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미즈노 가즈오 “오늘 주문한 택배가 어제 도착해 있기를 진정 바라는가”

도쿄 | 김경학 기자    도쿄 | 이창준 기자

일본의 대표적 진보 성향 경제학자

미즈노 가즈오 호세이대 교수

“아무 문제도 해결 못하는 G7 소멸 눈앞

포스트 자본주의 대비한 새 모델 대비해야“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도쿄 호세이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도쿄 호세이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70)는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경제학자다. 증권사 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친 그는 경제재정분석을 담당하는 내각부 대신관방심의관, 국가전략실에 해당하는 내각심의관 등으로 정부에서도 일했다.

여러 저서를 통해 성장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성장 신화’를 비판해왔고, 불평등과 제로 성장 등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가 도래했음을 지적해온 미즈노 교수는 2023년 현재를 ‘근대’라 부른다. ‘더 빠르고’ ‘더 멀리’ ‘더 경제적(합리적)’을 추구하는 근대사회의 속성이 유지되는 한 여전히 근대라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미즈노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직접 만나 최근 세계 경제 흐름과 전망을 물었다. 그는 미중 갈등과 전쟁으로 탈세계화 흐름이 심화하고, 파시즘이 대두하는 건 곧 수세기 동안 이어진 근대가 끝을 향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포스트 근대사회의 속성은 근대와 정반대인 ‘더 여유롭게’ ‘더 가까이’ ‘더 관용적’일 것이라며 큰 혼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마련해놔야 한다고 말했다.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왼쪽)가 지난달 25일 도쿄 호세이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왼쪽)가 지난달 25일 도쿄 호세이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다음은 미즈노 교수와의 일문일답.

- 지난달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의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의 양상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은데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탈세계화가 아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대 중국·러시아 등 신냉전 체제로 가는 걸까.

“G7만으로는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인도 같은 글로벌 사우스도 참가하지 않았나. 첫발을 뗸 1970년대 시작은 G5였다. (프랑스) 랑부이예에서 석유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모인 것이 G7의 출발이었다. 1970년대에는 선진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정도가 컸기 때문에 괜찮았을지 몰라도 지금의 G7 회의는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소멸하는, 아마도 올해가 마지막이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다.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신냉전 체제로 이행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는, 그 방향이 더욱 더 명확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독일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가 말한 16세기 육지와 바다의 싸움이 400년 만에 재발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서방에서 지원하고 있죠. 러시아는 중국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육지의 나라 중 최대의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다. 바다의 나라는 미국과 영국일 것이다. 바다의 나라를 대표하는 미국·영국과 육지의 나라인 러시아·중국 구조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근대사회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혹은 근대사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자유와 인권·평등을 공통이념으로 하는 세계를 묶어 나아간다는 보편적 원칙, 이념이 붕괴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념에 기반한 근대라는 것 또한 역시 흔들리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기 전에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였어도 둘 다 근대사회 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자유에 중점을 둘 것인지 평등에 중점을 둘 것인지의 경쟁으로, 결국에는 시민의 행복을 실현하자는 프랑스 혁명 이후 공통된 이념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소련이 해체한 것이 과연 자유주의의 승리였을까 하는 의구심도 더 커졌다.”

- 육지의 나라와 바다의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차이가 있나.

“육지의 나라라는 건 계속해서 토지를 획득하는 것으로 영토를 넓히고, 그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력이라든지 농산물 등을 획득을 통해 번영한다. 중세까지는 공업이 없어 육지, 내륙의 시대였다. 육지가 좁은 영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국가는 크게 가치가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다 근대가 되면서 전쟁을 통한 영토 획득에 너무 많은 비용이 많이 들게 됐다. 그래서 식민지로 영토에 집착하긴 했지만 큰 측면에서 바다의 나라들은 영토에 집착하지 않고, 자본을 모으고 늘리는 방식으로 풍요로워졌다. 시장만 개방하면 딱히 식민지 지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방식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바다의 나라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육지의 나라가 근대사회에 있어 소련이나 중국도 그랬든 좀처럼 발전할 수 없었던 건 자본주의 사회에 효율적인 방식을 가져오지 않고 중앙집권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제 성장이 늦어진 것 아닌가 싶다.”

- 경제학은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풍요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둔 학문이다. 하지만 지금 선진국을 보면 성장을 통해 풍요로워 졌지만 분배는 더 비효율이 되는 것 같다. 성장과 분배는 양립할 수 없는 목표일까.

