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성장은 ‘환상’…우선 다양한 대안 얘기하는 것이 첫걸음”[인터뷰 전문]

사이토 고헤이 일본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가 지난달 23일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녹색성장, 지속 가능한 성장만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은 환상일 뿐입니다.”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36)의 어조는 단호했다.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간 사이토 교수는 “탈성장 사회로 넘어가는 것만이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이토 교수는 그간 주류 경제학에서 거의 다루지 않은 ‘탈성장론’을 연구하는 정치경제학자다. 그는 수백년간 세계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추구해온 성장지상주의 탓에 인류와 지구 생태계가 존폐 위기에 몰렸다고 주장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학자들은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이토 교수처럼 ‘당장 성장 자체를 멈춰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하는 학자는 많지 않다.

해법의 단서는 마르크스에서 찾았다. 사이토 교수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르크스 연구자 중 한 명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지만, 그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생태주의 관점에 집중했다. 사이토 교수는 2008년 발표한 저서 <카를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로 최연소 ‘아이작 도이처 기념상’을 수상, 학계의 찬사를 받았다.

사이토 교수가 2020년 펴낸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는 일본에서만 50만부 이상 팔렸고,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학계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를 설파하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탈성장이 유일한 해법이며, 자본주의 하에서 탈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인류가 계속 살아남으려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 사례를 보면 마르크스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소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사이토 교수는 “소련이나 중국, 북한처럼 ‘톱다운’식 계획경제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사회주의와 다르다”며 “(내 주장이) 다른 제도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다양한 논의를 하는 첫걸음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이토 고헤이 일본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가 지난달 23일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다음은 사이토 교수와의 일문일답.

-저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이 책은 마르크스와 탈성장이라는 인기 없는 두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처음엔 이렇게까지 팔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놀란 건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의원이나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책을 읽고 ‘굉장히 재밌었다’고 한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책이 출간돼 인세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인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책이 잘 팔렸지만, 원래는 마르크스나 탈성장은 거의 안 팔리는 주제다. 애초에 돈을 벌려고 했다면 이 주제로는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빈부)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 동기가 됐다. 마르크스가 중요하고 탈성장 사회가 중요하다는 순수한 생각에서 책을 썼고, 앞서 말했듯 자민당의 보수 인사나 많은 대기업 인사가 ‘책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동의했다. 그 결과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애초에 돈을 벌 생각으로 책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부는 아니지만 수익을 기부했다. 가령 한국에서 ‘베스트 아시아 북 어워드’를 수상했는데 그 상금은 전부 기후변동 문제를 다루는 민간 단체에 기부했다. 가능한 인세도 사회를 더 좋게 하기 위해 쓰고 싶다.”

-최근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일본 젊은이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일본이 공산 국가 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내 책을 읽었고 그중에는 젊은이들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기후 변화 문제를 다루는 청년 중에는 탈성장 사회,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로 이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 기후 변화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다. 독일이나 미국 같은 나라의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정말 적다. 한국 상황이 어떤지는 <경향포럼> 참석 차 한국에 갔을 때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유감스럽게도 책이 팔린 것에 비해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자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그래서 단순히 책에서 말하는 아이디어가 대중화됐다고 만족하고 끝낼 게 아니라, 이 아이디어를 어떤 식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나.

“동료들과 함께 ‘커먼 포레스트 재팬(Common Forest Japan)’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다 같이 돈을 모아서 숲을 사는 단체다. 멤버가 되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그 돈으로 얼마 전 도쿄 근교의 타카오산에 있는 숲을 샀다. 그건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의 숲, 즉 ‘커먼(Common·공유재)’이다. 그곳을 캠프장으로 쓰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제대로 관리하면서 지속 가능한 숲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다. 커먼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가까이서 느끼도록 말이다. 현재 사회는 뭐든지 상품과 돈뿐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올해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이 일본에서 더 다양한 형태로 퍼져 나갔으면 한다.”

-지속 가능한 숲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숲은 인간이 손을 대지 않고 내버려 두면 점점 나무가 무성해져서 접근할 수 없게 되거나 쓰러진 나무가 그대로 방치돼서 위험해진다. 일본에서는 숲이라는 것이 더 이상 돈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세금을 써서 돈이 들어가는 곳이 됐다. 이 부담이 상당해서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숲이 아주 많다. 그 와중에도 임업이 가능해 사업성이 있는 숲은 기업이 관리를 하지만 우리가 구입한 숲은 임업조차 할 수 없는 곳이라 내버려 두면 아무 필요 없는 곳이 된다. 우리는 일부러 그런 곳을 사서 나무를 적당히 자르고 산길을 정비하면서 지속 가능한 숲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도쿄에 있으면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적은데, 이걸 통해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숲의 생물 다양성을 체험한다든지 계절별로 식물의 변화를 관찰하거나 먹을 수 있는 산나물을 채집한다든지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커먼이라는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소련, 중국, 북한은 독재국가다. 정치인이나 관료가 결정하는 하향식 계획경제다. 이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사회주의와 다르다.

