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가당국’ 된 공정위…“라면 담합조사 검토”

반기웅 기자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라면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라면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라면 가격 담합 조사 검토에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원가 하락 이후에도 여전히 비싼 제품에 대한 공정위 조사를 주문하면서다. 고물가 국면 속 공정위는 물가 안정을 위해 통신사와 시중 은행, 증권사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담합 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정위가 물가 전면에 나선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이후 사실상 처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쟁당국인 공정위가 물가관리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본연의 업무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정위 “라면 담합 조사 여부 검토”

22일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라면 가격 담합 조사가 필요하다는 총리 발언이 나온 이상 공정위에서도 라면 담합 조사를 검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앞서 한 총리는 21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국내 물가 흐름과 관련해 “원료(가격)는 많이 내렸는데 객관적으로 제품값이 높은 것에 대해선 경쟁을 촉진하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유통구조도 면밀히 살펴서 구조적 안정을 취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추 부총리의 “국내 밀가격이 50% 안팎 내렸다. 기업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라는 발언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한 총리 발언 이후 공정위는 라면 담합 조사를 놓고 검토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라면 담합 조사와 관련해 총리실과 사전에 협의한 부분은 없고, 총리 개인적으로 물가에 대한 견해를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조사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치솟는 물가에 다급해진 정부는 공정위 조사까지 동원해 물가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통신·금융사의 과도한 지대추구를 막을 방안을 추진해달라고” 주문하자 공정위는 이내 통신 요금과 수수료·대출 금리 담합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조사를 통해 가격·대출금리 인하를 이끌어 물가 안정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통신사와 은행권에 이어 최근에는 증권사 담합도 조사하고 있다. 한 총리 지시로 라면 담합 조사가 시작된다면 공정위 조사는 먹거리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 통신·은행·증권사 담합 조사…물가 안정 유도

앞서 정부는 지난해 물가 인상을 막기 위해 공정위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범부처 담합 감시 체계’를 마련했다. 각 부처가 소관하고 있는 물가 관리 품목에서 담합 징후를 감지하면 공정위에 상황을 공유, 공정위가 현장 조사에 들어가는 구조다.

다만 이번 라면 가격 인상건은 소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공정위 측에 별도 제보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차 2050 탄소 중립 녹색성장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차 2050 탄소 중립 녹색성장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가와 전면전에 나선 공정위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가관리 업무에 과도하게 치중하다 본연 업무에 소홀할 수 있다 지적이다.

MB정부 ‘물가당국’ 자처한 공정위…윤석열 정부서 물가관리 최전선

이명박(MB) 정부 당시 물가가 오르자 공정위는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물가 최전선에 섰다. 4대 정유사부터 고추장·치즈·두유·단무지 등 서민 먹거리 대한 담합 조사를 벌였지만 물가는 잡히지 않았다.

세계적인 경쟁분야 전문 저널인 글로벌 컴피티션 리뷰(GCR)는 2013년 경쟁당국 평가에서 공정위의 등급을 기존 별 4개에서 3.5개로 하향 조정했다. 공정위가 핵심업무에 소홀하는 한편 가격통제에 집중했다는 이유에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위적인 담합에 대한 제재는 공정위 본연의 역할이지만 담합 혐의가 없는 상황에서 외부 환경 변화로 인상된 물가를 공정위가 조사를 통해 내리려는 것은 원인과 처방이 전혀 맞지 않는 행위”라며 “가격 인하 효과는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담합 이슈에만 치중하다가 플랫폼과 대기업 경제력 집중 이슈와 같은 공정위 본연의 업무에 소홀해질 수 있다”며 “지금 공정위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치적인 중립성”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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