“양립 가능하다. 다만 양립은 성장하는 기간에만 가능한 이야기다.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라는 것은 이익을 극대화해서 자본을 영구적으로 늘리는, 자기증식이다. 자본주의는 저성장이거나 성장이 멈췄을 때도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임금을 내리는 방식 등을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저성장이 되면 양립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다음 단계는 정치가 어느 편에 서느냐다. 자본가 편이냐, 노동자 혹은 시민의 편이냐다. 어떻게 된 건지 일본 정부는 자본가 편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결국 분배되지 않고 성장과 분배는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가 목숨을 걸고 2% 실질 성장을 부르짖어도, 애당초 그 성장의 조건이라는 게 점점 소멸되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아베노믹스’는 실패했다

- 일본 정부가 추진한 아베노믹스에 대해 ‘자본가를 위한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금융 완화, 재정지출 확대, 공격적 성장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이 모두 실패했다고 보는 건가.

“모두 실패했다. ‘3개의 화살’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금융 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소비자물가를 2%로 지속 상승시킨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신중하니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로 마중물 역할을 한다. 성장 가능성을 본 투자자들은 기대를 가지고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하지만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근대사회가 전제로 두고 있는 여러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 이미 사라지고 있음에도 근대사회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펼친 ‘3개의 화살’이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근대사회의 전제는 우선 공간이 확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사회는 좁은 유럽에서부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유럽 대륙이나 바로 옆 유라시아 정도는 알았을 수 있지만, 아메리카 대륙이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건 모르고 있었다. 두번째는 시간이 무한하다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은 시간이 무한이라며 영원히 이어진다고 말했다. 시간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인간은 죽으니까 법인격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여기에 자기의 이름은 남기고 싶다고 생각해 근대적인 상속 제도를 확립했다. 세번째는 중세에는 없던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새로 도입한 시스템 중 가장 성공적인 건 국민국가다. 중세까지는 교황이나 고대 로마 황제 등 세계는 하나로 나아간다고 여겼다. 그런데 21세기가 되면서 이 전제 조건들이 사라지고 있다. 우선 아프리카까지 세계화되면 지구가 전부 하나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전 세계가 통일된다 한들 그 이상으로 공간이 확장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들 달이나 화성에 가려고 시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극히 일부는 화성이 기지를 만들고 우아하게 사는 게 가능할지 몰라도 70억~80억명이 이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간 확장에 한계가 왔다. 그리고 시간이 영원하다는 건 변함없다. 시간이 영원하다는 건 진보, 혁신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천천히 혁신이 공헌하는 정도가 적어지고 있다. 한 미국 경제학자는 에디슨 시대의 총 요소 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 현재보다 더 높다며 에디슨이 빌 게이츠보다 경제 성장에 공헌한 바가 크다고 결론 냈다. 인간은 가장 돈이 될 법한 곳에서부터 공장이나 농지를 만든다. 그러고는 점점 조건이 나쁜 곳으로 손을 뻗어 나갈 수밖에 없어 이윤율은 점점 내려가게 된다. 흔히 말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저하된다. 아무리 아베 전 총리가 목숨을 걸고 2% 실질 성장을 부르짖어도, 애당초 그 성장의 조건이라는 게 점점 소멸되어져 가고 있으니까 실패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 결국 현재 패러다임, 다시 말해 근대사회가 종말을 향해 간다는 것인데 그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도래할까.

“근대사회를 대체하는 사회라는 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가능성 있는 체제 중 하나는 EU 방식이라 생각한다. 국가 위에 또 하나의, 조금 더 단위가 큰 공동체. 세계화가 점점 진행됐기 때문에 세계화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계화로 자본도 세계화되며 너무 거대해졌다. 그에 반해 국가는 200여개로 작은 규모다. 거대화된 자본에 저항하기에는 국가도 더 커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 세계화된 기업에 대항하기 쉽지 않다. 기업에 맞춰 공동체도 단위를 크게 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근대 사회라는건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더 멀리’를 지향한다. 시간이 무한이니까 어쨌든 간에 빠르게, 그리고 상사 무역 같은 방식으로 전 세계 어디로든지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단돈 1엔이라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는다는 ‘더 합리적’을 중시한다. 이 3가지를 행동원리로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 근대사회의 성공한 사람, 혹은 성공 기업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왔다고 생각한다. 한계가 오면 완전히 반대의 것을 할 수 밖에 없다. 조금만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틀어볼까 라는 건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완전 반대로 하면) ‘더 여유롭게’ ‘더 가까이’ ‘더 관용적으로’일 것이다. 이들을 행동원리로 한 사회를 어떻게 부를지는 후세 사람들이 정하지 않을까. 22세기가 되면 누군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일본인들은 노후 걱정으로 여행을 가도 하코네 정도에 만족한다. 만약 축적한 자산으로 사회복지를 강화해 노후 걱정이 없어진다면 하코네보다는 하와이로 가지 않을까. 아니면 하코네보다는 먼 큐슈나 오키나와일 수도 있고.

