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나도 ‘집 나간’ 명태…‘명태 살리기’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되나

안광호 기자

2016년 완전양식 기술을 세계 최초 개발했지만

치어 183만7000마리 방류…성어 17마리 포획

양식해봐야 러시아산에 비해 가격경쟁력 떨어져

인공양식으로 자란 명태 치어를 동해에 방류하는 모습.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제공

인공양식으로 자란 명태 치어를 동해에 방류하는 모습.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제공

[주간경향] ‘명태 조사선’ 동진호 선장 한동희씨(61)는 한 달에 한 번 바다로 출항한다. 목적지는 강원 고성군 아야진항에서 4~6㎞ 떨어진 해역이다. 조사에는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연구원이 동행한다. 몇 개의 조사 포인트에서 그물을 끌어 올려 명태가 잡혔는지 확인하는데, 자연산 명태뿐 아니라 정부가 방류한 어린 명태(치어)가 다 자란 명태(성어)가 돼 잡히는지도 관심사다. 명태 포획은 2019년부터 금지돼 있다. 동진호는 고성 지역에서 유일하게 지자체 허가를 받아 ‘명태잡이’를 하는 어선이다. 방류한 명태가 동해에 서식하는지, 자연산 명태의 이동경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돕는다. 한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 명태를 잡아 생계를 꾸렸는데, 명태가 사라진 후엔 주로 가자미를 잡으면서 한 달에 한 번 조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아주 드물게 그물에 자연산 명태가 한두마리 혼획되는 경우 말곤 명태를 보기 힘들다”고 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해 12월 15일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덕장에서 주민들이 명태를 내걸고 있다. 연합뉴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해 12월 15일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덕장에서 주민들이 명태를 내걸고 있다. 연합뉴스

시작부터 거창했던 달성 목표

명태는 한때 ‘국민생선’으로 불렸을 정도로 흔했다. 1980년대부터 어획량이 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씨가 말랐다. 정부는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동해 수온이 오르자 산란지와 서식지를 북쪽으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어린 명태인 노가리를 과거 무분별하게 남획한 것도 정부가 꼽는 명태 소멸의 원인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명태 연간 어획량이 정점을 찍었던 1980년대, 노가리 어획량은 전체 어획량의 90% 수준이었다. 이젠 자연산 명태 한마리가 그물에 잡히면 화제가 될 정도로 명태는 희귀종이 됐다. ‘집 나간 생선’이지만 여전히 찾는 사람이 많다. 전체 수입 수산물 중 1위다.

정부가 명태 자원을 복원하겠다며 야심차게 추진한 정책이 2014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사업비 총 248억원 규모의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의 골자는 명태 완전양식 기술을 개발해 대량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동시에 육상에서 키운 치어를 대량 방류하는 것이다. 이렇게 방류된 치어들이 동해에서 어미 명태로 자라면 다시 알을 낳게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이 안착되면 예전처럼 동해에 명태 자원이 넘쳐나게 되리라고 봤다. 당시 해수부는 ‘2020년까지 국산 명태를 식탁에 올리겠다’는 포부도 내놨다.

프로젝트는 해수부와 국립수산과학원, 강원도(한해성수산자원센터) 등이 공동 참여했다. 초반엔 성과도 냈다. 2016년 10월 수정란에서 부화시켜 기른 명태 새끼를 어미로 키워 다시 알을 생산하도록 하는 완전양식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해수부는 완전양식 기술 개발 덕분에 2018년부터는 사업적으로도 대량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또 명태의 대량 종묘생산으로 2021년부터 연간 4800억원(연간 어획량 5만t 가정)의 경제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당시 완전양식 기술 개발을 자축하면서 “현재 수입산 생태 대부분이 일본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방사능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으므로 국내산 명태 양식이 이뤄지면 수입 대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 등 수입산의) 얼린 동태가 아닌 생태가 밥상에 다시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보다 앞선 2015년 12월엔 육상에서 키운 명태 치어를 처음으로 바다에 방류했다. 강원 고성군 대진항 앞바다에 방류된 치어들은 육상 수조에서 몸길이 20㎝로 성장한 1만5000마리다. 해수부 구상은 방류된 치어의 생태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동시에 양식도 추진하는 이른바 ‘투트랙’으로 수산자원을 회복하고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는 방향이었다.