-마르크스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안다. 사회주의라면 무너진 구소련 체제나 북한을 떠올리기 쉽다. 이미 실패한 시스템인데, 구상하는 사회주의는 구소련이나 북한과 어떻게 다른가.

“소련도 중국도 북한도 독재국가다. 정치인이나 관료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는 굉장히 톱다운식(하향식) 계획 경제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뿐 아니라,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사회주의와도 다르다. 20세기에는 소련이 잘 안됐으니까, 즉 사회주의라는 게 잘 안됐으니 전부 시장이 좋다고 해버리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등장했다. 소위 ‘신자유주의’다. 그 역시 굉장히 큰 (빈부)격차를 만들고 환경 파괴를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소련도 아니고 신자유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인데, 앞서 말한 커먼에 기반한 사회로서 사회주의다. 밑에서부터 시민 모두가 참여해 열린 형식으로 숲, 토지, 물, 전력처럼 공동으로 필요한 것을 관리해 나가는 방식이다. 물론 국가가 어느 정도 관여해도 좋지만 뭐든지 위에서 국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많은 커먼을 만드는 식이다. ‘커먼 포레스트’뿐 아니라 ‘커먼 워터’, ‘커먼 에너지’처럼 ‘커먼○○’을 많이 만들어가는 사회가 돈이나 상품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사회가 아닐까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크고 작은 금융사들이 무너지는 등 2008년 금융위기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세계 경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버블’을 만들면서 단기적으로 돈을 벌어가는 자본주의의 기본 구조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속에서 감염병 대책이라는 명목하에 정부는 굉장히 많은 돈을 다양한 곳에 뿌렸다. 하지만 그 돈의 대부분은 필요한 곳에 닿지 않고 금융시장에 상당 부분 흘러 들어갔는다. 그게 지난 2년간 이어지면서 버블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한다. 거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 탓에 경기까지 나빠지면서 은행 도산 사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자본주의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이후에도 몇 번이고 반복된다. 결국 정말 곤란해지는 것은 부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다. 금융시장 규제처럼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점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사이토 고헤이 일본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가 지난달 23일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최근 위기는 자본주의의 탐욕성이 녹아있는 금융 시스템 때문이 아닐까. 현재 금융 시스템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필수 노동자들은 감염 위험에 노출되면서까지 큰 어려움을 겪은 반면 금융 시장 자체는 호황을 이어갔다. 게다가 금융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니까 감염 위험도 낮았는데, 그러면서 자산을 늘려가는 걸 보면서 사회가 정말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이상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바로 코로나19 유행이다. 특히 우리는 빠른 주식 거래처럼 의미 없는 거래만 반복하면서 많은 자원과 힘을 쏟고 있다. 이런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규제해서 조금이라도 느리게 만드는 것이 탈성장에 가까운 길이다. 지금 사회가 너무나 빨라서 다양한 것들을 낭비하고 있다면 금융자산 과세 같은 규제를 통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실제 일본 기시다 정권은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의 핵심으로 금융 소득 과세를 제시했는데, 결국 하지 않았다. 새로운 자본주의만으로는 부족하고, 자본주의 자체가 이상하다고 더 강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기 침체와 탈성장은 어떤 차이가 있나.

“경기 침체 상황이 더 악화되면 리세션(경기 후퇴)이 발생할 수 있다. 리세션이 일어나면 국내총생산(GDP)은 오히려 감소하게 된다. 이건 탈성장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 사회는 성장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채권이나 주식 투자 모두 수익을 요구한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성장하지 않으면 안되지 않나. 그래서 성장을 추구하지만 성장하지 않는 것이 리세션이다. 경기 침체도 비슷하다. 탈성장은 성장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자나 배당을 생각하면 계속 성장을 해야 하는데, 역으로 이런 것들을 제대로 규제해서 교육이나 의료, 대중교통처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중시하는 사회로 이행한다면 어떨까. 교육은 경제적 성장이 크게 뒷받침할 필요가 없지 않나. 수도 시설도, 의료 서비스도 고도의 성장이 필요하진 않다. 이렇게 딱히 성장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사회가 탈성장 사회다.”

탈성장은 성장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교육이나 의료, 대중교통처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고도의 경제적 성장이 뒷받침할 필요가 없지 않나.

-앞서 숲의 예시처럼 순환형 경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보나. 시민의회 같은 숙의민주주의는 매우 민주적이지만 결정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는데.

