 둠’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내가 ‘닥터 둠’이 아닌 ‘닥터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위협들은 매우 현실적인 위협이다. 나는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이나 지구에 충돌하는 소행성의 위협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 변화부터 지정학적 긴장, 경제 금융 위기, 팬데믹, 탈민주주의나 탈세계화 등과 관련한 위협들은 이미 많은 이들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내가 책으로 쓴 건 이들 위협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연결돼 있는가에 대해서다.”

- 책에서 언급한 다양한 위협 중 우리가 가장 먼저 직면할 위협은 무엇인가.

“우선 단기적으로는 너무 높은 인플레이션과 너무 낮은 성장에 대해 우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공급 충격, 경기 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일 것이다.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있지만, 민간과 공공 부채가 높아진 상황에 이자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외 부채 위기도 우리가 직면할 위협이라고 본다.”

- 언급한 초거대 위협이 모두 현실화돼 디스토피아가 되는 그런 현실을 상상한 적이 있나.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위협이 현실화되는 경우다. 서로 얽히고설킨 위협들이 더 심화하고 우리가 그 위협들을 제어할 정치적 능력이나 의지가 없게 됐을 때다. 이는 매우 추악한 미래로 이어져 경제적, 금융적 위기뿐 아니라 지구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적인 시나리오다. 우리가 각 위협들을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하는 경우다. 운이 따라야 하겠지만 기술 혁신으로 일부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균형으로 나아가게 되는 시나리오다. 역사는 결정론적이지 않다. 우리가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에 도달할지, 유토피아적 시나리오에 도달할지는 국가나 국제적으로 어떻게 대응하고 정책을 해나갈지에 달려 있다.”

정치적 능력이나 의지가 없으면 매우 추악한 미래로 이어져 경제적, 금융적 위기뿐 아니라 지구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것

- 최근 크고 작은 금융사들이 쓰러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가상화폐, 스타트업 등과 거래가 많은 은행들의 위험도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에 자본을 조달하는 금융이 본연의 역할을 넘어선 지는 오래된 것 같다. 현대 금융산업은 탐욕으로 얼룩졌다는 비판도 받는다. 복잡하게 얽힌 금융산업이 부채를 늘리고 초거대 위협을 고조시키는 원인은 아닌가.

“몇몇 은행들이 곤경에 빠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런 은행 중 일부는 시장 가치가 떨어진 장기 채권에 투자했다. 다른 일부는 부실 대출을 했고, 일부는 가상화폐에 돈을 넣었고, 일부는 예금자 층이 빈약해 뱅크런에 금세 고갈됐고, 또 어떤 은행은 예금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은행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은행들의 스트레스는 경제를 약화시키고 더 많은 경기 침체를 양산할 것이다. 특히 시장의 걱정은 크다. 금리가 오를수록 자산의 가치는 하락한다. 일단 경기 침체기에 접어들면, 신용 위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함에 따라 은행들의 자산 중 일부는 부실해질 것이다. 이에 따라 상업용 부동산, 일부 가계 부채 및 일부 사업용 부채의 연체율도 더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 금융사와 소비자 간 정보비대칭, 즉 금융사는 정보가 많은 데 비해 소비자는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거래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정보비대칭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라는 생각도 든다.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은행을 보면, 일반적인 소액 예금주는 은행의 질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은행을 감시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소액 예금은 전액 예금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만약 은행에 맡기는 돈이 수백만달러인 투자자라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은행 주주들과 은행에 장기 채권의 형태로 대출을 해주는 사람들은 모두 은행의 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정교한 투자자들이다. 그런 권한을 주는 건 이들 투자자는 은행이 파산할 경우, 채권 보유자들 다음에 자금을 회수해야 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액 예금은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은행의 품질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소액 예금자들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 자산 가격에 거품이 많이 끼어있다. 지난해부터 거품이 많이 꺼지기 시작하긴 했지만, 미국 집값을 기준으로 보면 앞으로 어느 정도 더 떨어져야 적정하다고 보나.