치어 방류와 함께 포획금지 조치도 강화했다. 고성군 앞바다 일대인 저도·북방어장 주변해역(21.49㎢·여의도의 7.4배 면적)을 4년(2015~2019)간 한시적으로 명태 보호수면으로 지정해 포획이나 채취를 전면 금지했다. 이 지역은 동해안 북방한계선 아래 어장으로, 명태가 북한에서 우리 해역으로 회유하는 주요 경로다. 명태 수정란을 확보하기 위해 몸길이 45㎝ 이상 자연산 어미 1마리에 50만원의 현상금도 내걸었다. 이후 2019년부터는 아예 명태 포획을 전면 금지했다. 또 동해를 공유하는 북한과 협력해 명태와 수정란을 확보하고 종묘배양장 설치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 안팎의 평가는 후했다. 2014년 해수부는 자체적으로 선정한 ‘최우수 해양수산 브랜드 정책’으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2016년엔 국립수산과학원의 세계 최초 명태 완전양식기술 개발 성공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하는 ‘10대 과학기술 뉴스’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19년엔 ‘명태의 귀환, 집 나간 국민생선이 돌아왔다’는 제목의 프로젝트 관련 내용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살아 있는 자연산 어미 명태를 잡아온 어민에게 최대 50만원의 사례금을 주겠다는 내용의 포스터.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제공

살아 있는 자연산 어미 명태를 잡아온 어민에게 최대 50만원의 사례금을 주겠다는 내용의 포스터.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제공

10년 지나도 ‘집 나간’ 명태…‘명태 살리기’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되나

명태 자원 회복이 필요한 이유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는 컸다. 소비자 관점에서 수입산이 아닌 국산을 먹었을 때 품질과 비용 측면에서 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수입에 의존하다 보면 명태 수급 불안에 따른 가격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명태 수입이 감소하면 시장 공급물량이 부족해지고,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수입 냉동 명태를 먹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우리 수산자원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국가 경제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양질의 먹거리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종 보전과 회복이라는 생태학적 관점에서도 명태를 살리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해수부의 ‘2021년 수산물 생산 및 유통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 가장 많이 수입된 수산물은 명태다. 중량 기준으로 32만1586t, 금액 기준으로 5억90만달러(약 6460억원)다. 대부분은 러시아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냉동 명태다. 중량 기준으로 러시아산이 전체의 77.0%다. 이어 미국 20.4%, 일본 1.2% 등이다. 여기에 원양선사가 러시아로부터 한·러 어업위원회를 통해 매년 명태 조업할당량(쿼터)을 배정받아 조업해 들여오는 원양산도 일부 포함돼 있다.

이렇게 들여오는 수입산 명태는 냉동 보관 비용 등이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유통업자가 떼가는 몫이 크다. 예를 들어 수입산 냉동 명태가 부산으로 반입된 후 노량진수산시장까지 유통되는 구조를 보면, 부두 하역비, 검수비, 부두에서 보세창고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육상운송비, 냉동창고에 입고과정에서 생기는 하차비, 냉동창고 입고료, 냉동창고 입고 후 냉장료 등의 비용이 포함된다.

실제 같은 해수부 조사 결과에서도 명태의 경우 판매가격에서 유통비가 차지하는 유통비용률이 66.2%에 달했다. 명태를 소비자에게 1000원에 팔면 유통업자가 662원을 가져가는 셈이다. 고등어(66.1%), 오징어(36.3%), 갈치(49.0%), 명태 등 4개 주요 품목 가운데에서 가장 높다. 생산자는 적게 받고 소비자는 비싸게 사는 구조다. 유통업자만 배를 불린다.

특히 러시아 정부가 어떤 이유에서든 공급량을 줄이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는 2022년 1월 내놓은 ‘명태 수급 동향’에서 러시아 정부가 2022년 명태 총허용어획량(TAC)을 2021년 대비 4%가량 감축할 것으로 봤다. 센터는 동향 보고서에서 “이는 러시아 수산해양연구소(VNIRO)의 연구 결과 오호츠크해의 명태 자원량이 감소했기 때문인데 특히 2017~2020년 부화한 명태 개체가 적고, 이로 인해 2024년까지 어획량 감소가 예상된다”면서 “이에 따라 국내 원양 선사와 합작 선사의 안정적인 쿼터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게다가 지난해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수입 명태 가격이 크게 올랐다. 지난 6월 1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2022년 2월 수입산 냉동 명태 1마리당 평균 소매가격(중품)이 2403원인 반면 올해 5월 평균 소매가격은 3830원으로 60%가량 상승했다.