- 복지를 지향하는 국가는 정부 재정이 큰 역할을 한다. 정부 재정을 확충하려면 조세 수입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려면 적정 수준의 성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성장이 정체하면 복지정책도 펼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일본이랄까, 제로금리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본이 희소하니까 이윤율이라든지 이자율이 발생하는 건데, 제로금리라는건 자본의 희소성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편의점도 충분히 있고, 사무실 건물도 엄청 빽빽하게 세워져 있다. 이런 상가와 사무실 건물은 자산이다. (재무제표상) 자산의 반대편에는 부채와 자본이 있다. 부채의 저 멀리에는 예금이 있고. 자본을 전부 합계하면 자본의 부라고 해서 그 대부분이 사내유보금이 된다. 지금 일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성장은 별로 안 하고 있지만 2000조엔의 개인 금융자산이 있다. 2000조엔의 개인 금융자산이 계속 증가만 하고 있다. 고령이 되면 더 늘어나는데, 고령자가 노후 걱정으로 그 돈을 안 쓰고 예금을 계속해서 유지한 채로 있는 거다. 그리고 대외순자산도 400조엔가량 쌓여 있다. 또 지금의 일본은 해외투자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다. 해외시장의 매력이 떨어졌고, 국내 기업을 통해 얻는 이익률과 해외 투자로 얻는 이익률이 거의 같아져 옛날처럼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여기서 문제는 일본은 성장하지 않아도, 쓰지 않은 개인금융자산과 쓰지 않은 사내유보금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과세해야 한다. 대략적으로 2000조엔에 대해 상속세를 부과하면 10조엔 단위의 세수가 나온다. 사내유보금에 대해서도 매년 10조엔씩 계속해서 과세한다면 이익은 40조엔씩 쌓이기 때문에 사내유보금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는 곧 새로운 재원 30조엔가량이 생기는 거니까 이 정도로 충분히 저출생이나, 대학등록금 무상화, 저소득층 지원 등 다양한 복지제도를 펼칠 수 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일본과 같이 제로금리가 된 나라들은 성장하지 않더라도, 거꾸로 말하면 성장하지 않으니까 제로금리가 된 것이다. 과거 30~40년 간 성장하면서 축적한 2000조엔이라는 개인금융자산과 500조엔의 사내유보금, 400조~500조엔의 대외순자산처럼 안 쓰는 자산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걸 조금씩 쓰자고 말해야 한다. 요즘 일본인들은 노후 걱정으로 여행을 가도 (도쿄 근교인) 하코네 정도에 만족한다. 만약 축적한 자산으로 사회복지를 강화해 노후 걱정이 없어진다면 하코네보다는 하와이로 가지 않을까. 아니면 하코네보다는 먼 큐슈나 오키나와일 수도 있고. 이런 식으로 지출이 늘어나면 선순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예전에 일본이 고성장이었을 때 자산을 축적한 노인들은 몰라도, 지금 젊은이들이 노인이 됐을 때는 고갈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생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매년 130만명 정도가 사망한다. 이걸 세대로 보면 60만 세대다. 이들이 가진 금융자산은 4500만엔이다. 매년 30조엔이 그들의 자손인 30세 이하의 젊은이들에게 건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출생률은 1.2인데, 1.2라는 건 20~30년 뒤에는 단 한 명의 자녀들끼리 결혼하는 게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들의 부모가 사망했을 때 각 4000만엔씩, 8000만엔을 손에 넣게 된다. 상속세로 1000만엔씩 과세한다면 6000만엔이 된다. 그돈을 손에 넣은 이들도 노후 걱정으로 하와이에 안 가고 하코네에 가면서 6000만엔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 있으면 충분하지 않나. 그러니까 앞으로 몇년 더 과세할 수 있냐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할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저출생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자산을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남겨줄 수 있는 것이니까. 앞으로 30년, 혹은 지금 20세 청년들이 60세가 됐을 때까지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론 20%가량은 부모가 물려줄 금융자산이 없긴 하지만, 이들은 정부가 상속세율을 높여 분배해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도쿄 호세이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도쿄 호세이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 ‘포스트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새 모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어떤 모델을 생각하고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델에서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