“거품의 정도는 어느 나라, 지역, 어떤 부분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 10년간 세계 곳곳에서 소득 대비 집값이 아주 급격하게 상승해 웬만해선 집을 장만할 수 없게 됐다. 그 결과로 주택담보대출의 이자율이 장단기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는 집값을 더 감당할 수 없게 한다. 알다시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기관도 정기적으로 세계의 집값을 모니터링한다. 미국 내의 다수의 주택과 캐나다, 북유럽 국가, 영국 런던 같은 지역뿐 아니라 한국 같은 신흥국의 주택 시장에도 거품이 있다. 물론 가장 큰 주택시장 거품 중 하나는 중국이다. 집값이 얼마나 떨어져야 적정한지에 대해 아직 알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 개별 국가에 따라 다르고 경기 침체가 얼마나 심각할지에 달려 있기도 하다. 다만 역사적인 평균으로 비춰보면 주택 거품이 있는 국가에서는 현재 주택 가격이 적어도 10%, 때로는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20%가량 더 높다고 말할 수 있다.”

- ‘이제 성장 시대는 끝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진국 그룹을 기준으로 본다면 선진국들이 제로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잠재적 성장은 인구 증가, 생산성 증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발전해 있는지에 달려있다. 1인당 소득이 낮은 국가들은 부유한 국가들보다 잠재적인 성장률이 높은 경향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한국과 같은 성숙한 경제 모델에 도달한 국가들은 낮은 잠재 성장률을 보인다. 인구의 노령화가 잠재적 성장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구 노령화는 선진 경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한국, 대만 같은 몇몇 신흥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잠재적 성장이 예전 같지 않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인구 감소 추세와 높은 인구당 소득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을 높인다면 여전히 왕성하게 성장할 수 있다. 생산력 제고는 노동 기술, 기술 혁신, 기술의 혁신에 대한 투자, 크게 성장할 미래 산업에서 경쟁적 비교우위를 갖추는 것에 달려 있다. 그래서 어떤 국가들은 이미 고임금에 인구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성장율을 유지한다. 물리적 자본과 인적 자본, 제도, 기술, 혁신, 지식에 투자를 한다면 여전히 좋은 잠재적 성장을 할 수 있다.”

- 기존의 성장률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있는데 ‘앞으로는 성장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양적인 성장을 측정하는 지표대신 질적 성장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그런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GDP나 GDP 성장률은 성장 척도를 완전하게 측정하지 못한다. 경제성장에 따른 평등과 관련된 요소 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은 인간 개발 지표들을 측정한다. 여기에는 기후 변화를 돌보고, 사회적 결속력을 갖추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제한적으로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을 보유하고, 사람들의 기술과 교육에 투자하고, 남겨진 사람들을 돕기 위한 좋은 사회 안전망을 가지고 있는 등의 요소가 포함된다. GDP나 GDP 성장률보다 복지에 비중을 둔 측정지표가 있기도 하지만, GDP로 시작해 필요에 따라 지표를 개선해나갈 수도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민간 부문, 기업가, 혁신 등에서 나온다. 그러나 정부 없이는 안 된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 지금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탈성장이나 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 이후의 체제에 대해 구상해본 적이 있나.

“나는 최선의 경제 체제의 한 축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자본주의라고 하면 다른 한 축은 정부다. 정부가 다양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공공 서비스는 교육이 될 수도 있고, 의료, 연금, 사회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소득과 복지 불평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이나 민간이 하지 않는 공공 인프라에 대한 투자 정책 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시장경제가 잘 운영될 수 있는 제도적 틀, 산업이나 금융 등에 대한 적절한 감독과 규제가 필요하다. 금융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순수한 자유방임주의적 서구 자본주의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체제다. 따라서 최선의 경제 체제는 혼합 경제 체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민간 부문, 기업가, 혁신 등에서 나온다. 그러나 정부 없이는 안 된다. 정부는 다양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정부가 중요하게 나서는 건 일종의 사회주의 아닌가.

