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럼

기고 - 경제 성장이 더 이상 정답이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산다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운영위원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운영위원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운영위원

경제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면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식량부족 등으로 인해 인류 존속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다. 1972년 유엔 산하 연구팀에서 내놓은 보고서 내용이었다. 이 경고는 무시됐다. 대신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가 진행됐다. 1980년 이후 세계적으로 1인당 생산은 30% 넘게 증가했다. 날마다 새로운 상품이 생산되니 멀쩡한 물건도 유행이 지났다고 쓰레기가 됐다. 일회용 물건도 날로 늘어났다.

자국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저렴한 노동력과 자원,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던 국가들과 식민 치하와 내전 등으로 빚어진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국처럼 잘살고 싶은’ 국가의 이해관계가 만난 사례 중 하나였던 1970년대 초 한국.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출 자유무역 지역’에서 노동법 보호도 못 받는 10대 여성 청소년 노동자들의 피와 땀까지 쥐어짜내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50여년이 흘렀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1974년 195억4000만달러였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6643억3000만달러로 85.2배 상승해 경제규모 순위는 세계 30위에서 10위가 됐다. 수출은 2022년 6835억8000만달러를 기록, 1974년보다 153.3배 증가하며 한국은 세계 시장점유율 7위가 됐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든 대차대조표. 경제 성장은 번영과 행복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GDP는 증가했지만 ‘참진보지수(GPI)’나 ‘지속가능경제복지지수(Index of Sustainable Economic Welfare)’ 같은 복지 지표는 1970년부터 정체 상태다. 한국의 자살률은 2021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2배, 남녀임금격차는 OECD 평균보다 3배 더 높았다. 최상위 소득계층 10%가 한국 사회 전체 소득의 34.4%를 가져가는 등 불평등 정도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평균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OECD 평균보다 199시간 많았으며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독일에 비하면 566시간이 더 많았다. 2022년 가임인구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가 발표한 ‘2022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전 세계 146개국 중 59위였다.

지난 50년 동안 지구 평균온도는 1도 높아졌다. 198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증해서다. 부유한 나라일수록 더 많이 배출했다. 2020년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8위였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려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폭우, 폭염, 산불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생물종들이 연이어 멸종되면서 생물 다양성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0.5도 추가 상승을 막아야만 한다.

기후위기 영향으로 식량이 무기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7대 곡물 수입국이다. 곡물 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정부는 쌀보다 밀가루를 많이 먹으니 쌀 생산을 그만하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밀 자급률은 겨우 0.5%다.

상황이 이런데 여전히 경제 성장 타령을 하고 있어야 할까. 해마다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야만 할까. 인구 증가세가 이미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이유로 1인당 노동시간을 더 늘려 노동자들을 최대한 더 쥐어짜야 할까.

안정적인 보금자리, 생명을 먹여 살리는 음식, 신선한 물, 깨끗한 공기, 따뜻한 옷, 공동체, 사랑과 보살핌이야말로 번영과 행복의 필수 요소다. 이를 위해서는 상품이 아니라 삶이 생산돼야 한다.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사용을 위한 생산, 비임금 일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부여, 축적과 확장이 아니라 공존과 연대가 최우선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나눔, 단순함, 공생, 돌봄,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재생경제와 지역 자급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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