“자본주의는 지금 모순이 많다. 억만장자가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연수입 200만엔 이하인 노동자가 1000만명이 넘는다. 싱글맘의 상대적 빈곤률은 50%가 넘고. 다시 말해, 빈곤이 점점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라이벌이 없어지니 자본주의가 원래 갖고 있던 문제가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사회주의의 실패는 공산당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가 수요와 공급 등 무엇이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1년 간의 철 생산량, 분유 수요량을 세우는 계획경제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 분유가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는 것만 봐도 그들이 말했던 전제가 붕괴했음을 보여준다. 사회주의는 ‘엘리트 관료’라고 하는 인간을 전면적으로 신뢰했다는 큰 결함을 안고 있었다. 반면 서방의 자본주의는 시장 메커니즘에 굉장한, 전면적인 신뢰를 뒀다. 나는 둘 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라이벌이 있을 때는 가능한 자신들의 문제점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라이벌이 없어지면서 스스로의 모순은 해결하지 않고, 원래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그 본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냈다. 그게 바로 세계화였다. 나는 이런 이유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수정하더라도 무리라고 본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극대화해 다 쓸 수도 없는 자본을 만든다. 나는 적어도 일본은 이윤 추구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원가상각비 정도만 제대로 벌면 되지 않느냐 생각한다. 앞서 말한 행동원리, ‘더 여유롭게’ ‘더 가까이’ ‘더 관용적으로’ 나아가는 모델이 새로운 모델이라 생각한다.”

- 그 새로운 모델에도 라이벌이 필요한건 아닐까.

“그렇다. ‘더 여유롭게’ ‘더 가까이’ ‘더 관용적으로’ 나아가는 모델과는 별개로 또 하나 더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두 모델, 혹은 세 모델을 서로 비교하며 실험할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을 것 같다. 모델이 하나일 경우, 만에 하나 잘 작동되지 않으면 큰일이니까.”

인공지능 기술이 근대사회를 끝낼 수 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실 근대사회의 속성을 강화하는 수단이다. 챗GPT는 기계한테 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지 않나. ‘더 빨리’를 강화하는 근대사회의 연장일 뿐이다

- 챗GPT를 계기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더 여유롭게, 더 가까이, 더 관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긍정적 요소일까.

“나는 정반대라 생각한다. 인터넷, 인공지능 같은 건 ‘더 빨리’에 해당한다. 더 빨리 처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본 물류 회사들은 요즘 아침에 주문하면 낮에 도착하는 데 안달이다. 물론 아침에 주문해서 낮에 도착하지 않으면 곤란한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대부분은 3일 만에 도착해도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극소수를 위해 다수를 대입해 수많은 트럭들이 줄줄이 달리는 꼴이다. 이들 운송업체들이 공동으로 트럭을 운영해 트럭을 3일에 한 번도 달리게 한다면 탄소 배출 등 모든 것들이 3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근대사회를 끝낼 수 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실 근대사회의 속성을 강화하는 수단이다. 챗GPT는 기계한테 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지 않나. ‘더 빨리’를 강화하는 근대사회의 연장일 뿐이다.”