“미국, 남유럽, 북유럽, 일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진국뿐 아니라 성공한 신흥국 한국도 혼합 경제 체제다.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는 소득과 부에 대한 높은 과세와 모든 공공 서비스가 정부 주도로 매우 광범위하게 제공하는 체제다. 미국은 정부의 역할이 약간 작고 민간 부문의 역할이 더 큰 조금 다른 형태의 혼합 경제 모델이다. 이처럼 혼합 경제 체제라고 부르긴 하지만 정부의 크기와 지출, 과세 수준에 따라 다양한 모델이 있다. 어떤 모델이 가장 잘 작동하는지는 국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하나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현재 1인당 소득 수준이 높은 아시아 국가들 역시 어느 정도 혼합 경제 체제로 운영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것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이 ‘경제 악당’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지정학적 긴장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은 현재 미국, 유럽, 미국의 우호국과 동맹국이 요구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경제 무역, 화폐 통화, 기술, 정치, 지정학적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지정학적 압력은 어느 정도의 탈세계화, 세계 경제의 분열, 미국과 중국 간의 분리, 글로벌 공급망의 분리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 기술, 정보의 이동이 세계화된 무역 질서 속에서 동시에 국가 안보를 위해 일부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법을 병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지금보다 더 파편화되고 덜 개방적인 글로벌 무역 시스템이 도래할 것이라는 점은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자유 무역이 아니라 안전한 무역, ‘프렌드쇼어링’을 더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긴장이 존재하는 한 세계는 그렇지 않을 때 보다는 덜 세계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탈세계화가 일어나는 정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고 본다.”

- 불평등이나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 소득 혹은 자본 소득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일종의 사회주의 개념으로 보이는데 원래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것인가, 아니면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인가.

“최근에 든 생각은 아니다. 과도한 불평등이 나쁘다는 걸 믿기 위해 사회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IMF가 학자들과 연구한 결과,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높은 나라에서는 불평등이 결국 사회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경제성장률을 낮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분쟁에서 진 사람들에게도 투표권이 있다. 그들은 반시장적인 정책에 투표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포퓰리즘적이다. 그들은 자본에 대한 과세와 소득의 재분배를 강화하는 의견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실제 불평등이 극단적인 사회는 노골적인 폭력까지는 아니라도 역사적으로 소요나 내전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계몽된 자본가라면 누구나 사회 복지 시스템을 만들고, 어느 정도 합리적이지만 과도하지 않은 누진세를 만들어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과도한 불평등은 결국 사회적 기능 장애로 이어질 뿐 아나라 경제 성장을 더 약화시키기 마련이다.”

- 한국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한국은 지난 50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빠르게 고성장한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매우 가난한 상태에서 출발했고, 천연자원도 없었다. 역설적으로 한국처럼 높은 소득 수준을 달성한 국가들에게는 자원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천연자원은 축복이지만, 때로는 낮은 수준의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 경제학자들은 ‘자원의 저주’라고 부르는데 그냥 땅만 파면 기름이나 광물이 나오니 생산성 제고에 투자할 강한 인센티브가 없게 되는 것이다. 지대를 추구하는 그 사회의 기득권 계층은 천연자원에서 얻어진 이익과 혜택을 전용하려 하고 그러다보면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오히려 경제 성장이 정체되는 경우로 귀결된다. 반면 한국뿐 아니라 이스라엘,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은 모두 자원이 많이 없어 기름, 에너지, 광물 등을 수입에 의존한다. 그들이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교육과 기술, 인적 자원에 투자하는 등 좋은 제도를 갖춘다. 정치가 안정되며 생산성, 성장률을 높일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운이 좋아 땅속에 모든 것이 묻혀 있고, 펌프질만 하면 자원이 나온다면 부패 또는 어떤 의미에서 게으르게 된다. 이 때문에 자원의 저주를 받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 자원은 축복보다 저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한국이 비해 천연자원과 산업시설도 더 많았다. 한국은 북한보다 더 가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자국민과 민간 부문에 투자를 집중한 결과 아주 부유하고 성공적인 국가가 된 반면 북한은 여전히 매우 가난해 인민들이 배고픔을 겪고 있다.”