“모든 걸 시민의회처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처럼 국회 역할을 하는 기관도 남아야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들이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고 있다. 국회에서 결정되기도 하지만 기업처럼 돈이 많은 사람들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커져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자산 과세를 늘리거나 정치인 기부에 더 엄격해져야 할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다뤄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뮤니시팔리즘(Municipalism·지방자치주의)가 좋은 사례다. 가령 서울시나 도쿄도 수준에서 더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거기에 더해 시민의회를 두고 시민 의견을 듣기도 하고, (소통 채널을) 더 다양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탈성장을 통해 이익이 줄면 결국 세금도 줄고, 복지 예산도 줄어드는 등 일종의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적어도 일본은 아직 부자나 대기업에 세금을 더 매길 여지가 있다. 일본은 최근 법인세나 소득세를 큰 폭 인하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걸 다시 되돌리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이 밖에도 불필요한 곳에 돈이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국방비다. 일본에서는 이번에 국방비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 곳에 돈을 쓸 정도라면 교육처럼 필수적인 부문에도 돈을 더 써야 한다. 또 보조금 형태로 석유 업계 같은 곳에 상당한 돈이 들어가고 있다. 그런 곳에 드는 돈을 없애고 필요한 곳에 돈을 쓰면 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출생률도 일본보다 낮은데,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곧 고갈될 것이라는 불안이 크다. 경제 성장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국민연금뿐 아니라 많은 국가들의 연기금이 고갈되진 않을까.

“연금 시스템 자체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전문 분야가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대해 얘기할 순 없지만, 연금도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것들이 성장을 전제로 한 무언가에 투자를 하고 있다. 말하자면 성장에 인질로 잡혀있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노인들이 빈곤 상태에 있고, 젊은이들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결국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다들 ‘성장만 하면 어떻게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반쯤 속아 있다. ‘성장을 계속 말해도 전혀 풍요로워지지 않는 사회 자체가 이상하지 않을까?’ ‘좀 더 다른 제도를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닐까?’라고 목소리를 내고, 그에 대해 더 다양한 논의를 하는 것이 우선 첫걸음이다. 그런 점에서 (내 주장이) ‘이런 걸 말해도 되는구나’라는 첫걸음이 됐으면 한다.”

사이토 고헤이 일본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가 지난달 23일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 이창준 기자

-경제 성장은 일자리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저성장으로도 이미 실업 문제가 젊은 층을 크게 괴롭히고 있는데 탈성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더 불거지지 않을까.

“탈성장으로 이행하면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탈탄소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석유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탈탄소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다. 거꾸로 지금의 체제에서는 필수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어느 사회든 고통받는 사람은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다가올 시대를 헤쳐나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제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다만 탈성장이 실업률을 높인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모두의 노동 시간을 동시에 줄여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사라지는 직업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령 탈성장 사회가 된다면 광고 관련 일은 지금보다 줄어들 거고, 큰 자동차를 만드는 일도 없어질 테고 금융시장이나 원전 관련 일도 없어지지 않겠나. 대신 모두가 좀 더 필수적인 일을 나누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서 가령 주 4일 정도 일하도록 하면, 일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업무량을 줄여가는 사회가 될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은 이렇게나 기술이 발전했지만 일본인이나 한국인은 굉장히 긴 시간 일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소위 ‘불쉿 잡(Bullshit Jobs·쓸모 없는 일)’이다. 이런 점을 보면 모두가 어딘가에서 일 이외의 것을 해나가는 사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탈성장은 선진국에 한정된 ‘배부른’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가난한 나라에서 많은 것을 빼앗아 온 선진국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탈성장 사회로 전환하려면 지배 구조의 변화나 정책적 선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관건이 될 것이다. 시민들이 소비를 줄이는 삶, 더 불편한 삶을 감수하려고 할까. 대다수 시민에게는 환경보다 오늘 자신의 일상이 우선순위가 될 것 같다.

“물론 당장 눈앞의 생활이 힘든 사람들은 50년 후의 일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문제에 매진할 수 있는 것도 대학교수라는 직업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일이 너무 많다. 많은 상품 광고나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편의점이 그 예다. 일본에서는 특히 편의점 수가 굉장히 많다. 아마존의 익일 배송도, 새로운 아이폰이 계속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을 좀 더 규제하면 사람들의 욕구 방식이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곳에 돈과 시간을 쓰자’라는, 다른 생활 방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전 세계 단위로 보면 국가별 성장 불균형이 심한 상태다. 대다수 저개발국가에 탈성장 담론은 현실과 괴리된 ‘배부른 소리’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데.

“개발도상국, 저개발국가는 시민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성장해도 좋다고 본다.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 탈성장은 선진국에 한정된 이야기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책임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풍족하게 잘 살 수 있는 건 가난한 나라에서 많은 것들을 빼앗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선진국이) 성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아직 가난한 국가가 더 성장하고, 더 제대로 된 생활을 획득하기 위한 공간을 창출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차례 더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탈성장에 대한 오해가 여전히 많다. 녹색 성장, 지속 가능한 성장만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은 환상일 뿐이다. 탈성장 사회로 이행하는 것만이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탈성장 자본주의’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포스트 자본주의를 고민해 봐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마르크스에서 배울 점이 아직 있다는 걸 <경향포럼>에 참석해 제대로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