- ‘성장이 모든 걸 해결한다’ ‘기술 혁신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이른바 성장 신화가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난 30년 정체를 겪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꾸준히 성장해 오히려 한국에서 탈성장은 ‘금기어’ 수준으로 취급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장 신화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은 1인당 GDP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지금 일본의 1인당 GDP에도 일본은 부족한 게 거의 없다. 학생들한테 물어봐도 ‘딱히 갖고 싶은 걸 말하지도 않는다. 아까 말한 물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바람직한 사회라는 건,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어디서든 가질 수 있는 사회‘다. 조금만 걸으면 편의점이 있고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곧바로 배달해주는 일본은 사실상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그렇지 않나. 탈성장을 논의하는 게 너무 이르다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더 빠른 사회를 진정 원하는지 생각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탈성장을 논하는 게 너무 이르다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더 빠른 사회를 진정 원하는지 생각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편의점을 지금보다 배 이상 늘린다든지,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터넷으로 주문한 택배가 ‘어제’ 도착해 있기를 진정 원할까. 불가능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인공지능은 어제 도착해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 할 거다. 당신의 행동 패턴을 토대로 보니 이런 물건을 원할 거니까 1시간 전 현관 앞에 미리 갖다 뒀다고. 이런 빠른 사회를 정말 원하는지 논의해본다면 ‘더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해질 거다. 성장한 그 이익을 무엇을 위해 쓸 거냐도 묻고 싶다. 아마도 그 이익을 쓰는 목적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자기증식이다. 그럼 이렇게 그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자본의 자기증식만을 목적으로 성장을 외치는 것이냐’고. 이런 논의를 하는 게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 장기 금리를 보면, 10년 국채 금리가 3%대다. 국채 금리가 제로가 됐을 때가 기회라 생각한다. 탈성장을 말하는 이들은 그때를 대비해 제로금리가 됐을 때 ‘자본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필요 없는 것을 만들어 어떻게 할 거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은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하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주장과, 노동시간을 줄이면 생산성도 높아지고 노동자 인권도 높아진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일본도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하지만 한국은 그 이상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유는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선 더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라는 건 풍요로워지기 위한 중간 수단이다. 왜 풍요로워져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그 최종목적은 자유와 기회평등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즉 풍요로워지지 않으면 자유와 평등을 얻을 수 없다는 논리다. 또는 아이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족한, 아까 말한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이 어디서나 가질 수 없는 시점에는 장시간 노동으로 더 빨리 더 자산을 늘려 자유를 획득하는, 다른 말로는 현재를 인내해 장래의 풍요로움을 얻는 ‘트레이드 오프(어느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경제 관계)’였다. 지금의 일본이 현재 이상으로 자본을 늘릴 필요다 없다고 하는 건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졌다는 의미고, 그렇게 되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편이 맞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을 어디에서나 가질 수 있는 환경의 국가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노동시간을 줄이는 편이 더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인권도 올라가고, 자유도 올라간다. 이는 생산성도 올라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1980년대 민간 기업에서 일했을 때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했다. 대략적으로 계산하면 연간 2500~3000시간 정도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장이 잠깐 자리를 비우면 쉰다거나 낮에 놀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견딜 수 없었으니까. 10시간 넘게 계속 일하면 긴장의 끈이 끊어지기 마련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편이 쓸데없는 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내 생각에 현재 노동시간의 약 30% 허비한다. ‘일이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있으면서 부장이나 상사가 지시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시한 일을 한 뒤에는 그게 어디에 쓰였는지도 모르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생산성도 올리고 인권도 신장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일본은 연간 노동시간이 1700시간(한국은 1900시간)이고, 독일은 1400시간이다. 일본과 독일의 1인당 GDP를 비교하면 독일이 더 높다. 나는 일본도 독일과 비슷한 1400시간으로 줄여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1400시간으로 줄여도 무방하다고 본다.”

선진국들이 ‘지구의 지속성을 생각해서 저소득국가 등에게 조금 더 천천히 성장하면 어떻겠느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생활수준을 상당히 떨어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 ‘필요한 것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도착하는’ 이상적 사회가 유지되는 건 글로벌 사우스 등을 착취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국가가 여전히 성장을 외치면, 기후위기가 더 악화될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지구 전체가 그러한 수준에 도달할까? 그전에 지구가 없어지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시점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사우스의 사람들이 일본이나 한국, 독일과 같은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욕구다. 그 목표를 향해 간다면, ‘더 빨리 더 멀리 더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를 사용해 기계화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되면 에너지 소비량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이 ‘지구의 지속성을 생각해서 너희들도 조금 더 천천히 성장하면 어떻겠느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생활수준을 상당히 떨어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선진국이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소비량도 반감해야 한다. 세계 인구를 70억명으로 봤을 때 70%인 50억명의 비선진국을 위해서라도 선진국 인구들의 생활은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된다. 다만 그렇게 되면 선진국 내부 정치인들이 지지를 받지 못하겠죠. 일본이나 한국, 독일, 미국과 같은 국가의 정치인들이 ‘세계 수준 반감’ 같은 걸 내걸면 바로 선거에서 지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 앞서 말한 ‘육지 대 바다’와 같은 신냉전 체제가 강회하는 가운데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등 내부 분열도 일어난다. 어떻게 전망하나? 해결책은 없을까.

“바다의 나라라는 건 시장 확장을 통한 자본획득을 목표로 하는 나라들이다. 획득한 자본이 특정 개인이나 상위 1%에게 집중돼 미국에선 약물·알코올중독 등에 따른 ‘절망사’가 굉장히 늘어나고 있다. 국가를 지탱하는 중산층이 아래로 점점 추락하는 양상이다. 이는 바다의 나라 안에서도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과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기 직전 기독교 세계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존 위클리프나 얀 후스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 뒤 마틴 루터가 나타났다. 첫반란은 다 진압됐다. 그래서 지금 바다의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처음에는 진압될지 몰라도 그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 대처하지 않는다면 근대사회는 전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올 사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전복이 일어나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언제일지 몰라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다양한 모델을 준비해야 한다.”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도쿄 호세이대에서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미즈노 가즈오 일본 호세이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도쿄 호세이대에서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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