-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국의 출생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경제성장률도 많이 낮아질 것으로 관측되는데 한국이 성장률 유지를 추구한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인구가 줄어드는 국가들은 이주민을 유치해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를 만회하려고 한다. 다만 그런 방법은 문화 또는 여타 다른 이유로 매력적인 해법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인구 고령화는 이전처럼 큰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향후 수십년 안에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로 인해 노동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이 구식이 되는 걸 알게 될 것이고, 심지어 영원히 기술적 실업을 겪을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측면에서 인구 감소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기술이나 재교육, 평생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점차 세계화되고 디지털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번창할 수 있다. 남겨진 인구와 노동자들이 하이퍼 디지털 세계 경제에서 성공할 수 있는 도구를 쥐어주는 게 과제가 될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시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건 한국, 일본, 인도는 물론 중국과 심지어 미국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 현재 진행 중이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가장 큰 위협 중의 하나가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외에 대만이나 북한 등지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단 우크라이나 이후 또 새로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불행히도 ‘지정학적 불황’,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잔인한 러시아, 중동의 긴장, 이스라엘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 냉전 기류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다. 그리고 평양의 독재자도 호전적이 되어 한국과 일본 옆 해안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현재의 냉전 양상이 더욱 냉전이 돼 결국에는 진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만 문제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 세계에 재앙이 될 것이고 단순한 재래식 전쟁도 아닐 것이다. 핵무기로 인해 지구가 파괴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토 분쟁이라는 광범위한 긴장이 있긴 하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아시아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상대적인 평화가 상존했다. 이 상대적인 평화는 진보와 번영의 토대가 됐다. 아시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건 한국, 일본, 인도는 물론 중국과 심지어 미국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물론 단계적으로 긴장이 확대될 위험은 있다. 나는 모든 당사자들이 한 자리에 앉아 어떤 것이 협력 가능한지, 어떤 것이 협력 불가능한지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부문이나 산업에 대한 미국과 중국 및 기타 강대국의 대립이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 경제 파탄뿐 아니라 지구 파괴, 핵전쟁, 핵겨울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싸움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승자는 없을 것이다.”

- 그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나는 양측이 먼저 서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그들이 어디에서 협력할 수 있는지, 부딪히는 부분을 축소하고 전략적 경쟁을 위한 규칙을 세우는 방식 등을 찾아내야 한다. 최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한 연설에서 중국에 부과할 무역과 기타 기술적 제재는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중국을 가난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국가 안보상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선택적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옐런 장관은 국가 안보상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일련의 기준도 설명했다. 물론 여기에 미국과 중국 모두가 동의하려면 아직 많이 멀었다. 어느 쪽도 상대방의 눈을 가리지 않는 한 경쟁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냉전으로 심화하지 않고, 완전한 탈동조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한 행성에 살고 있다.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없다

- 결론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험이 관리될 것으로 전망하는 건가? 닥터 둠이라는 별칭과 달리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나는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현실주의자라 생각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향후 수십년간 평화와 진보, 번영을 누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한 것이다. 다만 당장은 내가 말한 방향으로 가지는 않는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제 대선 주기라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에 강경하고 공격적으로 보이기 위해 소음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베이징을 방문했는데, 중국도 외교 정책 기관이 과도하게 미국을 비판했고 공격적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또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을 너무 급하게 추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미국과 중국 간의 ‘말의 전쟁’이 확대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중요한 건 점점 더 고조되는 건 피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양측은 서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부분도 있겠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한 쪽이 방어적 행위를 취한 게 상대에게는 공격적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어 사실 양국 관계에 대해 나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점점 갈등이 고조되는 걸 피하기 위해 해야할 일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양측이 현명한 방향으로 선회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오는 28일 <2023 경향포럼>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미리 물어봐도 될까.

“내 책 <초거대 위협>에서 언급한 위협 중 몇가지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예정이다. 위협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좋은 리더십과 국가와 국제사회의 좋은 정책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한 행성에 살고 있다.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없다. 서방과 그들의 친구, 우호 동맹국이 상대방을 이길 수도 없고 패할 수도 없다. 내가 정리한 많은 위협은 우리가 협력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포지티브섬 게임이다. 다만 여러 위협 중 기후 변화, 유행병, 무역 등은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우리가 파멸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지난 75년간 유지된 상대적인 평화, 진보, 번영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다. 이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협력이 불가피하다. 전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대담 뉴욕 |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정리 김경학·이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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