강원 고성군 한해성수산자원센터 내 육상 수조 안에 명태 치어들이 가득 차 있다.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제공

강원 고성군 한해성수산자원센터 내 육상 수조 안에 명태 치어들이 가득 차 있다.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제공

인공양식과 치어 방류가 대안일까

지금까지의 성과는 초라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에 가깝다. 2020년까지 우리 동해에서 잡힌 명태를 식탁에 올려놓겠다는 계획은 달성하지 못했고, 2015년부터 방류한 치어들이 동해에 서식하고 있다는 확신도 얻지 못했다.

세계 최초로 인공양식 기술을 개발하고도 결실을 보지 못한 이유는 뭘까. 우선 양식을 통해 생산한 명태와 러시아 냉동 수입산 명태와의 가격 경쟁력 차이다. 해수부에 따르면 1㎏당 명태 수입단가는 최근 5년간(2018~2022) 환율에 따라 최소 1558~2678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10㎝ 종자를 구입해 2년 사육한 후 출하한 경우 1㎏당 생산 단가는 약 9600원(일반관리비 포함)으로 추정된다. 향후 대량 양식 시스템이 정착된 후 자원이 풍부해진다면 가격 경쟁력에서 지금보단 훨씬 나아질 수 있지만, 아직까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업성이 없다 보니 인공 종자를 사겠다는 곳도 없다. 2019년엔 민간 양식장에서 생산한 3만마리(전장 8㎝ 내외)를 전량 폐기한 일도 있었다.

북한과의 협력 방안도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등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고조됐을 땐 내부에서도 기대가 큰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협력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면서 남북 간 실무적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치어 방류 실적은 저조하다. 지금까지 방류한 183만7000마리 중 5~6년간 자연에서 성장한 후 재포획된 명태는 고작 17마리에 그친다. 프로젝트의 핵심인 인공양식을 통한 대량생산과 치어 방류가 제대로 된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온 상승으로 동해에 방류한 치어들이 성어로 자라고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도 인공양식과 방류를 통해서만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충일 강릉원주대 해양생태환경학과 교수는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보통 수심 200m에서 600m에서 주로 서식한다. 수온은 대략 1~10도, 정확히 말하면 3~5도 정도가 서식하기에 적정하다고 할 수 있다. 명태는 알을 낳기 위해 수면에 근접해 올라오는데, 이때 알들이 바다 표층에 뜨게 된다. 문제는 표층수온이 10도 이하여야 알이 생존해 부화할 수 있는데, 고성이나 속초 등 우리 동해의 표층수온은 그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알이 부화할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버렸다. 정확한 비중을 알 순 없지만, 어미 명태가 낳은 알 중 절반은 정상적으로 부화하지 못하고 소멸할 것”이라고 했다.

조양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명태 산란지와 서식지가 북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고, 무분별한 미성어 남획으로 자원이 줄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동해 명태가 사라진 원인이 단순히 어느 한 가지 때문이 아니고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방류한 치어가 성어가 될 수 없거나, 낳은 알이 부화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아무리 많은 수의 치어를 방류하더라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긴 어렵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까닭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것 아니냐”고 했다.

1982년 11월 동해안의 한 어항에서 잡아들인 명태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2년 11월 동해안의 한 어항에서 잡아들인 명태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장기적 관점에서 생태 데이터 쌓아야

실패로 단정 짓긴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정부는 올해도 치어 10만마리 이상을 동해에 방류할 계획이다. 기존 방류하던 크기인 5㎝급에서 10㎝급 이상으로 키워 12월쯤 방류할 예정이다. 치어 방류 기관인 강원도의 ‘한해성수산자원센터’ 관계자는 “명태 양식 2년 만에 세계 최초로 인공양식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은 수정란 생산과 부화를 통해 생산된 종자가 어미가 되어 다시 수정란을 생산하는 순환체계가 구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재포획된 개체수 17마리가 숫자상으로는 아주 미미한 수준일 수 있겠으나 방류한 어린 명태들이 5~6년간 동해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충일 교수는 “치어 방류를 권장할 만한 ‘동해 명태 자원 회복 대책’이라고 말할 순 없다”면서도 “다만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려면 방류한 치어들이 어디에서 서식하고 산란하는지, 또 어떤 경로로 재포획되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이런 과정을 통해 명태의 생태 데이터를 쌓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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